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4일 미국 LA문화원에서 열린 한국전통음악 '우리노래 우리 가락' 공연에서 정순임이 판소리 심청가를 부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 곳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시계바늘은 어느새 8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1934년 한성준, 이동백, 김창룡, 송만갑, 정정렬 등 전설적 명창 명고수들은 이 삼겹살 집에서 조성성악연구회를 조직해 조선음악의 부흥을 꿈꿨다.
당시 국악거리는 늘 인력거가 넘쳤다. 명인 명창들은 그런 인력거를 타고 공작새 꼬리처럼 곱게 단청한 기와집 솟을 대문을 분주히 드나들었다. 한량들은 헛기침 마저 장단 끝에 매달아 놓고 흥을 즐겼다. 외씨 버선 치마폭엔 돈이 가을 낙엽 날리듯 날렸다. 그렇게 전통 소리는 끝모를 하늘로 높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리고는 돌아오지 않았다.
2013년 지금의 국악거리는 을씨년스럽다. 만정 김소희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건물은 횟집 위에 까치집처럼 외롭게 앉아있다. 장끼 목털같이 화려했던 집들은 없어지고 대신 꾀죄죄한 입성차림의 촌놈 모습뿐이다.
명인 명창들이 드나들던 골목엔 가난한 행려자만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 전통 음악 판소리의 현재 모습은 이와 같다. 유네스코가 인류구전 및 세계 무형유산 걸작으로 지정한 자랑스러운 우리의 소리가 사회의 무관심속에 금을 짊어지고 맨밥을 먹고 있는 거다.
국악은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으로 나눈다. 궁중음악엔 정악, 시조 등이 있다. 민속음악은 판소리, 민요 등이다. 이중 판소리는 우리 전통문화예술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판소리는 우리 민족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문화 역시 그 흐름과 함께 변해가면서 애석하게도 판소리는 옛명성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판소리는 우리의 전통 문화예술 중 가장 독보적이고 가장 화려하며 최고의 기량을 갖춘 종목이다. 이런 판소리가 제대로 대접 받을 때, 그 때야 말로 우리가 세계 문화를 주도할 수 있다. 변상문의 풍류 이야기. 풍류의 총잡 판소리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오온(五蘊)은 공(空), 공은 ‘꽝’이라 했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조선 영조 때 유진한이 춘향가를 듣고 '춘향가 이백구'를 지은 것으로 보아 대략 그 이전에 골격을 갖췄을 것으로 본다.
판소리는 판과 소리가 결합된 말로써 소리가 있는 놀이판을 뜻한다. 이런 판소리는 노래하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鼓手), 단 두 사람으로 구성된 공연이다. 처음에는 단가(短歌)라는 짧은 노래로 목을 풀고, 장장 여덟 아홉 시간을 향연한다.
판소리는 소리, 아니리, 발림, 추임새로 구성된다.
시간의 골 너머 항문으로부터 출발한 것이 오장육부 지나 목젖 너머로 토해지는 것이 있다. 몸덩어리 자체가 관악기다. 통음이다.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맑은 계곡물이 또르르르 흐른다. 뇌성벽력이 친다. 뇌성벽력이 폭발하고 나면 끝인가 싶었는데 푸른창공 위로 또 한번 솟구친다. 그리고는 햇빛 받은 이슬되어 사라진다. 이를 '소리'라 한다.
이야기가 있다. 중년이 돼 다시 만난 첫사랑 여인과 나누는 세월의 이야기가 있다. 막걸리 잔 앞에 놓고 영화 박하사탕처럼 열차를 거꾸로 달리게 해 숨어 버린 시간의 이야기를 꺼낸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온 몸에서 쥐어 짠 눈물에 김이 모락 모락 난다. 굴러 떨어지면 금새 발등을 깰 것만 같다. 이를 '소리'가 아니라 해서 '아니리'라 한다.
부채를 쥔 몸짓이 있다. 왕후장상의 하늘 같은 몸짓도 있고, 저자거리 시정잡배의 때국물 졸졸 흐르는 몸짓도 있다. 토끼도 흉내고 자라도 흉낸다. 제비가 돼 북경지나 의주길 따라 삼각산 돌고 도는 몸짓이 있다. 춘향이가 작은 이 도령 서는데 먹는 시금 털털한 몸짓도 있다. 조조가 관우운장 앞에서 머리 조아리며 흐느껴 우는 권세 따라 이문 따라 하는 몸짓도 있다. 이를 '발림'이라 한다.
오온은 공이라고 한다.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라 한다. 색불이공이요 공불이색이라 한다. 이 모든 걸 합쳐 열반, 공, 무, 무상, 중도라 한다. 불교의 교리다. 전체가 하나이고 하나 속에 모든게 있다는 말이다. 알 듯 말 듯 하지만 뭔가 가슴에 와 닿긴 닿는다.
그런데 확실히 와 닿는 색즉시공이 있다. 판소리 꾼 박(拍) 끝에 ‘얼씨구, 조오타, 쯔쯧’ 등을 대랑 매달아 태우며 ‘꾼’과 ‘피꾼’이 하나가 되는 현실의 세계가 있다. 이를 ‘추임새’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