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속보

더보기

[이영태칼럼] 강남구청의 태극기 게양 강요와 국가주의

기사입력 : 2016년07월19일 07:20

최종수정 : 2016년07월19일 18:58

과거 회귀적 국가주의 잔재를 극복해야 한국경제가 산다

일요일 아침 9시다. 늦잠을 잤다. 지난 한 주 내내 열대야가 이어져 잠을 설쳤는데 전날 내린 비 덕분인지 모처럼 선선한 날씨에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싫다.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아침부터 누구지’ 하는데 거실에 있던 아내가 “누구세요”라고 묻는 소리가 들린다. “강남구청입니다”라는 남자 목소리가 인터폰을 통해 들려온다. 잠시 후 문을 열어준 아내와 두런두런 얘기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거실로 나갔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내는 “이 사람들 어떻게 된 거 아니야” 하면서 발코니로 가 태극기를 단다. 7월17일 제헌절을 맞아 강남구청 공무원이 태극기가 걸려 있지 않은 집을 가가호호 방문해 국기를 게양하라고 권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관공서나 공공기관이 아닌 이상 국기를 게양하는 것은 국민들의 자발적 애국심에 기초해야 한다. 공무원이 일요일인 국경일에 ‘강남구 가구별 태극기 게양 현황’(가칭) 보고서 작성을 위해 국기가 걸려 있지 않은 집을 체크하고 방문하는 것은 북한식 ‘5호담당제’를 떠올리게 해 섬짓한 느낌마저 준다.

아내는 “지난달 현충일 아침에는 발코니에 나갔다가 아파트 가구마다 게양 여부 점검을 위해 돌아다니던 강남구청 공무원과 눈이 마주쳤는데 태극기를 달라고 소리치대”라며 “국기가 없다는 집에 주려는 듯 여분의 태극기도 갖고 다녔어”라고 말했다.

기자는 국경일이나 국가기념일에 국기를 게양하는 습관이 아이들의 교육에도 좋을 것 같아 이미 10여 년 전 태극기를 구입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태극기를 게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조기를 어떻게 달고 왜 다는지 등을 설명해줬다. 아침에 아이들과 같이 눈을 뜨면 “오늘은 누가 태극기 달래?” 하면서 아들과 딸의 경쟁심을 유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자발적 행위를 누군가가 관리·감독한다고? 그럼 내가 하는 행동이 강남구청의 평가대상이란 말인가? 태극기를 달고 싶지 않은 국민은 비애국자이고 반국가적인 행위를 한다는 것인가? 국민의 애국심이 자생(자발적 발생)하지 않을 경우 정부의 책무는 이를 고취하고 유도하는 것이지 강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강남구청이 내건 삼성동 경기고 앞 제헌절 태극기달기 홍보 현수막. <사진=강남구청>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의 태극기 달기 운동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다. 강남구청은 ‘경축! 제헌절 태극기 게양, 수호! 자유민주주의 헌법’이란 보도자료를 통해 “제헌절 모든 가정에 태극기가 달릴 수 있도록 홍보활동을 펼치는데 주민들의 자발적인 태극기 선양 모임인 동별 태극기 사랑 추진위원회와 통반장, 학생 등 자원봉사자를 이용해 집집마다 태극기 달기 호소문을 전달하고, 집을 비운 가구에 대해서는 현관문 등에 홍보물을 붙여 귀가 후 볼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구는 지역 내 각 동 주민센터 22개를 대상으로 동별 300가구 이상 아파트 단지를 1개씩 선정하여 게양률 100% 달성에 도전하고, 경기고등학교 옹벽(400M) 펜스에 바람개비 태극기 187개를 달고, 게양 홍보 현수막을 걸어 국경일 태극기 달기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조성할 방침”이라면서 “제헌절이 비록 공휴일에서 제외되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제헌절을 맞아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태극기 달기 참여를 바라며, 구는 전 가정에 태극기가 펄럭일 때까지 태극기달기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태극기 게양률 100%를 목표로 강남구내 모든 가정에 국기가 펄럭일 때까지 캠페인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다.

◆ 태극기 게양 강요와 국가주의의 문제점

국민의 애국심을 강요하는 국가주의는 국가를 최고의 조직으로, 국가 권력을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중심으로 인정하는 정치 원리다. 국가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보다 앞세워 국수주의로 변질되기 쉽다.

특히 일제치하에서 망국을, 6·25전쟁을 통해 민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한국인들에게 국가는 맹목적 애국심과 충성심의 대상이다. 국가와 애국심 앞에 등을 돌리거나 초연할 수 있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태극기 달기 캠페인 등의 작은 행정조차 공무원을 동원한 국가주의로 변질되기 쉬운 까닭이다.

지난달 23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계기로 촉발된 ‘신고립주의’ 후폭풍이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브렉시트’는 1차 세계대전 후 심화된 글로벌경제의 불균형과 파시즘이 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된 데 대한 반성으로 출발한 EU의 공동체주의와 통합정신이 퇴색하고 국가주의가 부활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문제는 브렉시트로 촉발된 신고립주의와 국가주의 확산이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에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대외의존도는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을 말하는데 수치가 높을수록 대외교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의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대외의존도는 2014년 98.6%, 2015년 88.1%, 올 1분기 82.3%로 조금씩 하락하고 있지만 30%대에 불과한 일본이나 미국에 비하면 여전히 크게 높다. 게다가 최근 대외의존도가 하락한 이유는 내수가 확대됐기 때문이 아니라 세계경제 불황과 보호무역 강화로 수출입이 감소해서다.

다른 나라와의 공존이 필수인 한국이 살고 한국경제가 부활하기 위해선 신고립주의나 국가주의가 아닌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즉 남북이 중심이 돼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을 묶는 ‘동북아시아연대’나 ‘유라시아연합’ 등 세계경제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연대와 통합을 주도하는 방안 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강남구청의 태극기 게양 권고로 제헌절 아침을 맞은 아내는 “8월 광복절에 또 오면 어떡하지”라며 걱정했다. 국경일과 국가기념일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즐거운 일이 어느새 누군가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돼 버렸다. 국가주의를 극복해야 한국경제도 살아난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강선우 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2일 국회에 국방부, 국가보훈부, 통일부, 여성가족부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송부를 재요청했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 "금주 내에 임명을 마무리하고 신속한 국정 안정을 꾀하기 위해 기한은 오는 24일 목요일로 요청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서울=뉴스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레젭 타입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5.07.17 photo@newspim.com 현행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면 국회는 임명동의안 등이 제출된 날로부터 20일 이내에 청문 절차를 마무리해야 한다. 만약 국회가 이 기간 내에 청문보고서를 송부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그로부터 열흘 이내 범위에서 기한을 정해 국회에 송부를 재요청할 수 있다. 앞서 이 대통령은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진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지명을 철회했으며, 보좌진 '갑질' 등 의혹이 불거진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 절차를 이어가기로 했다. 강 후보자와 관련해 야당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들로부터도 반대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parksj@newspim.com 2025-07-22 15:52
사진
[단독] '근로감독관법' 입법 초읽기 [세종=뉴스핌] 양가희 기자 = 근로감독관 직무·권한·수사권 행사 기준 등 근로감독 업무 전반에 대해 체계적인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근로감독관법 제정안이 발의될 예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근로감독관 증원 의지를 꾸준히 밝혀왔다. 이 대통령 대선 공약에는 임기 내 근로감독관을 최대 1만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현행 근로감독에 대한 법적 근거가 근로기준법 아래 시행령과 훈령 등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한 만큼, 증원에 앞서 법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21일 국회에 따르면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근로감독관법 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 이르면 이번주 발의를 마무리하고 국회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4회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2025.07.17 photo@newspim.com 제정안은 근로감독의 내용과 감독관의 책임 및 권한 등을 명시하기 위해 마련됐다. 반복 위반 및 중대한 위법행위에 대한 즉각적 수사 착수 기준을 밝히고, 정기·수시·특별감독 유형 구분과 감독결과에 대한 처리기준을 명문화했다. 근로감독행정 정보시스템 및 노동행정포털 구축 등 디지털 행정 기반 마련, 권리구제지원관 도입 등 근로감독 역량 강화를 위한 재정적·행정적 지원 근거도 포함했다. 전문가들은 근로감독관 증원, 근로감독권 지방 이양 등 근로감독 관련 대통령 공약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법체계 정비가 먼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현행 법체계를 보면 근로감독관에 대한 법적 근거는 근로기준법 아래 시행령인 '근로감독관 규정'이 가장 상위 법령이고, 그 아래 시행규칙인 '근로감독관증 규칙'과 훈령 '근로감독관 집무규정' 등 단편적인 수준에 불과하다. 근로감독 내용과 감독관 권한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는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근로감독관 증원 및 위험 사업장 불시 단속 필요성을 반복 강조해 왔다.  이 대통령는 지난 10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위험 사업장 불시 단속과 이를 위한 근로감독관 대폭 증원 등을 지시한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산업안전 업무를 담당할 근로감독관을 300명 정도라도 신속하게 충원해 예방적 차원의 현장 점검을 불시에 상시적으로 해 나가기를 바란다"며 구체적 증원 규모까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이 근로감독관 확대를 추진하는데는 근로감독관 인력 부족이 한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노동사건은 급격히 증가하는데 반해, 이를 조사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분야를 다루는 근로감독관 수는 2236명으로 지난 2019년 이후 정체 현상이 뚜렷하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감독관과 더불어 이들이 2~3년마다 순환 근무하는 노동위원회 조사관의 업무가 증폭하고 있어 인원 확충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근로감독) 권한 일부를 지방정부에 이양하는 등의 논의도 있다"며 "이런 부분이 현행 체제로는 가능하지 않아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의원은 이번 제정안을 두고 "독자적인 근로감독법을 제정한다면 근로감독이라는 행정권한의 위상이 법적으로 확립될 것"이라며 "노동행정의 실행력이 강화될 뿐 아니라 일선 근로감독관의 전문성 제고와 집행의 일관성 확보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sheep@newspim.com 2025-07-21 18:05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