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통일·외교

속보

더보기

[탈북민 정착스토리](30) "내 이름 새겨진 제품 만들며 '시장 경제'의 힘 느껴요"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식품업체 김명희 ㈜더웰시아 대표
건강원에서 출발해 농업법인 창업
할머니 고향 부여에서 '성공 신화'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북한에서는 아무리 이름난 제품이라도 생산자 개인의 이름을 다는 건 꿈꾸기 어렵다. '수령 유일영도'라는 미명 아래 김 씨 일가 외에 어떤 존재도 '브랜드'로 자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사회에서 개인의 이름을 단 업체를 창업하거나 제품을 생산하는 건 대단한 일로 여겨진다. 낯설고 만만치 않은 자본주의식 회사 운영에 성공하고, 무일푼에서 스스로 일궈냈다는 측면에서다.

[서울=뉴스핌] 할머니 고향인 충남 부여에 정착해 토마토즙 전문업체를 창업한 김명희 (주)더웰시아 대표. [사진=남북하나재단] 2025.12.02

김명희 ㈜웰시아 대표는 품질 좋은 토마토 생산지인 부여 지역에서 식품업체를 창업해 성공적으로 이끌고 있는 사업가다. 이 업체에서 만드는 토마토즙은 토마토를 통째로 갈아 만드는 방식으로 껍질부터 씨까지 영양소 파괴가 없다고 한다.

사회주의에 익숙한 김 대표가 시장 경제에 적응하며 지금을 일구어 내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죽을 만큼 힘들어 가방에 약을 넣고 다니던 순간도, 빈손으로 공장을 그려 보며 가슴 뛰던 순간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보며 주저앉지 않고 우직하고 뚝심 있게 버틴 자신을 칭찬한다. 그리고 12년 전 빈손으로 생산 라인을 만들어 세상이 인정하는 품질 좋은 상품을 만들겠다던 꿈을 이루었지만, 미래를 바라보며 새로운 꿈에 도전한다.

2006년 3월, 할머니의 고향인 부여에 터전을 잡은 김 대표는 이듬해 남편과 가정을 이루었다. 남편은 근처에서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지역에서 즙을 잘 짠다고 유명했다.

지역에 스마트 원예 단지가 조성되고 스마트팜으로 생산된 토마토가 출시되자 그들의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2013년 토마토 즙을 상품화하고 굿뜨레(부여군 공동 브랜드) 인증을 받았다.​ 

◆언론사 '대표 브랜드' 선정에 HACCP 인증도 받아 

2014년에는 한국일보가 뽑은 대한민국 베스트 대표 브랜드가 되기도 했다. 생산 라인이 있으니 지역의 여러 농가에서 토마토 가공 주문이 들어왔지만, 농업 생산물의 특성상 계절을 넘기지 못했다. 농협, 백화점 등의 주문을 받으려면 HACCP 인증도 받아야 했다. 

땅을 매입하고 공장을 짓고 생산 설비를 갖추었다. 경험이 없었던 그는 시설을 완비하며 6개월씩 공장 생산을 멈추기도 했다.

상품을 만들지 못해 자금이 들어오지 않아도 직원 급여는 계속 나가야 했다. 김 대표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텼다.

[서울=뉴스핌] 탈북민 정착지원 기관인 통일부 산하 남북하나재단.

다시 생산을 시작했지만, 판로가 막혀 토마토 원물 가공에 집중했다. 가공을 맡아 받는 수공비는 한계가 있었고 자체로 생산한 상품은 쌓여 갔다.

토마토 가공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상품 판매였다. 첫 시작은 전화로 주문을 받아 팔려고 시도했다. 홍보 마케팅에 무지했던 그는 마케팅 회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을의 관계를 바꾸고자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수원 광교에 '더 웰시아' 직영점을 냈다. 2년여의 시간, 여러 방법으로 출로를 모색했지만, 광고를 하지 않는 직영점도 문을 닫았다.

판매 실패를 계기로 김 대표는 가공에 더 집중했다. 가공을 맡길 농가를 늘려 나갔다. 

토마토가 주 원료이니 농가들과 연계하여 가공을 위탁받고 생산 원료를 확보해야 한다. 남편이 가공을 맡았으니 토마토 원물 물량을 마련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일은 그의 몫이 되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자. 내가 있는 자리에서 꽃을 피워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사회에 녹아들어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냐는 물음에 대한 김 대표의 대답이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꽃을 피워보자" 

토마토 농사를 짓는 지역의 농가들을 찾아 견학하고 청년 단체에도 소속되었다. 시골이라 젊은 사람이 귀했다. 그들과 어울리며 농업인들의 생산물을 구매하고 농사일을 배우기도 했다.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니 계약 농가나 업체 발굴에도 유리했다. 부여를 넘어 공주‧논산 등까지 농민들과 소통하며 어울려 지낸다.

그들 가운데 농사를 잘 지어 대통령상을 받은 청년 농가가 있었다. 3년을 공들인 끝에 그 업체의 농산물 가공을 맡았고, 그의 소개로 또 다른 업체를 만나게 되었다. 

"탈북민을 넘어 그냥 지역에 몸을 담그는 거예요. 다문화 가족들, 며느리들과도 잘 지내요. 그들이 일하고 싶어 하면 일손이 필요한 농가에 연결해 주고, 때로는 그분들이 일감을 소개해 주기도 해요. 내가 먼저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내보이면 그분들도 다가와요." 

올해 4월에는 20톤을 생산했고 그 이후로 매달 평균 5톤에서 10톤가량 생산하고 있다. 토마토 원물은 직접 일부 농사를 짓고, 나머지 물량은 부여 지역 대형 스마트팜 농가들에 연중 계약 재배를 하고 있다.​ 

가공에도 문제가 있었다. 토마토 가격이 오르거나 냉해를 입으면 직격탄을 맞았다. 애써 세운 공장을 살리려면 스스로 판매 영역을 개척해야 했다.

시장 경제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김 대표는 결국 홍보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홍보는 맞지 않는 옷처럼 그에게 어색했다. TV‧블로그‧인스타그램 등 각종 매체 등에 출연하면서 그의 결심은 '마케팅을 배워야 한다'로 굳어졌다.

[서울=뉴스핌] 김명희 (주)더웰시아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남북하나재단] 2025.12.02

'통일 스타트업', '아산상회' 등의 교육을 받고 기업 컨설팅을 받으며 삶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젊고 당당한 청년들과 함께 교육에 참가하며 자신을 갈고닦았다.​ 

"사업만 투자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본인에 대한 투자도 해야 되는 거예요. 공부에는 늦은 때가 없고 나이도 상관없어요." 

이런 마인드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김 대표는 내년 사회적 기업에 도전하려고 한다. 탈북민과 장애인 등 소외 계층과 함께 상생하며 회사를 키우려 한다. 

김 대표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11월에는 블루베리 즙을, 12월에는 양배추 즙을 상품화하여 다양한 제품을 계절에 구애받지 않고 생산하고자 한다. 식품 가공 영역을 넓히고 해외 수출의 길을 여는 것이 현재 그의 목표이다. 

"꿈과 목표는 계속 재설정, 재도전하는 거죠. 저는 70이 될 때까지 현역입니다. 끊임없이 배워 새로운 시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자신을 만들어야죠." 

100억, 200억이 아니라 직원들과 함께 성장하며 통일을 실천하는 것이 그의 바람이며, 그는 이 꿈을 이룰 것이라 자신한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변상문의 화랑담배]김일성 동북항일연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만주(滿洲)는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 그리고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동부를 포괄하는 지명이다. 이중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동북(東北)이라고 한다. 중국은 만주 명칭보다 동삼성(東三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동삼성에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창설한 것은 1933년 9월 18일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중국 공산당은 1928년 봉천에 만주성위(滿洲省委)를 설치하고 전 만주에 걸친 공산 세력 확장에 나섰다. 그러던 중 1933년 9월 18일 남만에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를 창설하였다. 제1군 제1사는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滿洲省委) 남만특위(南滿特委) 관할 반석현위(盤石縣委) 산하 유격대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1사 창설 당시 반석현위 산하 유격대장은 진옥진(陣玉震)이었다. 부대장은 박한종(朴翰鍾)이었고, 대원은 한인 20여 명이었다. 이 유격대가 차츰 발전하여 1930년 10월 중국 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가 되었다. 병력은 한인 80명을 포함 230여 명이었다. 총대장은 경기도 용인 출신 이홍광(李紅光)이었다. 이부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가 된 것이다. 군장(軍長)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사장(師長)은 이홍광(李紅光)이었다. 남만의 반석은 당시 한인 공산주의운동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반석현위 중국 공산당 주요 간부는 대다수 한인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오성륜(吳成崙), 박윤세(朴允世), 한진(韓震), 조걸(趙杰) 등이다. 오성륜은 김성주의 역사 날조와 관련하여 대립 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오성륜을 제대로 알아야 김성주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오성륜은 1898년 11월 7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영와면(永瓦面) 용남동(龍南洞)에서 태어났다. 1906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와 간도에서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했다. 열아홉 살 때 상해에서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2년 3월 상해 황포탄부두(黃浦灘埠頭)에서 김익상(金益相)·이종암(李鍾巖)과 함께 일본군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했으나 실패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있던 중, 탈출하여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 다시 소련으로 건너가서 모스크바공산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29년 중국 공산당 지시에 따라 만주 반석현위 간부가 되었다. 그는(오성륜)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 반석현위 간부로서 요즘으로 따지면 특수부대 성격의 이홍광의 개잡이대(打拘隊)를 지도했다. 이홍광의 개잡이대는 반석현위 일대의 지주는 중국·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개犬>로 부르며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이 개잡이대가 사실상 이홍광의 1사 핵심 전력이기도 했다. 오성륜은 외모가 빼어났다. 말과 글이 수려했다. 당연히 이 지역 일대의 여인들이 그를 좋아했다. 오성륜이 남만주 거주 한인 중 제일 먼저 중국 공산당에 입당시킨 인물이 이동광(李東光)이다. 이동광 여동생 이영숙은 미모가 빼어난 과부였다. 오성륜이 이영숙의 집을 거점으로 잡았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이영숙은 오성륜에게 반해버렸다. 오성륜이 시키는 심부름이면 거절하는 경우가 없었다. 둘은 만난 지 1개월이 안 돼 동거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안 오성륜의 상해 동거녀 두군서(杜君恕)가 이영숙을 찾아왔다. 두군서는 오성륜의 의열단 친구 김성숙의 중국인 아내 두군혜(杜君慧)의 친동생이었다. 두군서도 오성륜을 처음 보았을 때 사랑에 빠져버린 여자였다. 두 여자가 머리끄덩이까지 잡고 싸웠다. 오성륜은 독일에서도 독일 여자와 깊은 사랑을 한 바 있었다. 그는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풍류남아였다. 1941년 동북항일연군 잔여 세력이 소련으로 넘어갈 때 같이 가지 않고 당시 중국 열하성(熱河星)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에 투항하였다. 야마모도 히데오(山本英雄) 라는 일본 이름을 지어 친일 활동하였다. 사망 일자는 알 수 없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은 1934년 3월 동만특위(東滿特委) 관할 연길현(延吉縣) 삼도위(三道崴)에서 창설했다. 제2군 제1사 역시 한인 주진(朱鎭)이 대장으로 있던 유격대가 근간이었다. 총병력은 565명이었는데, 이중 한인이 549명이었다. 제2군 군장(軍長)은 중국인 왕덕태(王德泰)였고, 제1사 사장(師長)은 한인 주진(朱鎭) 이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총 11개 군(軍) 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1936년 7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하였다. 그 이유는 1935년 7월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한 '통일전선전술' 결정에 따른 것이다.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되어 구성돼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을 반파쇼인민전선으로 묶어 자기 나라의 독재정권을 쓰러뜨리는데 총동원하되, 공산당이 그 주도권을 잡아 독재정권을 타도한 후,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국가에 있어서는 자기 민족의 주권을 찾기 위해 전 민족을 반제민족통일전선으로 묶어 해방운동을 벌이되, 공산당이 그 주도권을 잡아 해방이 이루어지면 바로 공산정권을 세우는 방식이다.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이 제시한 두 번째 방식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을 동북항일연군으로 그 명칭을 바꾼 것이었다. 즉 외양상으로 폭이 넓은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위해 공산주의 계급혁명 색채가 짙은'인민혁명군' 명칭을 버리고, 대신 항일 구국군의 민족적 이미지가 있는「항일연군」을 사용한 것이다. 이른바 중국 공산당의 1935년 8·1선언이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코민테른 지시대로 항일민족전선 결성을 위해 1936년 4월부터 오의성 부대와 접촉하기 시작하여 8월에 양군(동북항일연군, 오의성 부대) 총합 2,000여 명의 병력으로 합동작전을 펼쳐 무송현성(撫松縣省)을 공격하여 만주군을 격멸했다. 이때 김성주는 동북항일연군으로 전속(轉屬: 원적을 바꾸어 소속을 바꿈)하였다. 전속부대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였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1-12 06:00
사진
안세영, 왕즈이 잡고 말레이오픈 3연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날카로운 공격력까지 장착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안세영(삼성생명)이 2026년 첫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다. 안세영은 1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를 56분 만에 게임 스코어 2-0(21-15, 24-22)으로 물리치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0만1500달러(1억3000만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 [사진=BWF]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지난 해 8차례 만나 모두 왕즈이를 제압했던 안세영은 이날 승리호 상대 전적 17승 4패가 됐다. 왕즈이는 지난해 12월 21일 왕중왕전 결승에서 패한 뒤 "안세영은 항상 모든 나라 선수들에게 롤모델"라며 믹스트존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쏟았다. BWF 관계자조차 "왕즈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에게 긍정적인 변수가 많았다.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던 세계 3위 한웨이(중국)가 감기 몸살로 기권했고 준결승에서 최대 난적인 세계 4위 천위페이(중국)의 기권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 왕즈이는 이날 경기 전 "안세영은 허점이 거의 없는, 매우 철저하고 완성도 높은 선수"라며 승리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범실을 쏟아내며 1-5까지 밀렸다. 뒤늦게 리듬을 찾은 안세영은 하프 스매싱을 앞세워 득점을 쌓아 10-11로 인터벌에 들어갔다. 휴식 후 특유의 송곳샷이 살아나며 역전했고 셔틀콕을 상대 엔드 라인과 사이드 라인 위에 떨어뜨리며 21-15로 게임을 잡았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승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2게임에선 짜릿한 뒤집기쇼를 펼쳤다. 9-17까지 밀려 패색이 짙었으나 수비와 길게 가져가는 랠리로 추격에 나섰다. 왕즈이가 20-19로 먼저 게임 포인트에 들어갔지만 안세영이 듀스를 만들고 23-22로 앞선 뒤 대각 스매시로 챔피언십 포인트를 뽑았다. 2026년을 여는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안세영은 환호하는 말에이시아팬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psoq1337@newspim.com 2026-01-11 14:46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