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은행 이어 지주까지 검사 돌입
[뉴스핌=노희준 기자] KB국민은행이 또다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은행과 지주의 갈등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이 은행에 이어 지주에 대해 특별검사까지 나선 상황에서 검사 결과 한쪽은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KB국민은행 본사 |
금융당국 및 은행권에 따르면, 이건호 행장의 입장을 대리하는 정병기 국민은행 상임감사와 임영록 회장의 입장을 대리하는 김재열 KB금융 전무(CIO)의 엇갈리는 입장은 크게 세 가지다. ▲ 이사회 판단 보고서 왜곡 여부 ▲ 이사회 의결사항 감사 적절성 여부 ▲ 감사 촉발 계기 등에서 양측은 다르다.
◆ 이사회 보고서 왜곡됐나?
정병기 감사 측은 이사회(4월 24일) 및 경영협의회(2013년 11월)의 시스템 교체 결정 과정에서 판단 근거가 된 보고서가 엉터리라는 주장이다. 가장 중요한 가격조건이 잘못됐고, 리스크 요인 등이 빠져 왜곡된 보고서라는 것이다.
우선 이사회에 올라간 보고서에서는 2012년 외부컨설팅 과정에서 논의되지 않은 유닉스시스템의 가격조건이 들어갔다는 주장이다. 원래 검토되던 조건이 아닌 엉뚱한 가격조건에서 이사회 결정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엉뚱한 가격조건마저도 규모가 큰 은행에서는 쓸 수 없는 조건에서 짜인 것인 데다 유닉스 시스템으로 교체 시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점검하기 위한 벤치마크테스트(BMT)결과도 첨부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정 감사측은 이사회에 보고서가 올라가는 과정에서 리스크 관련 요인이 누락되는 과정에 지주 직원이 개입했다는 정황을 담은 메신저 캡처를 내부 감사를 통해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KB지주 측은 "회의를 하게 되면 자료는 다 공유하게 되는데, 보고서에서 중요 사항이 누락됐다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 IBM 이메일로 감사 시작 vs 이전부터 가격산정 과정 의심
정 감사는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6일까지 내부 감사를 진행했다. 24일 이사회 결정이 있고 나서 감사에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양측은 감사를 촉발한 계기에 대한 입장은 엇갈린다.
김재열 전무는 "IBM코리아 대표의 사적 이메일(14일)을 받은 은행 경영진이 공식 절차 없이 관련 메일 내용을 근거로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 이번 해프닝의 시발"이라고 말했다. 탈락한 업체의 단순 주장에 국민은행이 휘둘렸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정 감사측은 IBM코리아 대표의 이메일을 이 행장이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감사를 촉발한 결정적인 배경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전부터 갖고 있던 가격선정 과정의 의구심이 이메일 통해 IBM 가격선정 오류까지 확인되면서 더 가중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행장은 이미 올초부터 전산시스템 교체와 관련한 가격 산정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3월 23일 IT본부로부터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 시 소요되는 비용을 기존 2050억원보다 1000억원이 더 많은 3055억원으로 보고 받으면서 가격선정 과정에 대한 이 행장의 의심은 더욱 굳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가격이 보고 과정에서 들쭉날쭉하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이사회 의결 감사 vs 보고서 작성 감사
김 전무는 정 감사의 이번감사를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쳐 은행·카드 이사회 결의된 사항에 대한 자의적인 감사권 남용"이라고 규정했다. 이사회 의사결정에 대한 감사로 감사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반면 정병기 감사 측은 이사회 의사결정에 대한 감사는 적절치 않다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이번 감사는 이사회 결정 자체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이사회 결정의 근거가 낸 내부 보고서 작성 과정에 대한 감사라는 입장이다.
◆ 이사회, 경영협의회에서 뭐했나
이번 사안은 이사회 결정 사안이지만,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쳤다. 은행 경영협의회는 행장과 감사, 본부장이 참석한다. 경영협의회 당시 이 행장 등이 어떤 입장이었는지 의문이 따라붙는 대목이다.
이 행장은 이와 관련,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11월에 승인한 것은 당시까지 받은 정보로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것이 맞겠다는 것"이라며 "실제 도입 여부는 유닉스 시스템이 적합한 지를 확인하는 벤치마크 테스트 결과를 보고 결정할 계획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앞서 언급된 것처럼 이 행장은 늦게 잡더라도 올해 초부터는 가격산정 과정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고, 지난달 24일 이사회에서 정 감사와 함께 유닉스 시스템 도입에 반대했다.
[뉴스핌 Newspim] 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