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장주연 기자·사진 김학선 기자] 비참한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훔쳐버린 괴물 김길도(KBS 2TV 드라마 ‘마스터-국수의 신’). 그가 영원한 적이자 원수 무명이(천정명) 앞에서 목숨을 끊은 지 딱 일주일 만에 다시 돌아왔다.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좀 착하게 살까 했더니, 어째 더 악랄하고 독해졌다.
배우 조재현(51)이 오랜만에 상업 영화로 극장가를 찾았다. 구전 설화를 재구성한 ‘봉이 김선달’을 통해서다. 6일 개봉한 이 영화는 임금도 속여먹고 주인 없는 대동강도 팔아 치운 전설의 사기꾼 김선달의 사기극을 담았다.
“그동안 했던 영화와 확실히 다르죠. 이런 상업 영화는 그간 안한 게 아니라 못한 거고요(웃음). 테이블에서 거론되는 정도지 대다수가 절 상업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워낙 독립영화만 계속했잖아요. 하지만 이런 작품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주변에서도 권했죠. 사실 그간 너무 자유로운 선택만 했어요. 배우는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야 하는데 말이죠. 그런 면에서 신나고 경쾌한 오락영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출연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 작품이 시작점이죠.”
조재현이 극중 연기한 인물은 조선 최고의 절대권력가 성대련. 왕을 대신해 청나라를 상대할 정도로 청의 무한 신뢰를 받는 실세이자 야망가다. 전작에 이어 또 한 번 악역을 맡게 된 그는 성대련 캐릭터가 스토리에서 동떨어지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 감정을 누르며 센 느낌을 최대한 뺐다.
“걱정이 많았어요. 영화는 너무 밝고 경쾌한데 제가 나오면서 또 다른 느낌으로 흘러가진 않을까, 제가 무거운 역할이라 전체 영화 톤이 안 맞을까 하는. 전체적인 그림은 수채화인데 제가 유화를 고집할 순 없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눌렀죠. 그리고 제가 본 성대련은 잘못된 정치가였어요. 왜 가까이에도 그런 사람 많잖아요. 자긴 나라를 위해 한 행동인데 왜 날 비난하냐는. 당연히 피도 눈물도 없고 집착도 강하죠. 자기가 살기 위해 악행을 저지른 ‘국수의 신’과는 달랐어요. 근데 당분간 악역은 하지 않으려고요. 밑천이 거덜 났거든요(웃음).”
밑천이 거덜 났다는 그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사실 계속된 악역 탓에 대중에게 조재현은 ‘무서운’ 이미지로 굳혀졌다. 이번 작품에서 함께 호흡한 유승호 역시 “처음엔 조재현 선배가 무서웠다”고 했을 정도. 물론 유승호는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먼저 농담도 걸어주고 편하게 대해 주셨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조재현은 “의외로 살갑다. 평소에도 드라마·영화에서처럼 눈에 힘주고 다니면 그게 사람 아니다”며 껄껄 웃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레 유승호 칭찬을 이어갔다.
“그간 많은 젊은 연기자를 접해보고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진짜 대단해요. 할리우드나 여기나 아역 스타가 성인 배우가 되기 쉽지 않아요. 그런 경우엔 주변에서 건방지게 굴 수 있는 판을 깔아주거든요. 자연스레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알죠. 그리고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그걸 경계하기가 쉽지 않아요. 근데 승호가 그걸 해요. 촬영 내내 그 더운데 짜증은커녕 더운 티도 안냈죠. 전역한 지 얼마 안돼 그럴 수도 있는데(웃음) 진짜 대단했어요. 선배인 저한테도 귀감이 될 정도였죠. 그렇지 않은 몇몇 후배들은 이야기만 들어도 울화가 치밀 때가 있는데 얜 아니야. 정말 이런 후배만 있으면 대한민국 촬영장이 행복할 거예요.”
조재현은 이후로도 한참 동안 유승호 칭찬을 늘어놓았다. 그런 그에게 시우민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시우민은 ‘봉이 김선달’에 나오는 또 다른 후배 연기자이자 조재현이 꺼린다고 소문난(?) 연기돌(연기하는 아이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팬덤을 가졌다는 그룹 엑소(EXO)의 멤버다.
“전 정말 아이돌을 싫어해 본 적이 없어요(웃음). 사실 이 이야기가 ‘정도전’ 제작발표회 때 시작됐어요. 그땐 영화·드라마에 아이돌이 꼭 들어가야만 제작되던 때라 아이돌만 쫓아가는 흐름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로 한마디 한 거였죠. 거기에 수지를 째려보는 것까지 화제가 됐고요(그는 수지 관련 에피소드에 대해 더운 날씨 속 시상식이 장시간 이어지면서 일어난 일이라고 했다). 하하. 아무튼 제가 함께 연기한 아이돌은 다 좋았어요. 시우민부터 티아라 효민, B1A4 바로까지. 셋 다 촬영 준비는 물론 예의까지 갖췄죠. 물론 예전엔 준비가 안된 채로 촬영장에 오는 아이돌도 있었어요. 인성도 엉망이고. 근데 그건 아이돌이라 싫은 게 아니죠.”
물론 조재현은 후배들에게만 예의와 배려를 강요하지 않는다. 촬영에 임할 때면 자신 먼저 숙이고 겸허해지려 애쓴다. 실제 ‘국수의 신’에 함께 출연한 후배 서이숙은 생방송처럼 진행되는 촬영 속에서도 싫은 내색 한 번 안하는 조재현에 많이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전 원래 칭찬해주면 더 잘해요. 스태프들이 젊은 배우들한테 ‘조재현 좀 봐. 저렇게 밤새고 파워풀하게 다니잖아’라면 더 열심히 하는 거죠(웃음). 근데 영화 촬영은 사실 체력적인 문제가 없어요. 드라마야 매일 밤을 새우긴 하지만, 투정부리면 뭐해요. 이런 거 알고 왔는데. 체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먹고 들어가는 거죠. 게다가 일하면서 어떤 상황이나 환경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게 몸에 배기도 했고. 근데 제 매니저가 20년 가까이 됐는데 저보고 큰일에 잘 충격을 안받는 스타일이래요. 대신 작은 거에 신경 쓴다더라고요. 하하. 지금은 끊었지만, 예를 들면 댓글 찾아보면 그러는 거죠. 반면 작품 결과 등에는 휘둘리지 않아요.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물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죠.”
그러면서도 조재현은 ‘봉이 김선달’만은 좋은 성적을 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였다.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연기력이지만,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상업영화 속 배우 조재현의 가치를 재증명해 보이고 싶다.
“영화에서는 절 집중적으로 찾지 않아요(웃음). ‘너 아니면 안돼’라는 게 별로 없죠. 독립영화를 꾸준히 하다 보니 저 역시 소홀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번 영화로 보여주고 싶어요. 상업영화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물론 드라마도 매력적이죠. 간혹 시간에 쫓겨 완성도가 떨어질 때도 있지만, 바삐 촬영하면서 예상치 못한 연기가 나올 때도 있고요. 연극이야 당연히 놓고 싶지 않은 분야고요. 오래 해왔던 거고 1~2년에 한 번은 꼭 했던 거니까. 한해에 드라마, 연극, 영화 한 편씩 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죠. 근데 우선 올여름엔 모든 걸 잠시 중단하려고 해요. 밀린 일을 정리하면서 7~8월은 쉴 생각이죠. 그래서 차기작도 보류하고 있어요. 9월에 연출작도 하나 개봉하고. 잘 만들진 않았지만, 배우가 처음 만든 것 치고 나쁘지 않은 정도죠. 그것도 취재하러 오시나? 하하.”
[뉴스핌 Newspim] 글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사진 김학선 기자 (yooksa@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