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러시아 전투기와 드론이 최근 우크라이나를 넘어 폴란드와 에스토니아 등 유럽 북동부 지역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들의 영공을 잇따라 침범하자 유럽에서 영공을 침범하는 러시아 항공기를 격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럽 국가들의 계속되는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이를 부인하거나 아예 무시하는 행태를 반복하면서 언젠가는 러시아가 더욱 대담한 공격으로 전환해 유럽에 커다란 안보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극대화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 |
폴란드 공군의 F-16 전투기. [사진=로이터 뉴스핌] |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2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회의에서 "의도적이든 실수이든 다른 나라 미사일이나 항공기가 우리 영공에 들어온다면 이를 격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한 다음에 "이곳에 와서 불평하지 말라"고 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도 이날 오전 기자들에게 "분명히 말하겠다. 우리 영토를 침범하고 우리 영공을 비행하는 물체가 있을 경우 우리는 즉각 격추를 결정할 것이다. 여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영국도 이 같은 입장에 동조했다. 이벳 쿠퍼 영국 외무장관은 안보리에서 러시아의 영공 침범을 "위험하고 무모한 행위"라고 비판하면서 "우리는 나토 영공과 영토를 방어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나토 영공에서 허가 없이 운항하는 항공기에 대응해야 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은 지난 20일 "나토가 러시아의 위반 행위에 대해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며 "러시아 항공기 격추도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는 자신들이 실수를 저질렀고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었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라며 "안타깝게도 갈등의 벼랑 끝에 서 있지만 악에 굴복하는 것은 결코 선택 사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근 폴란드와 에스토니아에서 발생한 사건, 그리고 지난 4년간 우크라이나에서 이어진 상황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며 "우리가 단결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
도빌레 사칼리네 리투아니아 국방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상공을 비행한 러시아 전투기 3대는 (나토의) 동북부 국경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강력한 증거"라며 "NATO는 이제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는 NATO 회원국인 터키가 2015년에 약 17초 동안 자국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전투기를 격추한 사건을 거론하며 "영공 침범 사건에 대한 모범"이라고 말했다.
앞서 폴란드는 지난 10일 러시아 드론 20여대가 떼를 지어 영공을 침범하자 전투기를 긴급 출동시켰고 이중 일부를 격추시켰다.
지난 19일에는 러시아 MiG-31 전투기 3대가 핀란드만 상공에서 에스토니아 영공으로 진입했고, 21일에는 러시아의 Il-20M 정찰기가 발트해 상공에 출현하면서 독일 유로파이터 전투기 2대가 긴급 출동하는 상황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