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 특성에 맞는 지원과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필요
[뉴스핌=조인영 기자] 현대상선에 이어 한진해운이 채권단에 자율협약을 신청하면서 국내 1·2위 선사가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가 됐다.
채권단은 해운업계의 자발적인 자구책 없이는 지원도 없다는 입장이어서, 용선료 협상 결과를 토대로 자율협약에 돌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해운업계는 유동성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선 자구안도 좋지만 근본적인 처방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럽 항로 운항중인 1만3100teu급 컨테이너선 <사진=한진해운> |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진해운은 채권단과 이날 자율협약을 맺는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 2013년부터 자구안을 마련해 살 길을 모색해왔지만 해운산업이 악화되면서 결국 정부와 은행에 손을 내밀게 됐다.
양사는 호황기였던 2000년대 초중반, 현재 시세의 5배에 달하는 장기 용선계약을 맺은 뒤 매년 1조~2조원 가량을 용선료로 지급하고 있다. 용선 비중은 한진해운이 60%, 현대상선은 70% 정도로 높은 편이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해운산업이 타격을 입게 되고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자산 및 지분 매각을 골자로 한 자구안을 마련해 구조조정을 실시해왔다.
최근 한진해운은 런던 사옥 매각, 국내외 터미널 지분 등을 팔고 계열사인 대한항공의 지원을 받았다. 현대상선도 벌크전용선사업부, 부산신항만 지분, 현대증권 등을 잇달아 매각하며 컨테이너선 사업 위주로 사업군을 축소했다.
업계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결과적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숨통을 조인 꼴이 됐다고 평가한다. 정부의 권고로 높은 부채비율을 줄이기 위해 알짜 사업부를 매각하다 보니 외국 선사들과의 경쟁에서 도태됐다는 설명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관계자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외국선사에 비해 8000~1만2000TEU급의 초대형선박이 적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외국선사들이 초대형선박을 발주할 무렵 현대와 한진은 자구안 이행 때문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경제성이 없는 것은 버리고 수익성이 나는 것 위주로 확보하는 선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운업계의 사업 포트폴리오에 대한 재정비도 시급하다. 이 관계자는 "현대와 한진은 건화물선이나 유조선사업부 등을 대부분 매각해 남은 것은 컨테이너선 정도"라며 "컨테이너선도 운임이 낮은 북미와 유럽 노선에 대한 의존도가 커 사업 리스크가 높다. 비지니스 포트폴리오를 재편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이렇다 보니 해운업계에 대한 정부차원의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이들 업체가 국제해운동맹(얼라이언스)에서 퇴출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다. 경쟁력이 떨어진 두 선사들을 글로벌 얼라이언스가 받아줄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자칫 법정관리에 놓일 수 있는 선사를 어떤 얼라이언스가 받아주겠느냐"면서도 "동맹에서 퇴출 돼 독립선사로 운영한다 해도 서비스, 원가 경쟁력이 낮아 사업환경은 극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일각에서 거론되는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합병시나리오는 이들 업체의 사업영역이 대다수 겹치기 때문에 합병 시너지가 적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단순 재무조정이 아닌 해운업 특성에 맞는 지원대책이 절실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양사가 합병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장 환경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법정관리가 오히려 선사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운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법정관리가 되는 순간 컨테이너선사는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높다"며 "어떻게든 살려놓기는 해야하지만, 양사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원인규명을 철저히 한 뒤 국민들의 세금이 효율적으로 집행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당국의 고민이 선제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