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양창균 기자] 최근들어 지주회사 지정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이 회계기준 변경과정에서 생긴 허점을 이용해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회피용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과 동시에 작성하는 별도재무제표가 현행법 규제의 회피수단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공정거래위원회와 재계에 따르면 국내 대기업 중 지배구조상 최상위에 있는 기업들이 지주회사 전환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변경된 회계기준을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 이는 지주회사로 지정되면 요건을 맞추기 위해 현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회계기준(연결재무제표) 도입으로 인해 과거 개별재무제표(자회사 지분법 산정)와 달리 별도재무제표(자회사 원가법 산정)도 함께 사용하게 됐다.
문제는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같이 쓰는 별도재무제표이다. 별도재무제표에서는 종속회사와 지분법 적용회사에 대해 원가법 또는 공정가치법(지분법 또는 시가법)을 정할 수 있다. 과거 개별재무제표에서는 지분법이 적용됐다.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직전 사업연도 종료일 현재 대차대조표상 자산총액이 1000억원이상이고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주식가액의 합계액이 당해 회사 자산총액의 50%이상인 회사가 지주회사로 적용된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삼성에버랜드)이나 한진그룹(정석기업) 현대그룹(현대엘리베이터) 미래에셋캐피탈(미래에셋컨설팅) 등 지주회사로 전환했거나 기준에 근접한 대기업 집단들이 자산총액을 늘리는 방식으로 지주회사 요건을 빠져 나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자산규모 2조원이상의 대기업부터 도입된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맞춰 만든 별도재무제표로 회피할 수 있는 길이 터졌다. 이는 별도재무제표에서 자회사의 주식합계액이 원가법과 공정가치법(지분법) 중 택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주가변동으로 자회사의 주식합계액이 변동되는 공정가치법 보다는 원가법으로 선택, 공정거래법상의 지주회사 요건을 회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본사기준의 개별회계기준에서는 지분법으로만 자회사의 주식합계액이 적용돼 골머리를 앓았으나 국제회계기준 도입으로 그런 고민이 사라진 셈이다.
한 지주회사 관계자는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기업이 있는 경우 국제회계기준 도입 이전에 자회사(지주회사 포함)의 주식합계액이 총자산총액의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적용됐기 때문에 주가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국제회계기준 도입에 따른 별도재무제표로 인해 기존 공정가치법이 아닌 원가법으로 대부분 선택하는 추세"라며 "이 때문에 자회사의 지분가치가 아무리 뛰어도 지주회사 규정에 적용될 소지는 사라지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 때 삼성그룹도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지정 논란이 불거진 적이 있다. 삼성그룹은 이재용 삼성전자 이재용 사장과 이부진 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등 이건희 회장의 자녀들이 최대주주로 있다. 삼성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을 지배하면서 삼성전자등 비금융계열사를 비롯해 삼성카드과 삼성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로 연결돼 있다. 현행법상 금융지주회사는 제조업 계열사를 지배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될 경우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삼성그룹은 삼성에버랜드의 자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금융지주회사 요건에 회피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삼성생명의 가치가 뛰자 삼성그룹이 묘안을 낸 것이 원가법이다.
이는 과거 개별재무제표에서도 지분율 20%이하인 경우 원가법 적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2005회계연도 감사보고서를 제출하면서 보유 중인 삼성생명 지분 19.34%를 지분법 평가대상이 아닌 취득원가만을 반영하는 원가법으로 회계처리를 했다. 이로 인해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지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지분법이 아닌 원가법을 적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들 기업 외에도 상당수 지주회사를 지배하는 기업들이 원가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게 회계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 대형 회계법인 전문가는 "지주회사를 거느리고 있는 기업 중 상당수가 국제회계기준과 함께 도입된 별도재무제표에서 지주회사요건을 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원가법을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꼬집었다.
예전에 박현주 회장이 오너로 있는 미래에셋그룹도 개별재무제표에서 적용됐던 지분법 평가로 곤란한 일이 생긴적이 있다.
현재 미래에셋그룹은 박 회장 일가가 지배하는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사실상 지주회사인 미래에셋캐피탈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미래에셋캐피탈이 지주회사로 전환되는 것을 막기 위해 단기차입을 통해 총자산규모를 늘린 것이다.
실제 CJ(주)의 자회사인 CJ오쇼핑은 원가법 효과를 톡톡히 봤다. CJ그룹의 지주회사는 CJ(주)이나 자회사 중 CJ오쇼핑이 거느린 자회사의 주식합계액이 총자산총액이 50%가 넘어가면서 지주회사로 적용된 바 있다.
이 때문에 CJ그룹은 CJ(주)라는 지주회사 아래에 또 다른 지주회사인 CJ오쇼핑이 생겼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CJ그룹은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틈타 '장부가액'이 아닌 '취득원가'로 산출되는 원가법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의 적용을 빠져 나갈 수 있게 됐다.
CJ그룹 관계자는 "현재 CJ오쇼핑은 원가법을 선택해 지주회사 요건에서 탈피한 상태"라며 "CJ오쇼핑의 자회사인 CJ헬로비전이 상장된 뒤에도 주가상승으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전했다.
현재 지난해 9월말 현재 지주회사는 전년대비 9개사가 늘어난 총 105개사로 집계됐다. 이중 일반지주회사는 92개사이고 금융지주회사는 13개사로 분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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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양창균 기자 (yangc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