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강혁 기자] 동부그룹의 인재 전략이 재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경영의 핵심 요소인 인사관리를 통해 그룹의 성장을 이끌겠다는 개방적 인재관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동부그룹에 대해 재계 일각은 삼성식 인재경영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것 아니냐며 조직원의 로열티를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동부그룹의 인재 정책을 들여다보면 그 성과는 서서히 시너지를 발휘하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 출신 인사 잇따라 영입..단기간 복합그룹 면모 갖춰
16일 재계에 따르면 동부그룹은 삼성 출신 인사를 비롯해 LG, 대림, 현대, 포스코 등 그룹 임원의 절반 가량이 외부 영입을 통해서 채워져 있다. 임원 절반이 용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도 삼성 출신 인사들을 잇따라 영입하며 눈길을 끌었다. 지난 9일에는 (주)동부 대표이사에 허기열 전 한국타이어 사장을 선임했다. 허 사장은 삼성전자 국내영업마케팅 상무와 중국영업총괄 부사장을 거친 삼성맨 출신이다.
앞서 지난 5월 삼성물산 출신의 정광헌 동부하이텍 신사업추진담당 부사장을 동부LED 사장에 앉혔고, 삼성전자 임원을 지낸 김진태 동부라이텍 생산기술총괄 부사장을 최운영책임자(COO) 겸 생산기술총괄 부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지난 2월에는 삼성물산 출신의 이재형 동부라이텍·동부LED 부회장을 동부대우전자 대표이사로 선임했고, 동부대우전자의 부사장급 최고재무책임자(CFO)에는 삼성전자 출신인 이재국 전 CJ GLS 사장을 배치했다.
현재 동부그룹의 총 임원 300명 가량된다. 이 가운데 삼성 출신 인사는 70여명(약 25%) 수준이다. 한때 삼성맨 비중이 100여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외에도 LG, 대림, 현대, 포스코 등 삼성 이외의 대기업 출신들도 전체 임원의 30%에 이르고 있다.
▲동부그룹 계열사 CEO 현황. |
동부그룹의 이같은 인재 정책은 그룹의 면모가 갖춰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다. 짧은 역사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복합그룹으로 성장하려는 전략적 선택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동부그룹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인재 영입을 통해서 건설, 철강, 농업, 물류, 금융, 전자 등 다양한 분야를 거느린 복합그룹으로 나가고 있다. 그룹의 틀을 갖추고 성장가도에 들어선 지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동부그룹은 김준기 회장이 1969년 만 24세의 나이로 동부건설을 창업하며 출발했다. 1970년대 중동건설시장에 선발업체로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그룹의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그룹들이 생계를 목적으로 창업하는 과정에서 가족이나 친인척을 창업초기 동업형태로 경영에 참여시키는 경우가 많았지만 동부그룹은 이를 배제했다. 김 회장이 집안이나 친인척의 도움없이 사실상 혼자 힘으로 사업을 키워온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 회장의 인재관은 확고하다. 회사가 단기간에 급격히 성장한데다 젊은 나이에 CEO로 출발하면서 경험있고 능력있는 사람을 영입하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자 성공요인이라고 판단했던 것.
때문에 동부그룹은 인재를 영입할 때 '인재수혈 철학'이라는 말로 김 회장의 의중을 철저히 반영해 왔다. 평소 김 회장의 발언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그는 그룹 임원들을 불러모아 "미국을 세계 최강대국으로 만든 에너지원은 이민정책에 있다"며 "국가와 인종을 불문하고 전 세계의 뛰어난 인재들을 받아들여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한 것이 아인슈타인, 오펜하이머 같은 사람들을 배출했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인재 영입을 동부그룹의 성장 비결로 보는 그의 확고한 철학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는 동부그룹이 2000년대 초반 삼성맨 출신의 영입에 각별히 신경쓰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회장은 IMF 외환위기 이후 수많은 기업들과 금융기관이 쓰러질 때 유독 삼성그룹만이 급성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동부의 경영시스템을 새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삼성그룹이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해 나가는 배경에는 삼성의 차별화된 경영시스템이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김 회장은 또, 잭 웰치가 이끄는 미국의 제너럴일렉트로닉스(GE)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기울였다. GE의 경우에는 최고경영자가 주도하는 강력한 경영혁신이 세계 최고 기업을 만든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삼성이나 GE 같은 인재경영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글로벌시대에 걸맞은 미래의 경영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시스템 속에서 집중적으로 훈련 받은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린 셈이다.
재계 관계자는 "비교적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는 삼성에서 함께 근무했던 사람들을 받아들여 동부그룹의 기업문화와 접목시켜 동부 고유의 경영시스템을 보다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김 회장의 전략적 선택에 높은 점수를 줬다.
◆인재 정책 합격점..외부 전문가 수혈로 사업경쟁력 강화
특이한 점은 많은 숫자의 외부 인재들이 지속적으로 영입되고 있지만 기존 임직원들과 영입 인사들이 동부조직 속에서 자연스럽게 화합을 이루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출신 인사들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개방적인 인재등용 정책은 현재로서 합격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성과는 이같은 현상을 잘 보여준다. 실제 지난 수년간 이어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불황 속에서도 동부그룹은 대대적인 사업구조 변신에 성공했다.
이전까지 냉연강판, 반도체 파운드리, 비료, 농약 등 주로 성장한계 업종에 머물러 왔던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제철, 종합전자, 에너지, 종합금융, 바이오 등의 고성장 업종으로 획기적으로 변화한 것이다.
특히 대우일렉트로닉스를 인수해 기존 반도체, 로봇, LED 사업에 더해 종합전자회사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고 당진과 강릉에 총 3300메가와트 규모의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에도 착수해 종합에너지기업으로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런 사업 포트폴리오 측면에서의 변화 못지않게 제도적인 측면에서 이뤄진 큰 변화도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는 동부그룹의 인사전략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동부그룹 고위 관계자는 "동부가 사업포트폴리오를 성장한계 업종에서 고성장 업종으로의 변신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수한 외부 전문가들의 인재수혈과 이를 통한 사업경쟁력 강화가 큰 역할을 했다"고 자평했다.
한편, 동부그룹은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지난 1969년 창업한 이후 40여년간 동부 경영노하우를 체계화해 동부경영시스템을 정립시켰다.
동부경영시스템은 그룹의 비전과 미션, 글로벌화, 전문화, 고부가가치화라는 3대 이니셔티브, 스탠다드경영계획 등을 체계화한 것이다.
특히 스탠다드경영계획은 기존의 계수 위주의 관리자형 예산계획이 아닌 각사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한 사업가형 경영계획이다.
동부의 인재 정책이 이런 경영계획에서 어떤 시너지를 발휘하게 될 지 주목된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