종전의 경제적 효과 vs 설익은 밥...난제 산적
[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을 끝내기 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 주요국 정상들 간 18일(현지시간) 만남이 긍정적 분위기 속에 마무리됐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을 정중히 맞이했다. 이는 공개적으로 얼굴을 붉혔던 2월 방문 당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트럼프는 이날 회동 장면을 즐기며, "백악관에서 이렇게 많은 총리와 대통령이 한 자리에 모인 적은 없었다. 모두가 우크라이나 안보를 지키기 위해 급히 워싱턴으로 왔다"고 강조했다.
◆ 종전의 경제적 효과 vs 설익은 밥
3년 6개월의 길었던 러-우 전쟁이 진정 탈출구를 찾는다면 이는 글로벌 경제와 위험자산 시장에도 긍정적이다.
지정학적 프리미엄의 후퇴로 유가는 좀 더 하향 안정될 수 있다. 유가를 따라 LNG 가격도 내리면 생산에 드는 에너지 비용 전반이 줄어든다.
전후 복구를 위한 플랜 또한 가동될 것이다. 막대한 규모의 인프라 재건 과정에서 건설 토목 업계와 관련 중장비 업계 등이 호황을 누릴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항구적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유럽의 움직임은 방위산업체들에게 안정적인 먹거리에 해당한다.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한 방위력 증강은 이미 유럽 사회의 최대 화두로 등장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도 한몫 챙기겠다고 벼르고 있다.
물론 종전시 예상되는 이런 효과는 아직은 담보되지 않은 기대에 불과하다.
무한히 지속되는 전쟁도 없지만, 유럽 외곽(동유럽)의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그 난제들이 해결된 뒤에야 우크라이나 재건과 러시아의 국제사회 복귀를 내다본 자금들의 이동도 본격화할 수 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포함한 3자 회담 준비에 착수했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10일 이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세부사항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는 일시적인 휴전이 아닌 진정한 평화가 필요하다"며 "러시아와는 어떤 조건도 없이 만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회담을 지켜본 외신들의 반응은 미온적이다. 우크라이나 휴전을 위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부재했고,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간 3자 회담이 성사돼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몇 시간에 걸친 회의 후에도 유럽 지도자들과 트럼프 간에는 뚜렷한 의견 차이가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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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재진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모두가 '스마일'…하지만 여전히 '동상이몽'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는 3자 회담이 열리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보 보장과 러시아의 영토 요구가 가장 어려운 쟁점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AP통신은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러시아에 양보할 것인지, 우크라이나 군대의 미래는 어떨지, 그리고 국가가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안보 보장을 가질 수 있을지와 같은 양립 불가능한 레드라인들이 남아 있다고 평가했다.
BBC는 3자 회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러시아 측은 상당히 모호한 입장이라고 꼬집었다.
이날 크렘린궁 보좌관 유리 우샤코프가 전한 성명에서, 러시아는 협상에 참여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수준을 높일 가능성을 탐색할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BBC는 주의할 점이 크렘린의 표현은 트럼프보다 훨씬 모호하며, 푸틴이 직접 젤렌스키와의 양자 회담에 참석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암시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럼프는 그들을 함께 앉히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또 3자 회담이 성사되더라도 전쟁 종식을 위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요구가 여전히 크게 차이 나는 상황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CNN은 이번 회담에 쏠린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관심을 전하면서, 백악관에서 연출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일단 안도감을 주지만, 변덕스러운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을 감안하면 분위기가 언제 반전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비영리 학술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겉으로 보기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국 지도자와 회담을 가진 것이 균형 잡힌 접근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트럼프의 행동이 주로 러시아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평화 유지에 있어 미군의 역할을 배제하지 않았으나 동시에 확고한 약속도 하지 않았다면서, 트럼프가 순간적으로 내뱉은 발언을 뒤집는 성향은 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확실한 결론을 약화시킨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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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좌)과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왼쪽에서 두 번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 등 유럽 정상들과 회동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모습. [사진=로이터 뉴스핌] |
◆ '안보 보장' 등 여전히 모호...영토 언급 없어
트럼프는 젤렌스키와 푸틴과의 3자 회담을 가능한 한 빨리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우크라이나가 요청한 즉각적인 휴전 조치로 향하는 움직임은 없었다.
유럽 지도자들은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더 알아내려 했지만 실패했다.
여러 지도자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자신들의 목표를 트럼프의 아이디어처럼 포장하려 했다. 즉, 즉각적 휴전과 강력한 미국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을 백악관이 지지하는 아이디어로 표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휴전을 거부하는 듯 보였고, 협상에 따른 우크라이나 방어 강화 방안도 모호하게 말했다. 대신 그는 푸틴이 전투를 멈추고 싶어하는 인물이라고 묘사했다.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한 기자가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위해 미국으로부터 무엇이 필요한가, 병력, 정보, 장비?"라고 질문하자, 젤렌스키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단호하게 "모든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강력한 우크라이나 군대가 필요하며, 여기엔 무기, 인력, 훈련 임무, 정보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지상군 투입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기자들이 미국의 우크라이나 안보 보장에 미군 투입 가능성을 물었을 때 이를 배제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이 "최전선(first line of defence)"이라면서, "우리가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그들에게 좋은 보호를 제공하겠다"고 언급했다.
BBC는 이는 트럼프가 안보 보장 문제에 관해 가장 단호하게 발언한 사례로, 이러한 보장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와의 협상에서 핵심으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평화 협정 후 우크라이나 평화를 유지하는 데 관여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군 역할에 대해서는 구체적 내용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마르크 뤼테 나토 사무총장은 기자들과 만나 이번 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영토 교환 가능성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백악관 밖에서 기자들과 만난 젤렌스키 대통령도 (3자) 회담의 날짜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미국 측이 가능한 한 빨리 열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모든 당사자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고, 영토 문제는 "나와 푸틴 사이에서 다룰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최근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영토를 양보하지 않겠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두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을 완전히 병합하고, 두 지역(헤르손·자포리자)의 전선을 동결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메르츠 총리는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의 아직 점령하지 못한 일부 영토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미국이 플로리다를 포기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유했다.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