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A 도청사건 이후 누적된 불만 표출…美 "獨과 접촉중"
[뉴스핌=김동호 기자] 독일과 미국의 외교적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청사건을 시작으로 최근 일련의 스파이 사건을 겪은 독일은 우방인 미국에 대해 실망을 넘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10일(현지시각) 독일 정부는 자국 내에서 첩보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를린 주재 책임자를 추방했다.
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내 최대 맹방인 미국에게 이 같은 조치를 취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결정이다. 다른 나라의 외교 관계자에게 추방령을 내리는 것은 적대국에나 할 법한 강경 조치로, 우방국 사이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특히 지난 70년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양국에게 있어 독일의 추방령은 최고의 외교적 적대행위로 평가되고 있다.
슈테펜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미국대사관에 주재하는 정보 책임자에게 독일을 떠나라고 명령했다"며 "현재 진행 중인 독일 검찰의 수사를 방해하고, 수개월 동안 풀리지 않은 미국의 첩보활동과의 관련성이 의심된다"고 밝혔다.
자이베르트 대변인은 이어 "미국은 여전히 독일의 안보를 위한 주요 동반자"라면서도 "이러한 관계에는 상호 신뢰와 솔직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독일 연방검찰은 미 정보기관이 독일 연방정보국(BND) 직원을 포섭해 정보를 빼낸 혐의를 잡고 용의자를 체포했으며, 독일 국방부에서도 첩보활동을 벌인 스파이 행위 정황을 잡았다. 하지만 국방부 내 스파이 행위 용의자의 체포에는 실패한 것으로 전해졌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진)는 이날 주요 장관들과 통화로 긴급회의를 진행한 후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메르켈 총리는 "동맹국을 정탐하는 것은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라며 미 정부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메르켈 총리는 앞서 미국의 스파이 행위에 대해 "충분한 사실적 근거를 확보하면 우리가 해야할 일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전날 TV 토크쇼에 출연해 미 NSA가 메르켈 총리의 전화 등을 도청했던 사실을 두고 "이는 바보 같은 행위이며 삼류 같은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미 전 CIA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불법 도·감청 사실을 폭로한 이후, 미국이 독일과 영국 등 우방국 정상의 휴대전화 통화까지 감시한 사실이 알려지며 외교 갈등이 불거졌는데 이번 사건으로 양국 갈등관계가 더 고조된 것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미 백악관은 직접적인 논평을 회피한 채 양국 간의 정보공조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케이틀린 헤이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정보기관 관련 사안에는 논평하지 않는다"며 "미국과 독일 간 안보와 정보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일로 그것이 독일인과 미국인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계속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적절한 채널을 통해 독일 정부와 계속 접촉할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도 미국의 스파이 활동 사실 확인과 독일의 결정에 대해서는 정보사안이라는 이유를 들어 직접적인 언급을 거부했다.
어니스트 대변인은 "미국은 이번 일을 매우 엄중하게 여긴다"면서 "미국과 독일의 정보 관계는 양국 안보에 매우 중요하며 외교, 정보, 법무 채널을 통해 독일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동호 기자 (good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