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發 '경제민주화'파장이 재계를 뒤흔들고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문제나 금산분리 확대강화 등 쟁점 하나하나가 휘발성이 만만치 않다. 대선정국과 맞물리면서 '경제민주화'는 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을 소지가 많다. 나라경제의 반석역할을 하는 우리 기업들도 차제에 경영 패러다임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다. '경제 민주화'바람이 칼바람이 아니라 훈풍이 되게끔 정치권 재계 시민사회가 모두 노력해야한다는 관점에서 '대선과 재벌개혁'을 기획한다.<편집자주>
[뉴스핌=이강혁 기자] 국내 대선정국의 '경제 민주화' 화두에서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규제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부분이지만 해당 대기업집단에게는 현실적으로 해법을 찾기가 곤혹스러운 부분이다. 경영권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의 해가 시작된 연초부터 줄곧 대기업의 순환출자 문제를 경제 민주화의 가장 큰 관심사로 부각시켜 왔다. 기업집단의 총수나 그 일가족이 몇몇 계열사의 적은 지분으로 집단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게 핵심이다.
사실 순환출자 문제는 대선정국의 단골 메뉴였다. 대선이라는 국민적 최대 이벤트에서 사회적, 경제적 양극화의 해소라는 접근법이었던 것. 이번 대선정국도 예외는 없는 셈이다.
재계는 그래서 반재벌, 반기업 정서의 한 축에서 '대기업 잡기'를 통해 대중의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정치적 움직임이 다분히 엿보인다고 꼬집는다.
재계 한 고위 인사는 "대선 시즌에 대기업을 때리는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라며 "대기업에 대해 규제하면서 서민층 지지를 이끌어 내려는 전형적인 '표'퓰리즘"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인식은 확고하다. 더 이상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우리 사회의 성장을 견인할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드러난다. 이런 측면에서 대기업집단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인 순환출자 지배구조는 당연한 규제 대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재 여당과 야당 사이에서 신규 순환출자만 막느냐,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시키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순환 출자를 공공의 '악'으로 보는 견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거론돼 온 것이 바로 동반성장과 상생이었다"며 "대기업이 여기에 대한 기대는 부응하지 않고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데 혈안이 된 것을 보면서 민심이 돌아섰다는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보면, 10대 재벌총수의 지분율은 1993년 3.5%에서 올해엔 0.94%까지 떨어졌다. 43개 기업집단 중 총수 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는 계열사도 1139개에 이른다. 이에 반해 내부 지분율은 55.7%로 전년 대비 2.2% 증가했다.
정치권은 이런 맥락에서 총수들이 현행 지배력을 유지하고 싶으면 이에 상응하는 자금을 출자하라는 뜻이 강하다. 또, 적은 자본에 맞게 지배력을 좀 줄이라는 의지도 높다. 단적으로 민주당은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동시에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 3년 내 기존 기업들이 순환출자를 해소하도록 했고, 새누리당은 신규 순환출자만을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계는 정치권의 이런 움직임이 그동안 유지되어온 대기업 정책 방향과도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기업의 신규 투자나 신사업,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계열사간 출자를 막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의미에서다.
재계 한 관계자는 "기아차의 부도사태 때도, 카드대란 때도 대기업에게 부실을 떠넘겼고, 이런 것들이 결과적으로는 순환출자 지배구조 형성으로 이어지게 된 것 아니겠냐"면서 "총수 개인이 신사업을 하고 투자금을 내놓을 실탄이 부족한 상황에서 기업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계열사간 출자 방식이고 이렇게되면 자연스럽게 계열사간 지분구조가 얽힐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총수의 지배 지분이 갑자기 늘어날 수도 없는 구조인데 순환의 고리를 무턱대고 끊으면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들의 덩치를 고려하면 결국 외국의 투기자본에게 먹잇감만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뒤따른다.
단순히 총수의 경영권 상실 측면을 넘어 국격과 경제 효과를 놓고봐도 규제의 득보다는 실이 많다는 게 재계의 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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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