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10월 뉴욕 첼시서 갤러리 초대전 잡혀 있어
작은 존재들 밀집된 신작 '인간풍경' 등 40여점, 사직동 공간풀숲서 공개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작가' 김영미(KIM Young-Mi)가 국내에서 4년 만에 개인전을 갖는다. 김영미는 지난 4년간 뉴욕의 현대미술 중심지인 첼시에서 두차례 개인전을 가졌는데 이번에 '마음의 기후'라는 타이틀로 종로구 사직동 공간풀숲에서 서울 전시를 연다. 따라서 이번 개인전은 작년 뉴욕 첼시 전시의 귀국보고전에 해당된다.

재단법인 숲과나눔(이사장 장재연)은 김영미 작가의 개인전 '마음의 기후'를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공간풀숲(관장 최연하)에서 2월 4일부터 2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이 전시는 복합문화예술공간인 공간풀숲의 2026년 첫 번째 기획전으로, 마침 새 봄을 알리는 입춘(2월 4일)에 전시를 오픈한다.
이번 초대전에는 인간을 주제로 오랫동안 작품활동을 해온 김영미 작가의 유화 등 회화작품과 속도감 넘치는 드로잉 등 총 40여 점이 나온다. 전시 타이틀은 '서로 돌봄'과 '상생'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의 기후'를 헤아려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출품작 중에는 파도가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연상케 하는 색면화들이 여럿 포함됐다. 장엄하고 숭고미가 느껴지는 푸른 화폭이다. 또 붉디 붉은 가을 단풍숲을 보는 듯한 회화도 있다. 이들 일련의 작품은 멀리서 보면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색면으로 읽힌다. 하지만 화폭에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무수한 '작은 인간들'이 층층이 쌓여 있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놀라운 반전이다. 수천·수만의 인간 존재들이 켜켜이 탑을 이루며 하나의 거대한 풍경으로 변환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추상회화의 선구자인 김환기 화백이 뉴욕의 작업실에서 두고온 고국을 그리워하며 한점 한점 점을 찍으면서 거대한 추상화(점화)를 완성했다면 김영미는 1cm도 안되는 작은 인간군상을 그리고, 또 그리면서 추상적 색면화를 완성한 셈이다. 작가는 여기서 그림의 근간이 된 인간 개개인을 '빛의 점'이자 '존재의 입자'로 설정하고, 서로 다른 생의 총합이 만들어내는 '에너지의 지층'을 화면 위에 탄탄하게 구축하고 있다.
김영미의 화폭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바람에 흩날리는 잊혀진 이름들의 합창이 들리는 듯하다. 인간 존재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의 그림은 무수한 얼굴들의 별자리로 이뤄진 '기억의 천체'이자 '아름다운 유니버스'다.
이 군상들은 단지 사람이 아니라, 살아내지 못한 말, 견디다 지워진 감정, 그리고 유전되지 않은 삶의 잔여물이기도 하다. 작가가 물감과 붓을 통해 남긴 흔적. 그것은 그가 살아 있다는, 그리고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사랑하고 질문해가는 증거다.

반복된 형상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층위를 읽게 되는데 청록과 보라, 자홍빛으로 물든 군중은 단순한 형상이 아니라 감정의 입자들이고, 침묵의 내러티브다. 희미한 중심의 형상들은 어쩌면 작가 자신, 혹은 그가 수없이 마주했던 또 다른 '나'일 것이다.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얼굴들은 잊힌 이들, 지나간 감정, 사랑의 퇴적물로서 작가의 내면을 조용히 투영하고 있다.
이로써 김영미의 작업은 결국 '사라짐'을 기록하는 고백이다. 소멸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김영미의 회화는 시리도록 푸르고, 서늘하다. 회화라는 가장 진실하고 원초적인 언어로 그는 우리 앞에 머문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을 이룬 파편이자, 우리 모두의 기억 깊은 곳에서 울리는 '침묵의 울림'이다.
김영미 작가는 "내가 작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무한한 존재의 빛'은 각 개인이 지닌 내면의 작은 에너지들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광맥'이 되는 순환을 드러내는 것이다. 즉 인간이라는 종이 우주 속에서 티끌처럼 작고 여린 존재이지만 동시에 우주의 중심이자 명상적 존재임을 확인하는 '인간에 대한 찬가'가 바로 나의 작품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마음의 기후'전은 김영미 작가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15년간 직접 돌보며, 이별의 순간까지 함께 하면서 깨달은 인간 삶의 유한함과 존재의 근원을 화폭에 옮긴 신작으로 시작한다. 작가가 어머니의 초상을 그린 역작 '숨겨진 초상-위대한 Mom'은 마치 모친이 전 생애에 거쳐 만났던 사람들이 화면을 가득 채운 듯하다.
꼬박 두 달을 매달려 완성한 이 작품은 2년 전 생을 달리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간절한 사랑이 켜켜이 베어 있다. 김영미는 이 신작에서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밀도 높은 '회화의 생생(生生)함'을 구현해, 마음의 보편적 공감지대를 펼치는 특유의 존재론적인 '생생회화'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전시 타이틀 중 '마음'과 '기후'의 상태를 표현할 때 흔히들 '좋다' 또는 '나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류세가 예고된 이 기후위기 시대에 단순한 호불호로 마음과 기후의 형편을 말하기엔 한계가 있다. 나의 마음과 행위가 타자와 사회, 세계, 나아가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영향관계를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미 작가는 매일 아침 작업실 근처 평화의공원을 홀로 산책하고, 제철 푸성귀와 싱싱한 해산물로 밥상을 차려 이웃과 함께 나눈다. 일상에서 자기의 몸을 돌보고, 나눔을 실천하는 삶이다. 마음의 기후를 살피고, 지구의 온도를 상상하며 동시에 이를 화폭에 옮기는 행위를 이어가는 것이다. '타자 돌봄'을 통해 자기를 돌보고,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공적이고 정치적 책임으로 연결해 돌봄의 윤리와 가치를 새롭게 환기한다.
이번 개인전에는 인간을 빼곡히 채워넣은 추상적 '인간풍경' 연작과 함께 생동감이 물씬한 드로잉 작품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인간풍경' 연작이 숭고하고 서늘하다면, 인간의 신체를 빠르게 포착한 드로잉은 역동적이고 경이롭다. 김영미 작가는 지난 40년간 인간을 테마로 수없이 많은 인체 드로잉을 했다. 매일 5~8시간 이상, 작업실에 스스로를 가두다시피 하며 작업에 올인해온 작가의 필력을 드로잉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술비평가 최연하 공간풀숲 관장은 "김영미의 회화는 인체를 그리지만, 그것은 결코 '몸'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체와 얼굴들은 하나의 형상을 구성하면서도 동시에 해체되며,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으로 관람자를 이끈다. 여기서 인체는 재현의 대상이 아니라, 기억과 고통, 그리고 사유의 잔해들이 응축된 회화적 언어다.수만의 인물들이 중첩되어 하나의 얼굴을 이루는 화면은 개인의 고독과 집단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이다."라고 평했다.
또 "형식적으로 김영미의 회화는 멀리서 보면 추상에 가깝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구체적인 인체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 이중성은 그의 작업이 지닌 본질을 잘 보여준다. 인간의 본질은 뼈와 살을 넘어서는 곳에 있으며, 작가는 그 지점을 회화적으로 더듬는다. 말로는 닿지 않는 진실, 삶의 이면에 감춰진 고요한 외침이 그의 화면 곳곳에 스며 있다."라고 밝혔다.
▶'공간풀숲'은 어떤 곳?= 김영미 작가를 초대해 개인전을 여는 '공간풀숲'은 (재)숲과나눔의 '환경아카이브풀숲'에 탑재한 자료를 바탕으로, 환경문제를 예술과 결합해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전달하고자 탄생한 환경·예술·문화의 거점 공간이다. '한국환경운동사' 30년 역사를 다룬 '기록과 기억-함께사는길 30년',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 '두 개의 바다', 노순택 사진전 '흑산, 멀고 짙고'를 개최하며 주목을 받았다.
또한 지난 2019년에는 '크리스 조던 : 아름다움 너머', 2021년에는 '코로나19 사진아카이빙 '거리의 기술' 전국 순회전'을 개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24년에는 빠르게 변화하는 가구 형태에 대해 사회학과 문화인류학 시각으로 접근한 전시, '41.6% 1인가구'를 개최했다. 또한 환경박사 장재연의 바다생물 이야기를 '800번의 귀향' 전시회로 개최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도 숲과나눔은 '공간풀숲'에서 환경과 예술의 특별한 만남의 장을 지속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김영미(KIM Young-Mi, 金英美) 작가는?=원광대학교 미술대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1993년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뉴욕, 몬트리올, 상하이, 룩셈부르크,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본 등지에서 지금껏 37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인간의 이상과 현실, 욕망과 한계 등을 동물에 빗대 독특하게 표현한 '동물우화' 연작과 BTS 등 현대인 시리즈, 탄탄한 '인체 드로잉'으로 입지를 다졌고 최근에는 '인간풍경' 연작으로 뉴욕 상하이 등지에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치매에 걸린 노모와 함께 하며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상작품 'Painter & Mom'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Tate Modern Gallery)에서의 초대상영을 필두로 국내외 영화제에 다수 소개됐다. 이어 2020년 제37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한국 경쟁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영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을 비롯해 베를린 한국대사관, 워싱턴 D.C 한국문화원, 상하이 장가항시립미술관 등 국내외 기관에 다수 소장돼 있다.
한편 공간풀숲은 김영미 작가 '마음의 기후' 개인전 개막일(2월 4일) 오후 5시에 작가의 '드로잉 퍼포먼스'를 개최하며, 2월 21일에는 작가로부터 직접 듣는 '아티스트 토크'를 연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계속된다. 매주 일,월 휴관. 설연휴(2월 15일~2월 18일)휴관. 무료관람.
art29@newspim.com
숲, 숨 창작자의 환경, 71x101cm, mixed media, 2025 ⓒKim Young Mi 이미지제공=공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