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강소연 기자]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 온몸과 정신이 곤두박질친 아내 송미경(김지수) 앞에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이성적이다. “정말 그년을 사랑이라도 한 거냐”고 퍼붓는 아내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정말 뻔뻔하기 그지없다. 대체 왜 이리도 그는 당당했던 걸까.
지난달 24일 막을 내린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따말)는 불륜을 다뤘지만, 신기하게도 막장 드라마란 꼬리표가 따라다니지 않았다. 드라마는 불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불륜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상황과 그 속에서 관계의 소중함을 역설했다. 그리고 마침내 진짜 어른이 된 그들은 ‘화해’라는 마침표를 찍으며 자신의 가정을 지켰다.
드라마 종영 일주일 후 ‘따말’의 불륜남, 배우 지진희(43)를 만났다. 태블릿 PC를 들고 걸어오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큰소리로 웃었다. 하도 재밌게 웃기에 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리에 앉아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최영훈 감독, 하명희 작가를 비롯해 배우 김지수, 박서준, 한그루 등 ‘따말’ 식구들이 모두 모인 채팅방이었다. 드라마가 끝난 지금도 채팅방은 연신 바쁘게 울려대고 있었다.
“이모티콘 남발이죠?(웃음) 정말 이러기가 쉽지 않은데 팀플레이가 아주 좋았거든요. 그래서 아직도 이렇게 연락하고 있고요. 촬영할 때도 자기 맡은 일은 하되 그 다음 일은 믿고 넘겼죠. 이게 호흡이 너무 잘 맞으니까 기분도 좋고 연기도 잘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등산 동호회 만들자고 하는데 작가님이랑 감독님이 운동을 싫어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가 열심히 꾀는 중이죠.”
극중 지진희는 김성수(이상우)와 나은진(한혜진) 사이를 갈라놓은 불륜남 유재학을 연기했다. 물론 불륜이 옳은 행동은 아니지만, 재학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항변한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삶에 은진이 들어오면서 그는 처음으로 삶의 공간을 느꼈다. 의도치 않게 불륜을 저질렀고 그 과정에서 진짜 사랑을 경험했다. 지진희는 재학이 잘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를 이해할 수는 있다고 단언했다.
“다른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제가 맡은 인물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지 않았나 생각에 굉장히 즐거워요. 물론 글을 잘 써준 작가님 덕이 크죠. 그리고 저 역시 사람들 모두 재학을 나쁜 놈이라고 해도 재학을, 그리고 40대 남성을 대변하겠다는 마음으로 갔어요. 굉장히 감정을 이입하고 생각했죠. 그러니 유재학을 더 이해할 수 있는 거였고요.”
이번 드라마로 지진희가 겨냥한 이미지는 ‘섹시한 중년 남성’이었다. 사실 대중에 각인된 그의 이미지는 ‘반듯한 젠틀맨’. 아마도 지난 2003년 처음 얼굴을 알린 드라마 ‘대장금’의 여파가 크지 않을까 한다. 이후로도 다양한 역할을 했지만, 단 한 번도 믿음직한 캐릭터를 배신(?)한 적이 없다. 그렇기에 이번 드라마에서 시도한 불륜남, 섹시한 중년 남성이란 그의 변신은 신선했고 꽤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말`에서 다양한 패션을 보여준 지진희 [사진=SBS `따뜻한 말 한마디` 방송 캡처] |
시종일관 결혼 전에 이성을 많이 만나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였지만, 정작 본인은 정반대의 연애 스토리를 갖고 있다. 지난 2004년 결혼한 지진희는 지금의 아내가 첫사랑 이후 처음으로 사랑에 빠진 여자다. 그리고 연애 기간을 포함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여자를 많이 안 만나봐서 후회되겠다는 농에 “둘 다 후회 엄청 했다”고 장난스레 받아치던 그는 이내 “아내와 아들은 삶이고 살아가는 이유”라며 애틋함을 드러냈다.
“아내도 제가 첫사랑이라고 하더라고요. 교회 오빠가 한 명 있었던 거 같지만(웃음), 지금 제 사람이니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아무튼, 오래 만나다 보니 저를 철저하게 잘 알아요. 언젠가 아내가 힘들었던 시기에 같이 와인 한잔하면서 밤새 대화한 적이 있죠. 이야기하면서 둘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어요. 둘 다 솔직하게 모든 걸 다 보여주니 마음이 후련했죠. 어마어마한 걸 얻었어요. 전보다 많이 이해하고 인정하게 됐죠.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어요. 이번 드라마 찍으면서도 아내에게 너무 바쁘게 일해서 미안하다고, 그래도 때가 있는 거니까 나중에 재밌게 살자 그랬죠.”
드라마는 막을 내렸지만, 지진희는 앞으로도 바쁜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2년 전 찍은 영화 ‘길 위에서’가 중국 개봉을 앞두고 있고 일본에서는 공예전시회가 계획돼있다. 게다가 ‘따뜻한 말 한마디’ 촬영 전 그룹 슈퍼주니어 최시원과 함께한 홍콩 영화 ‘적도’가 올해 안에 개봉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영화를 차기작으로 두고 고심 중이다.
“살아가는 데 빛과 그림자는 늘 공존해요. 그림자도 빛도 생각할수록 깊어지는데, 저 역시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 하려고 하죠.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나이도 많았고 직장을 다니다 시작한 거라 전혀 가능성이 없다 싶었죠. 하지만 할 거면 장점을 찾아보자 결심했어요. ‘나같이 생긴 사람이 없네’ ‘바닥이니 올라갈 일 뿐이네. 이건 큰 장점이다 오예~’ 이러면서 하나씩 만들어간 거예요(웃음). 그런 긍정적인 생각이 이 일을 시작하는 힘이 됐죠. 이런 마인드는 앞으로도 변함없을 겁니다.”
“클라이밍이 좋은 이유요? 인생과 닮아서죠!” |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강소연 기자 (kang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