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이현경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거, 딱 죽기 좋은 날씨네" "죽기 전에 담배 한 가치는 괜찮잖아?"
여전히 배우 박성웅(43)과 영화 ‘신세계’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박성웅이 연기한 조폭 이중구의 존재감은 대단했고 그가 내뱉은 숱한 대사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신세계’에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에 개봉한지 4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박성웅을 보고 있으면 이중구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만큼 ‘신세계’ 이후 박성웅에게 연기 변신이 절실했다. 그 기회가 SBS 드라마 ‘리멤버 아들의 전쟁’이었다. 다행히 박성웅은 이중구의 잔상을 깨고 박동호로 다시 태어났다. 뿐만아니라 드라마는 시청률 20%를 넘기는 기록까지 세우며 안방극장 시청자에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성공적으로 드라마를 마무리한 박성웅. 게다가 그가 출연한 영화 ‘검사외전’ 역시 900만 관객을 넘겼다.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 연타를 날린 박성웅은 “공중파 드라마를 많이 안 해봐서 20%가 어느 정도의 인기인지 실감이 잘 안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서는 대단한 수치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리멤버 아들의 전쟁’이 시청률 20%를 넘겼죠. ‘용팔이’ 이후로 처음이라더군요. 시청률 20%를 넘기기 힘든 상황임에도 이뤘다는 건 그만큼 많은 분들이 호응해 준거라 생각해요. 예전에 KBS 2TV ‘제빵왕 김탁구’ 때 50%를 찍었던 사람의 입장으로서도요(웃음). 사실, 1000만 관객이 좋은 건지 시청률 20%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대단한 기록이라고 하니 기분이 좋고 다행이다 싶습니다.”
박성웅이 연기한 박동호는 과거 남일호(한진희) 사단에 의해 아버지를 억울하게 잃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서진우(유승호) 가족의 목숨을 앗아가게 장본인이기도 했다. 박동호는 남일호에게는 복수의 칼을, 서진우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러나 드라마 초반 그는 일보 후퇴하며 일호그룹에 잠입했다. 때문에 서진우의 아버지에 살인죄를 뒤집어씌운 남일호의 아들 남규만(남궁민)을 무혐의로 만들어야 했고 결과적으로 서진우에게 아픔을 두 번 줬다.
악인인가 싶다가도 다시 선인이었던 그의 모습이 극을 보는 재미였다. 선과 악을 오가는 입체적인 캐릭터 박동호를 연기한 박성웅의 연기에 ‘리멤버 아들의 전쟁’이 아닌 ‘리멤버 동호의 전쟁’이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도 나왔다.
“박동호는 선인이에요. 게다가 아주 똑똑하죠. 질 것 같으면 빠지고 수가 보이면 거침없이 뛰어듭니다.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일호그룹의 내부자가 되기로 결심한 거였고 친밀감을 쌓고 모든 정황을 파악하죠. 서진우의 아버지 서재혁(전광렬)을 무죄로 만드는 게 박동호의 목표이기도 했어요. 다만 그 전까지는 증거가 필요해 분노를 참아왔던 거죠. 저는 그저 ‘진우 바라기’, 그의 조력자였죠.”
박성웅과 유승호의 케미도 볼만했다. 박동호에 불신이 있던 서진우,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두 사람은 손을 잡았다.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흥미를 돋웠다. 실제 박성웅 역시 유승호에 대한 믿음이 남달랐다. 연기자로서도, 인간 유승호로도 기특하다고 했다. 9년 전 ‘태왕사신기’에서 처음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이 이제는 드라마의 축을 이끌어가는 동료 배우가 됐다.
“승호가 참 바르게 잘 자라줬죠. 게다가 잘 되고 있을 때 군대에 지원했잖아요. 제가 물어봤어요. 왜 군대에 가기로 결심했는지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선택으로 일을 한 게 아니라서 힘들었대요. 그래서 스무살이 넘어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더라고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저 나이에 뭐했나’ 싶더군요(웃음). 승호는 군대에 다녀온 후 더 단단해졌어요. 어린 나이에도 참 진중하고 생각이 깊은 친구예요.”
박성웅은 희한하게도 ‘리멤버 아들의 전쟁’에서는 변호사를, ‘검사외전’에서는 검사 역할을 맡았다. 실제 법학과 출신인 그는 최근 두 작품에서 모두 법정 신을 찍게 됐다. 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보다 대본을 외는게 쉽지 않았을까. 그러나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학점 관리하는 수준이었다”며 법정신 촬영마다 멘붕상태였다고 했다.
“졸업하기 바빴죠. 저는 꿈이 배우라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엑스트라를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법공부보다 연기에 좀 더 치중했어요. 그래도 법적인 전문용어가 다른 배우들보다는 덜 낯설게 느껴졌지만 법정 장면만 들어가면 저 역시 멘붕이었어요. 대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데 머리가 백지처럼 하얘지더라고요. 법정신은 한 번 찍을 때마다 10시간이 기본이예요. 증인, 변호사, 판사 한 장면씩, 대사치는 장면 등 분량이 많거든요. 처음엔 애를 좀 먹었는데 차차 8시간, 6시간으로 줄고 노하우도 생기더군요.”
최근 40대 남자배우들이 전성기가 맞았다. ‘꽃중년’이라 불릴 정도로 그들을 향한 주목도는 높다. 박성웅 역시 그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선굵은 연기를 펼친 그는 영화 ‘인천상륙작전’ ‘해어화’ 등의 개봉을 앞두고 있는 상황. 다양한 캐릭터로 관객, 시청자와 만날 그가 혹시 로맨스 연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물음에 “제가 갑자기 바뀌면 너무 놀라지 않겠냐”며 웃었다.
“멜로를 하고 있는데도 저를 보면 괜히 ‘사랑을 위장한 연쇄살인마’ 이런 식으로 오해하지 않을까요?(웃음). 저도 멜로를 원하고 있어요. 그런데 다 타이밍이 있으니까요. 박동호도 센 캐릭터를 해오다 만난 캐릭터였고요. 예전엔 시트콤도 했는데 말이죠. 그런 연기도 참 재미있거든요. 그 모습이 제 모습과 많이 닮기도 했고요. 시트콤 연기를 한 제 모습은 왜 기억해주지 않을까요?(웃음). 새로운 캐릭터로 찾아뵐 날까지 기다려주세요. 감사했습니다.”
[뉴스핌 Newspim] 글 이현경 기자(89hklee@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