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2025년 을사년을 불과 보름 남짓 남긴 시점에 주요 대기업들은 굵직한 인사와 신년 사업구상을 어느 정도 마치고 올해 마무리에 한창이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은 아직 사장단 인사도 발표하지 않은 채 긴장감이 감도는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룹 소프트웨어 기반 자동차(SDV) 및 자율주행 개발 등을 총괄하는 송창현 AVP본부장 겸 포티투닷 대표의 전격 사의에 따른 후폭풍 때문에서다. 올해 초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거세게 몰아닥친 관세 파고를 넘는 것만으로도 벅찬 해였던 현대차그룹에게 유독 긴 한 해다.

그의 사임은 단순한 'C레벨'(CEO·CFO·COO 등 'Chief'로 시작하는 기업의 최상위 의사결정권자) 한 명의 퇴임을 넘어 현대차그룹의 소프트웨어 기반 미래 모빌리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불러일으켰고 정의선 회장의 고심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의 올해 1년을 돌아보던 중 정의선 회장이 지난 1월 6일 경기 고양시 현대모터스튜디오 고양에서 개최한 그룹 신년회에서 직접 전한 을사년 신년사가 퍼뜩 떠올랐다.
정 회장은 모두발언에서 "우리가 예상하는 위기가 아니더라도 지금 세상은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고, 고객들의 기대는 매일 높아지고 있으며, 시장에서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며 "작년에 잘 됐으니 올해도 잘 되리라는 낙관적 기대를 할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잘 버티자는 것은 좋은 전략이 될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신년회를 취재하고 있던 기자는 고개를 들어 정의선 회장을 다시 바라봤다.
현대차와 기아가 지난해 당시 역대 최고 수준의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톱(TOP) 3를 넘어 더 큰 가능성이 기대됐던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당선으로 관세 리스크는 예상이 됐지만 정 회장의 위기에 대한 선제 대비 주문은 꽤나 진지했다.
정 회장은 그룹 경영진들이 참여한 좌담회 형식의 'HMG 라운드 테이블'에서도 의미있는 발언을 이어갔다.
정 회장은 좌담 도중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를 인용하며 "성장 정체 기업들은 혁신과 적응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특히 이들 기업 임원들은 고객 이익에 부합되는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드러커는 통상적으로 거론되는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이 아니라 '고객'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담론을 이끈 학자다.
이윤은 기업의 생존과 미래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조였다. 그는 저서 '경영의 실제'에서 "기업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고객"(It is the customer who determines what a business is.)이라고 강조했다.
이때 고객을 창조하기 위한 구체적 수단이 바로 '마케팅'과 '혁신'이다. 마케팅은 기업이 본인들이 만든 것을 파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현실과 필요'에서 시작해야 하며, 혁신 역시 기업 스스로의 발전이 아닌 '고객에게 더 낫고 더 경제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
정 회장이 올해 신년회 좌담 내내 설파한 내용은 드러커의 기본 철학과 다르지 않다.
"무엇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냐. 그 중심에는 고객이 있다.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서 수익을 거두기 이전에 고객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켜주고 고객의 삶에 스며들어서 동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은 결국 개인을 위해 생활하고 제품,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불만이 없어야 한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 각자가 고객을 생각한다면 고객에게 답이 있기 때문에 훨씬 문제 해결이 쉬워질 수 있다."

신년 좌담회에는 모든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참석하지 않았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 호세 무뇨스 현대차 사장, 성 김 현대차그룹 전략기획담당 사장, 송호성 기아 사장, 이규복 현대글로비스 사장, 정형진 현대캐피탈 사장,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이 자리했고, 공교롭게도 현재 현대차그룹에 화두를 던진 송창현 사장이 있었다.
현대차그룹 주요 최고 경영진도 아니고, 핵심 계열사 대표이사도 아니며 심지어 지금도 적자를 지속하고 있는 포티투닷 사장이 소수가 참석한 신년 좌담회 멤버였다는 점이 현 상황과 맞물려 새삼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당시 정 회장은 위기를 '예상할 수 있는 도전'과 '예상하지 못했던 도전'으로 구분해 그에 맞춰 대응할 것을 임직원들에게 주문했고 고객들에게도 알렸다.
송 사장의 전격 사의와 포티투닷 임직원들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를 두고 그룹과 업계, 여론에서 수많은 설왕설래가 오간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보다 한 달이나 늦어진 현 시점까지도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고객을 창조하기 위한 마케팅과 혁신의 방법은 경우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정 회장이 말하는 '고객'과 현대차그룹 임직원들이 목표로 해야 하는 '고객'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올해 인사를 앞둔 정 회장의 장고(長考)에는 지금의 현대차그룹에게 '고객의 현실과 필요'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자리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해 본다.
kimsh@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