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1950년 6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남행하며 대구로 향했다.
- 대통령은 서울 탈환을 고집하다가 대전에서 발길을 멈췄다.
- 유엔의 군사제재와 미군 지원 소식에 정부는 대전 이전을 결정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조국의 심장이 도려진 날, 노 대통령의 눈물겨운 발버둥이 시작되었다.
1950년 6월 26일 새벽 03:30.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남행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밀려드는 패전의 공포 속에 비서관이 허겁지겁 짐을 챙겼다. 국가원수의 금고를 탈탈 털어 보았지만, 손에 쥔 것은 고작5만 원이 전부였다. 이 초라한 국고를 황규면 비서에게 맡긴 채, 경호관 김장흥 총경과 단4명의 경찰관만이 이 비극적인 망명길의 호위무사로 나섰다.
서울역에서 그들이 몸을 실은 것은 기차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3등 객차였다. 포탄 파편에 차창은 비참하게 깨져 나갔고, 뜯겨 나간 좌석의 날카로운 스프링이 튀어나와 있었다. 무너져 내리는 나라의 행색이 바로 그 객차와도 같았다. 어둠 속을 달리는 기차의 덜컹거림 속에서, 그 안에 몸을 실은 이들은 저마다 말을 잃은 채 흔들리는 차체에 몸을 맡길 뿐이었다.

지옥 같은 시간을 달려 기차가 대구에 당도한 것은 26일 오전 11:40이었다. 기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멈춰 서자, 대통령은 초점 없는 눈으로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다. "대구입니다, 각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대통령의 안색은 핏기를 잃고 침통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곁에 있던 프란체스카 여사를 돌아보며 절규하듯 나직이 읊조렸다. "내 평생 처음 판단을 잘못했어.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었는데……."
곁에서 20년 가까이 남편을 모셔왔지만,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토록 뼈저린 후회와 깊은 감상에 젖은 남편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통령은 이내 이성을 찾으려는 듯, 비서들에게 당장 기차 머리를 돌려 서울로 올라갈 것을 서슬 퍼렇게 명령했다.
그 서슬 퍼런 원망의 화살은 묵묵히 견디던 아내의 가슴에 비수로 꽂혔다. 프란체스카가 남하를 은근히 권했던 것은, 앞을 예견할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원수에게 변고가 생기면 결국 온 나라가 파멸할 것이라는 일념 때문이었다. 결코 제 목숨 하나 아까워 도망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을 원망하는 듯한 남편의 눈빛을 마주하는 순간, 내 마음을 이토록 몰라주나 싶은 외로움과 서러움이 아내의 가슴속에서 왈칵 터져 나왔다.
다시 북쪽으로, 목숨을 건 고집.
대구 땅을 밟은 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은 12:30, 기차는 다시 북쪽을 향해 바퀴를 굴렸다. 간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미음 한 모금 제대로 넘기지 못한 극한의 상황이었다. 대통령은 이를 악문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창밖만 쳐다보았다. '수원까지만 가면, 거기서 자동차를 타서라도 내 반드시 서울로 들어가리라…….' 그의 머릿속은 오직 사수하지 못한 수도 서울에 대한 집착뿐이었다.
야속하게도 철로 변에는 파란 모가 심겨 있었고, 밀짚모자를 쓴 농부들은 땀방울을 흘리며 평화롭게 논을 다듬고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전쟁의 공포를 비껴간 듯 고요하기만 했다. 창에 스치는 그 평온한 풍경과 객차 안을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 사이의 거리가 대통령의 얼굴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다.
마침내 기차가 대전역에 들어서자, 플랫폼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윤치영과 허 정이 기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각하! 제발 여기서 내리셔야 합니다. 서울은 이미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눈물로 앞을 가로막으며 북상을 만류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완강했다. 서울로 가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때 옆에 있던 이영진 충남지사가 대통령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각하, 한 발짝이라도 서울 가까이 계셔야 도탄에 빠진 민심이 동요하지 않습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모시고 올라가겠습니다!" 대통령의 눈에 다시 빛이 돌았다. "자네 말이 옳아. 나 서울 가겠네!" 기어이 기차에서 내리려 몸을 일으키며, 그는 혼잣말처럼 무겁게 뱉었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법이지……."

역장실의 암담함, 그리고 날아든 희망.
휴식을 위해 대전 철도국 2층 역장실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던 대통령은 갑자기 생각난 듯 황 비서를 멈춰 세웠다. 이 지옥 같은 전선을 뚫고 달린 기관사에게 수고비를 주었느냐는 것이었다. 황 비서가"이미 2만 원을 쥐여주었습니다"라고 보고하자, 대통령은 그제야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 암담하던 역장실로 미 대사관의 드럼라이트 참사관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한 줄기 구원의 밧줄이 들려 있었다. "유엔이 북한에 대한 군사제재를 결의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이 미 해·공군의 출동과 대한 긴급 무기원조 명령을 하달했습니다!" 사형 선고를 기다리던 방 안에 활기가 번개처럼 감돌았다.
비로소 이 자리에서 임시정부를 대전으로 이전하기로 뜻을 모았다. 해가 뉘엿뉘엿 산등성이를 넘어갈 즈음, 대통령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충남도지사 관저로 들어가 피난의 첫 밤을 맞이했다.
폭풍 전야의 국무회의.
1950년 6월 28일 아침, 충남도지사 관저 도지사실에서 급박하게 임시 국무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목숨을 보존하려 사방으로 흩어졌던 각부 장관들과 국회의원들은 정작 회의장이 아닌 대전 유성 온천에 숨어 몸을 사리고 있었다. 몇 안 되는 이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규홍 총무처장이 뼈 있는 보고를 올렸다. "각하, 무능한 국방부 장관을 당장 경질하시고, 이범석 장군을 기용하셔야 이 위기를 타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그 제안에 깊은 침묵으로 답했다. 대신, 밤새 귀를 기울였던 라디오 소리를 떠올리며 나직하고도 가라앉은 목소리로 방 안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지금 서울에서 송출되는 방송에서 여자 목소리의 중국어 방송이 흘러나오고 있네. 이걸로 보아…… 이미 중공군과 소련군 상당수가 북한군 속에 섞여 이 땅을 짓밟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적들의 거대한 그림자가 이미 목전까지 들이닥쳤음을 직감한 대통령의 읊조림 위로, 대전의 아침 하늘은 피해 갈 수 없는 거대한 전란의 폭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