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단체, 국비 비율 상향·대체 재원 마련 등 요구
광역 "지자체 편성권 무시" 반발…분담 비율 부담
李 "30% 분담 동의하는 곳 추가 공모해 신속 추진"
송미령 "도비 분담 의사 재조회 중…분담 의견 많아"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도비 30% 분담' 조건에 막혀 현장에서 잇따라 멈춰 서고 있다. 충남 청양군이 지급 신청 접수를 중단하는 등 상당수 지역에서 사업 추진이 보류되면서, 내년부터 매달 15만원 상당의 지역사랑상품권을 지급하려던 계획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이 참여 의사가 있는 도·군을 중심으로 추가 공모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라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 농어촌 기본소득을 둘러싼 갈등 구도도 달라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앙 정부와 광역단체 간 대립을 넘어, 사업을 추진하려는 기초단체와 재정 부담에 미온적인 광역단체 간 문제로 확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 도비 30% 단서에 시범사업 '올스톱'…10곳 중 9곳 보류
12일 각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르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은 국회가 '광역 도비 30% 분담'을 국비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명시하면서 현장에서 사실상 멈춰 선 상태다. 재원 분담 비율을 둘러싼 혼선이 커지면서 실제 집행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인구가 줄고 고령화된 농어촌 지역 주민에게 매달 일정액을 조건 없이 지급하는 국가 시범사업이다. 농촌 소멸을 막고 지역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을 시험해 보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내년부터 2년간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된 군 단위 지역 주민에게 월 15만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현금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등으로 설계해 지역 내 소비를 유도한다. 사업은 국비 40%와 지방비 60%로 재원을 분담하되, 당초에는 지방비 비율을 기초단체와 광역단체가 자율적으로 조정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내년 예산 심의에서 국회가 "광역이 도비 30%를 확보하지 않으면 해당 군의 국비 배정을 보류한다"는 부대의견을 붙이면서 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후 농식품부가 시범지역이 있는 광역단체에 30% 분담률 상향·확약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면서 갈등이 본격 점화됐다. 이로 인해 도비 30%를 확보하지 못한 지자체들은 사업 보류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현재 사업에 참여하는 기초단체는 ▲경기 연천 ▲강원 정선 ▲충남 청양 ▲전북 순창 ▲전남 신안 ▲경북 영양 ▲경남 남해 ▲충북 옥천 ▲전북 장수 ▲전남 곡성 등 총 10곳이다. 이 가운데 도비 30% 요건을 충족한 곳은 경기 연천군이 유일한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9곳은 모두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충남 청양군은 지난 10일부터 농어촌 기본소득 지급 신청 접수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해 일정을 장점 중단했다. 전체 사업비 540억원 중 충남도가 10%에 해당하는 53억원만 분담하기로 해, 이를 30%로 끌어올리려면 162억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내년도 본예산 심사가 막바지에 접어든 상황에서 증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경남 남해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체 사업비 702억원 중 경남도가 18%에 해당하는 126억원만을 지원하기로 해, 분담 비율을 30%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84억원의 예산이 더 필요하다.
기초단체들은 광역의 분담 여부와 무관하게 사업이 좌초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국비 비율을 상향하거나 지방소멸대응기금·교부세 등을 활용한 대체 재원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도 단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국회와 정부가 사전 협의 없이 도비 30% 분담 조건을 일방적으로 명시해 지자체의 예산 편성권과 자치권을 사실상 무시했다는 불만도 나온다. 준비를 마친 사업이 예산 심의 막바지에 뒤집히면서 현장의 혼선과 부담만 키웠다는 지적이다.
모 지자체 관계자는 "중앙 정부를 벗어난 현실적인 입장에서는 국비 40%에 지방비 60%라는 기본 설계 자체도 과중하다"며 "국회와 정부가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도비 30%를 일방 강제하고, 미이행 시 국비를 끊겠다고 한 것은 지방 재정과 자치권 침해이자 예산 떠넘기기"라고 우려했다.
◆ 李, "기본소득 논란거리" 지적…송미령 "의견 재조회 중"
이 같은 현장 혼선은 지난 11일 이 대통령 주재한 농식품부 업무보고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이날 이 대통령은 송 장관을 지목해 "농어촌 기본소득이 논란거리"라며 "광역 도들은 30%를 분담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기초단체들은 광역 도가 안 해준다는 이유로 왜 우리를 탈락시키냐면서 차라리 그 돈을 직접 낸다고 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광역 도에서 30%를 분담하지 않으면 국회 부대의견을 무시하기 어렵다"면서 "분담 의사가 없는 광역은 건너뛰고, 동의하는 도·군을 대상으로 추가 공모해 신속하게 진행하라"고 주문했다. 사업 구조를 고수하되 의지가 있는 지역 중심으로 속도를 내라는 취지다.

이에 송 장관은 "광역단체별 도비 분담 의사를 다시 조회하고 있다. 분담하겠다는 의견을 가진 곳들이 꽤 많다"며 "추가 공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을 둘러싼 갈등 구도는 중앙정부와 광역단체 간 대립을 넘어, 사업을 추진하려는 기초단체와 재정 부담을 이유로 주저하는 광역단체 사이의 문제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농식품부는 국회가 설정한 재원 분담 조건을 존중해야 한다는 원칙과, 시범사업 자체가 좌초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현실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떠안게 됐다.
농식품부는 이달 말 도 단위 관계자 간담회를 열어 분담 구조와 추진 방식에 대한 해법을 논의할 계획이다. 추가 공모를 통해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방침이지만, 도비 30% 분담 조건을 그대로 둔 채 시범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릴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원 분담 원칙을 둘러싼 중앙·지방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농어촌 기본소득은 정책 실험 이전에 제도 설계 단계에서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r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