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의견보다 친권 우선..5년간 학대아동 3만5천명, 아동특례법 '구멍'
[세종=뉴스핌 이진성 기자] #최근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난 한인 남매가 6년간 학대를 받아온 사연이 알려졌다. 한국에서 알고 지내던 학원장의 뉴욕 가정집에서 머무르는 동안 폭행과 가사일 등 학대를 받아온 것이다. 원장은 학대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신체 부위만 폭행해 왔다. 그는 학대 사실을 밝혀지자 왕성히 활동해 온 뉴욕한인학부모협의회(KAPA-GNY)와 한인 교회 등을 통해 남매를 거짓말쟁이로 몰아세웠다. 만약 남매의 폭행사실을 전적으로 믿어준 미국 학교 교감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은 평생 알려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아동학대에서 아동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학대를 막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특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행법상 학대를 당한 아동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못하다보니 진술번복과 증거인멸 등으로 아동 학대의 2차 피해가 발생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아동을 보호하는 전문기관들은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정작 보건당국은 법안 마련에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14일 국제연합(UN) 및 아동학대예방협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국내 현행법으로는 아동학대를 예방할 수 없어 2차피해가 우려된다. 아동이나 주변인들의 신고가 접수되더라도 즉각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어서다.
◆ 5년간 학대 피해아동 3만5000여명, 아동특례법 '구멍'
최근 5년간 국내 학대 피해아동은 3만5000여명에 이른다. 이 중 90%이상은 가정 내(부모, 친인척, 대리양육자) 학대로 초기 조치가 미흡하면 다시 학대가 이뤄질 개연성이 크다. 같은 기간 조치결과를 살펴보면 학대 피해아동 가운데 단 9498명만이 보호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2만5000여명의 아동이 보호조치를 받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매년 보호받지 못한 아동 중 상당수가 2차피해를 당했다. 예컨대 2014년도 초기 조치 결과를 보면 1만27명 가운데 7362명이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원가정으로 복귀했지만, 뒤늦게 2차 피해 등이 발생하자 696명의 아동을 추가로 격리해 최종 조치에서 6666명만이 원가정에 남게됐다. 초기 대응에서 격리했어야 할 아동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초기대응 미흡으로 사망한 아동이 수십명에 이른다는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렇게 현행 아동특례법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선제적인 아동보호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 "다만, 허위 신고 등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나서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아동특례법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아동학대는 생명이 달린 문제인만큼, 과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법안의 허점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실제 통계에서 보듯 아동 특례법이 마련된 이후에도 보호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법의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특례법에서는 학대아동을 보호하기 위해선 현장조사가 우선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이를 거부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동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법안이 마련돼 있지만, 이 또한 학대 증거가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을 경우 격리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아동 의견의 존중이라고만 명시돼 있을뿐, 우선한다는 법적근거가 없어 사실상 선제적으로 보호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보호조치가 이뤄지더라도 72시간 내 학대를 입증하지 못하면 원가정으로 돌려보내도록 하는 법안도 허점으로 꼽힌다.
◆ 전문가들 "친권 의식한 법안, 재개정 필요.. 아동 학대 막지 못해"
전문가들은 아동특례법에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초기격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든 것과 72시간 보호조치 등의 문구가 친권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아동특례법이 아동학대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아동학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자식을 소유물로 여기는 강한 '친권'문화가 꼽히는데 학대를 막겠다는 특례법에서 조차 '친권'을 의식했다는 설명이다.
아동학대예방협회 관계자는 "법안이 예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면서도 "하지만 아동특례법임에도 아직까지 아동의 의견이 우선으로 적용되지 않는 현실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법에서 사실상 친권을 존중하는 조치가 마련돼 있어 학대아동을 보호하는데 미흡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UN 관계자도 "한국의 아동특례법은 명확한 증거물이 있거나, 만약 없다면 주변인들이 학대를 입증해야 처벌한다는 규정들이 많이 보인다"면서 "반면,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학대를 가한 자가 아동을 학대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이) 아동특례법을 만들때 아동전문가들이 빠진 것 같다"고 꼬집었다.
복지부가 아동학대를 근절하기 위해 설립한 아동보호전문기관도 이에 대해 일정부분 동의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법안은 마련돼 있지만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데 동의한다"면서 "앞으로 아동의 의견이 우선되고, 선제적으로 보호조치할 수 있는 법안을 건의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이진성 기자 (jin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