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진관사가 30일 진관사 태극기 국보 승격 실사를 앞두고 항일운동 기억을 복원하려 했다.
- 진관사 태극기는 일장기를 덮어 그린 저항의 상징으로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과 함께 국보 승격·서훈 재평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 사찰은 태극기 박물관과 무궁화 정원 조성으로 독립운동과 태극기를 지킨 정신을 현대에 계승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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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월 스님 서훈 격상·태극기 박물관·무궁화 정원까지 '역사 복원 3대 원력'
30일 국가유산청 현지실사… 불단 속 90년 항일의 증거, 국보 문턱에 서다
[서울=뉴스핌] 정태선 기자 = "태극기는 천 조각이 아닙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낸 정신의 흔적입니다."
서울 은평구 북한산 자락 진관사(津寬寺)가 다시 역사의 중심에 섰다. 오는 30일 국가유산청의 국보 지정 현지실사를 앞둔 산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계곡물은 조용히 흐르고, 풍경은 바람에 흔들렸다. 하지만 진관사 안의 공기는 달랐다. 오랜 숙원을 눈앞에 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긴장과 기대가 동시에 감돌았다.
진관사 태극기의 국보 승격 심사를 앞두고, 이 사찰은 단순한 고찰을 넘어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의 기억이 응축된 현장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사찰 측은 태극기 국보 승격을 계기로 태극기 박물관 건립과 백초월 스님 재평가, 무궁화 정원 복원까지 이어가는 '역사 복원 프로젝트'를 본격화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진관사 본엄 스님(템플스테이 국장)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태극기 한 장이 국보가 되느냐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저희가 바라는 것은 유물 하나의 격상이 아닙니다. 그 태극기를 숨기고 지켜낸 사람들의 정신까지 함께 기억되는 것입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진관사가 17년 동안 품어온 바람이 모두 담겨 있었다.
모든 이야기는 2009년 5월 26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칠성각 해체·복원 공사가 한창이던 날, 불단 뒤 벽체 속에서 낡은 보자기 하나가 발견됐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였다. 보자기를 풀자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래된 태극기였다. 그 아래에는 독립신문과 신대한 창간호, 자유신종보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증언하는 문건 19점이 함께 묶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 언젠가는 반드시 세상에 알려질 것이라 믿고 정성껏 봉인해 둔 시간의 캡슐 같았다.
본엄 스님은 그날을 이렇게 전했다. "먼지를 털어내는 순간 태극 문양이 보였습니다. 절 안에서, 그것도 불단 밑에서 태극기가 나올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이 태극기를 세상 밖으로 제대로 꺼내는 것이 진관사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관사 태극기는 처음부터 특별했다. 새 천에 만든 국기가 아니었다.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를 다시 그려 넣었다. 식민 지배의 상징을 민족의 상징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시대, 일장기를 태극기로 바꾸는 행위 자체가 저항이었다. 붓 한 자루와 먹, 그리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의지만으로 완성된 독립선언이었다.

국가유산청도 이 가치를 인정해 2021년 진관사 태극기를 보물 제2142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진관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5월 진관사 태극기와 데니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등 보물 세 점에 대한 국보 승격 절차에 착수했고, 오는 30일 현지실사를 진행한다. 최종 지정 여부는 연말 국가유산위원회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불교계는 진관사의 태극기 국보 승격은 목적지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보고 있다. "보물이 됐을 때도 감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태극기가 품은 의미는 그 이상이라고 늘 생각했습니다. 왕실도, 정부도 아닌 이름 없는 민중과 승려가 직접 만든 저항의 상징입니다. 국가가 그 가치를 국보로 인정해 주길 바라는 이유입니다."
학계는 이 태극기를 만든 인물로 백초월(1878~1944) 스님을 지목한다. 그는 3·1운동 이후 한용운·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끌며 진관사와 마포포교당을 거점으로 지하신문을 제작·배포하고 군자금을 모았다. 결국 1944년 일제에 체포돼 청주교도소에서 옥중 순국했다.
인터뷰 내내 본엄 스님이 가장 자주 언급한 이름도 백초월 스님이었다. "태극기는 국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태극기를 만든 분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했습니다." 정부는 백초월 스님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만, 같은 시대 항일운동을 이끈 한용운 스님은 대한민국장, 백용성 스님은 대통령장을 받았다. 본엄 스님은 "백초월 스님 역시 불교계 항일운동을 조직하고 이끈 지도자였다"며 "활동 범위와 공적을 다시 검토해 서훈도 재평가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관사가 그리고 있는 미래는 태극기 한 점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큰 숙원사업은 태극기 박물관 건립이다. "지금은 태극기 한 점을 전시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과 문건, 백초월 스님의 삶까지 모두 연결해 보여줄 공간이 필요합니다. 백 마디 설명보다 실물 하나가 더 오래 기억됩니다."
사찰 입구에 조성 중인 무궁화 정원도 같은 뜻을 품고 있다. "무궁화는 나라를 잃은 시절 민족의 상징이었습니다. 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독립운동의 기억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관사는 박용성 전두산그룹 회장, 무궁화를 사랑하고 가꾸는 시민모임 등 시민들의 후원으로 무궁화를 한 그루씩 심고 있다. 본엄 스님은 "꽃을 심는 일이 결국 기억을 심는 일"이라고 말했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생명의 은인이었던 진관대사를 기리기 위해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수륙재를 올리던 국행도량이었고, 전쟁과 화재를 겪으면서도 여러 차례 중창을 이어왔다. 왕실의 기도를 품었던 절은 600여 년이 흐른 뒤 독립운동의 거점이 됐고, 이제는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증언하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 됐다.
본엄 스님은 인터뷰 말미에 다시 한번 태극기를 바라봤다. "국보가 되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이 태극기가 불단 밑에 숨겨졌는지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90년 동안 벽 속에서 침묵하던 태극기는 이제 국보의 문턱에 섰다. 그러나 진관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문화재 지정 여부를 넘어선다. 우리는 과연 태극기만 국보로 만들 것인가. 아니면 그 태극기를 목숨처럼 품고 지켜낸 사람들의 정신까지 대한민국의 유산으로 기억할 것인가.

windy@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