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시행사·신탁사·중소건설사 연쇄 압박
중견 건설사 줄도산에 중대재해까지 '안팎 위기'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2025년 건설업계는 해외에서는 준수한 성적표를 받아들었지만, 국내에서는 구조조정과 중대재해 증가, 시행사·신탁사 부실이 겹치며 극명한 온도차를 보였다. 미분양 장기화와 시행사·신탁사 부실, 안전사고 증가는 건설업 전반의 구조적 위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 유럽 원전 효과…해외수주 36% 급증
올해 국내 기업의 해외건설 수주 실적은 대형 프로젝트를 발판으로 큰 폭의 성장세를 보였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1~11월 누적 해외건설 수주액은 446억957만달러(약 64조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326억9353만달러)보다 36% 이상 증가했다.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수주 영향으로 유럽 수주액은 198억2431만달러를 기록하며 전체의 44.4%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해 약 50억달러 수준에서 3배 이상 급증한 수치다. 반면 중동은 사우디 CKD 자동차 공장과 아미랄 석유화학 플랜트 등 대형 사업을 수주했음에도 지정학적 긴장과 발주 지연 영향으로 117억1857만달러에 그치며 전년 대비 29.7% 감소했다.
업계는 연말에 계약이 집중되는 관행을 감안할 때 추가 수주 여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 네옴시티 일부 공사와 카타르 LNG 프로젝트 등이 가시권에 들어오면서 올해 전체 해외건설 수주액이 500억달러를 넘어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중국·스페인·튀르키예 기업을 중심으로 한 저가 수주 경쟁 심화는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사우디 네옴시티, 우크라이나 재건, 인도네시아 신수도 개발 등을 둘러싸고 국가 간 경쟁이 한층 치열해지는 모습이다. 박용정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지속적인 해외 수주 확대를 위해서는 기술 경쟁력과 신인도 확보가 필수"라며 "G2G 협력 확대와 '원팀 코리아'를 중심으로 한 공공·민간 통합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 존폐 기로에 선 중소 건설사… 내년까지 이어질까
건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업계 구조조정 압력이 커지고 있다. 폐업과 회생 절차를 밟는 중견 건설사가 늘어나는 가운데, 미분양 주택 증가가 재무 건전성을 추가로 압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올해 1~9월 폐업 신고를 한 종합건설사는 486곳으로 전년 동기(435곳) 대비 11.7% 증가했다. 4년 전(226곳)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전문건설업 폐업은 같은 기간 2083곳으로 전년 동기(2175곳)보다 소폭 감소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들어 신동아건설, 대저건설, 삼부토건 등 다수 중견 건설사가 회생 절차에 돌입했으며, 조기 회생에 성공한 곳은 신동아건설이 유일하다. 미분양 장기화로 자금 회수가 지연되면서 유동성 위기가 현실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11월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8794가구로 전월 대비 0.4% 감소에 그쳤다. 특히 준공 후 미분양은 2만9166가구로 전월보다 3.9% 늘어나, 분양은 완료됐지만 실제 입주로 이어지지 않는 물량이 증가하며 건설사들의 자금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는 미분양을 줄이기 위해 지방 준공 전 미분양을 사업 주체가 원할 경우 1년 이내에 환매할 수 있는 '안심환매 제도'를 도입했으나, 가시적 효과는 크지 않은 상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미분양 관리뿐 아니라 자금시장 안정과 구조적 리스크 관리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건설업은 폐업보다 양도·양수가 잦은 산업임에도 부도가 늘고 있다는 점이 우려스럽다"며, "자금시장 안정화와 하도급대금 지급보증 등을 통해 협력업체로 위험이 전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개발업·신탁업 동반 부실에…업계 전반 '곡소리'
건설사뿐 아니라 대형 시행사 붕괴가 현실화되면서 부동산 개발업 전반에 위기감이 확산된 한 해였다.
지난 9월 DS네트웍스는 서울회생법원에 워크아웃과 회생절차를 동시에 진행하는 '하이브리드 구조조정'을 신청했다. 지난해 영업손실 1067억원으로 적자 전환했고, 당기순손실은 3636억원으로 전년 대비 600% 이상 급증한 영향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시행사 매출 1위를 기록하며 엠디엠, 신영과 함께 '3대 대형 시행사'로 꼽혔던 만큼, 시장 충격은 컸다. 시행사 부실은 신규 진입 위축과 폐업 증가로도 확인된다. 국토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부동산개발업 신규 등록 업체는 59곳으로, 지난해 연간 등록 수(171곳) 절반에도 못 미쳤다. 2022년 신규 등록 404곳과 비교하면 약 30% 수준이다.
폐업 신고도 증가세다. 지난해 368곳이 문을 닫았고, 올해 상반기에도 115곳이 폐업했다. 전국 시행사 수는 지난해 2408개로 전년 대비 9.4% 감소했다.
신탁업계도 침체를 피하지 못했다. 국내 14개 부동산신탁사의 올해 3분기 순손실 합계는 589억원에 달했으며, 절반 가까운 회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위지원 한국신용평가 금융1실장은 "토지신탁 보수가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하고, 책임준공관리형·차입형 토지신탁 사업장의 부실이 겹치며 대손 부담이 확대됐다"며 "금융감독원의 충당금 적정성 점검 이후 대규모 대손상각이 반영된 점도 실적 악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시행사와 신탁사 동반 부실이 건설·금융권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박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분양가를 낮춰 수요를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금리 인하 기대에도 불구하고 분양 경기 회복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중대재해 '무관용' 시대…'건설안전특별법' 향방은
올해 건설업계는 중대재해가 잇따르며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걸었다.
지난 2월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한 세종~포천고속도로 현장에서 교량 붕괴 사고로 4명이 숨졌고, 4월에는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던 경기 광명시 신안산선 공사현장에서 작업자 1명이 사망했다. 이 밖에도 대우건설, 롯데건설, GS건설 등 주요 건설사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하며 최고경영자들이 연이어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정준호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2024년 최근 5년간 국내 10대 건설사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113명에 달한다. 연평균 22명 이상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건설현장 사망사고를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규정하며 무관용 원칙 적용을 천명했다. 또한,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 발생 시 연매출 3%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 또는 1년 영업정지 명령을 포함한 건설안전특별법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업계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졌다. 현재 이 법안은 국토교통위원회 심사에 상정돼 내년 결론이 날 전망이다.
건설업계는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 충격을 우려한다. 영업정지나 과징금 중 어느 제재를 적용해도 중소 건설사에는 치명적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사고 현장과 관련 없는 연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감당하지 못한 건설사가 폐업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산업재해 사망자 589명 중 46.9%인 276명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했다. 한국건설안전학회 관계자는 "건설안전특별법은 모든 참여자의 안전 책임을 명확히 하고, 발주자의 과도한 요구를 제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한 강도 높은 입법과 산업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것이 내년 건설업계의 최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chulsoofriend@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