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사인간 소송 언급 안해…남북은 베른협약 가입 당사자"
평화문제연구소, 국토지리정보원·교수 상대 저작권 소송
[뉴스핌=이영태 기자] 북한 정부가 펴낸 '조선향토대백과' 내용을 국토정보원 산하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 측이 무단으로 사용했다는 저작권 소송이 제기됐다. 이 소송은 북한 정부 차원에서 국토의 역사와 문화, 지리와 동식물, 역사와 풍속 등을 집대성한 지역 정보 및 지리학 연구 성과의 저작권을 한국 법원이 인정할지 다투는 사례라 소송 결과가 주목된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 <사진=뉴시스> |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13일 북한문제 전문 연구기관인 평화문제연구소(이사장 신영석)가 지리정보원을 상대로 제기한 관련소송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남북 간이 아니라 국내 사인(私人) 간의 소송이라 통일부가 언급할 사안은 아니다"고 밝혔다.
정 대변인은 "기본적으로는 남한·북한이 베른협약에 가입된 당사자"라며 "그래서 국제법상으로는 상호 간에 저작권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주의적인 원칙에 따라서 조약 당사국 입장에서 상호주의적으로 저작권을 보호해야 되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보호해 주고 이럴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검토가 더 필요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이 문제는 상호주의가 적용이 되는 만큼 현재 저작권료에 대해서 북한과의 협의라든지 이런 것들이 중단된 상태이기 때문에 관련되는 사실은 좀 더 검토를 해봐야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 대변인이 언급한 베른협약은 문학·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다자 간 기본조약으로 저작물이 외국에서 보호받아야 할 최소 조건을 규정한다. 베른협약은 1886년 스위스 베른에서 체결된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됐다. 현재 발효중인 것은 1971년 개정된 파리의정서(Acte de Paris)로, 모두 38개조와 부속서 6개조로 이루어지며,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에서 관리한다. 이 협약을 보충하는 조약으로 세계지적재산권기구 저작권조약(WCT)이 있다.
한국은 1995년 트립스(세계무역기구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가 발효한 이후인 1996년 5월 21일 베른협약 가입서를 제출해 같은 해 8월 21일 발효됐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2003년 1월 28일 협약에 가입했으며, 그해 4월 28일 발효됐다.
앞서 연합뉴스는 북한 기관과 협약을 맺고 공동으로 자료를 펴낸 남평화문제연구소가 국토지리정보원의 연구용역을 맡아 대표책임자로 활동한 국립대 김모 교수를 상대로 1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지난 1일 서울중앙지법에 냈다고 이날 보도했다. 사건은 민사43단독 양환승 판사가 맡는다.
평화문제연구소는 2003년 2월 북한 선전선동부 소속 출판기관인 '조선과학백과사전출판사'와 공동으로 20권짜리 대백과를 편찬했다. 계약은 남북협력사업을 관장하는 통일전선부 산하 광명성총회사와 맺었다. 북한 외 모든 지역에서 평화문제연구소가 저작권을 행사하도록 권한을 넘겨받았다. 연구소는 북한으로부터 저작권 행사를 양도받은 '조선향토대백과' 내용을 지리정보원 측이 무단 사용했다는 입장이다.
조선향토대백과는 북한 전역의 지리와 역사, 문화 등 인문·자연 지리정보를 도·시·군, 동·읍·리별로 집대성한 책이다. 분단 이후 처음 남북 당국의 승인을 받아 함께 펴낸 출판물로 알려졌다. 중국 민간기관인 요녕성 조선민족문화연구소도 '협력자' 자격으로 발간에 참여했다.
이후 대한지리학회가 2013년 10월 국토지리정보원의 연구용역을 수주해 김 교수가 대표책임자로 '한국지명유래집-북한편'을 펴내자 평화문제연구소는 이 책이 조선향토대백과를 허락 없이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한국지명유래집-북한편'은 총 2권 1700쪽 분량(각권 850쪽)으로 북한 각 지역의 이름과 그 유래를 다룬다. 평화문제연구소는 이 책자 내용 중 969곳이 조선향토대백과를 무단 인용했다고 주장했다. 분단 이후 달라진 북한의 지명들은 물론 산이나 강의 높이, 길이, 면적 및 역사·문화 정보 등을 조선향토대백과에 의존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연구소는 2014년 7월 국토지리정보원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항고하는 한편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국토지리정보원과 김 교수는 지도나 지리정보가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자료인 만큼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리정보는 사회에서 공유되는 속성이 있어 독점될 수 없고 창작성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2011년 지도책을 무단으로 복제해 판매했다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행지도 제작업체 Y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사례가 있다. 단순한 지도나 지리정보는 누가 제작해도 같거나 비슷할 수밖에 없고 창작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평화문제연구소를 대리하는 통인법률사무소 한명섭 변호사는 "수십년째 분단된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북한 지리정보는 창작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 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개성공업지구·금강산 출입체류 합의서 성안과정에 참여했으며 북한학을 연구해온 남북관계 법률 전문가다.
법률사무소 솔의 정진섭 변호사도 "북한과 공식적으로 협상해 편찬한 지리정보의 저작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남북 관계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