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뉴스핌] 장일현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우크라이나가 전쟁 전 영토를 회복할 수 있다"고 밝히며 그 근거로 러시아 전시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는데, 이를 뒷받침할 정황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25일(현지 시간) 간접세인 부가가치세(VAT)를 기존 20%에서 22%로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세금 인상을 발표하며 "오는 2030년까지는 더 이상 세금을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번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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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 [사진=로이터 뉴스핌] |
러시아 재무부는 "세수 증가분은 주로 급등하는 국방·안보 지출과 참전 군인 지원 및 사회 복지 지출에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지 독립 언론인 더벨(The Bell)은 부가세 인상이 매년 약 1조 루블, GDP의 0.5%에 해당하는 추가 세수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의 '종이호랑이' 발언 등을 일축했지만 이번에 수정된 재정 계획은 정부의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러시아 경제가 실제로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미국 뉴욕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군사·경제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고, 그것이 러시아에 초래한 경제적 어려움을 확인한 뒤, 나는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아 싸워서 우크라이나 영토를 본래의 형태로 되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그는 러시아 전역의 전쟁 경제 여파로 연료 공급난과 생활고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이야말로 우크라이나가 행동할 때"라고도 했다.
러시아의 올해 재정적자는 이미 4조2000억 루블(약 71조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의 1.9%에 도달했으며, 올해 말까지 5조7000억 루블(GDP의 2.6%)에 달할 것으로 러시아 재무부는 추정하고 있다고 인테르팍스가 보도했다. 이는 당초 예상보다 0.5%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 러시아·유라시아센터의 알렉산드라 프로코펜코 전 러시아 중앙은행 관계자는 "크렘린(러시아)의 최우선 과제는 여전히 군사비 지출이며 그것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큰 문제"라며 "전쟁 초기 군사비는 외환보유액과 초과 석유·가스 수입에서 충당됐고 이후 법인세가 올랐으며 이제는 러시아 기업과 국민 전체가 직접 전쟁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정부에) 더 이상 다른 재원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안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재정적자가 내년에는 GDP의 1.6%로 줄고, 2026~2028년 연평균 수준은 1.4% 정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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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은 러시아 랴잔주의 한 정유 공장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러시아 경제성장률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올해 러시아의 GDP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5%에서 1%로 하향 조정됐고, 내년 전망치도 2.4%에서 1.3%로 낮아졌다.
과거 러시아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던 석유·가스 수입 비중은 내년에는 22%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 경제에 '일정한 긴장 요인'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예산은 "완전히 균형 잡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경제는 전쟁의 필요에 맞게 대부분 재편되었으며, 전선이 필요로 하는 모든 요구를 쉽게 충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경제가 아직 종이호랑이는 아니다. 현 수준에서 전쟁을 뒷받침할 자원은 충분하다"며 "다만 다른 지출을 감당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정유 시설 등에 대한 드론 공격이 성과를 거두면서 러시아 내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현지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는 이날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를 인용해 점령지인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의 주유소 절반이 휘발유 판매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크림반도와 로스토프·볼고그라드주 등을 포함하는 러시아 남부연방관구는 전체 주유소의 약 14%인 220곳이 연료 판매를 중단해 에너지난이 가장 심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러시아 정부는 올 연말까지 휘발유 수출 금지 조치를 연장하고, 디젤유 수출 금지도 재도입하기로 했다. 러시아는 2023년 9월부터 몇 개월 단위로 휘발유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FT는 지난 23일 "지난달 이후 러시아 정유공장 38곳 중 16곳이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타격을 받았고, 러시아 정유 능력이 하루 100만 배럴 이상 줄었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