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글 양진영 기자·사진 이형석 기자] 배우 이청아가 '운빨로맨스'로 기존의 다소 소박한(?) 이미지를 벗고 똑부러지는 알파걸로 거듭났다. 벌써 배우로 15년차. 그는 아주 조금씩, 천천히 연기를 통해 삶의 경계를 넓혀가는 중이다.
MBC 수목드라마 '운빨로맨스'에서 주연 한설희(에이미)를 소화한 이청아를 만났다. 직접 마주한 이청아는 청량하면서도 화사한 미소를 지닌, 세련된 도시 여자 그 자체였다. 시원한 푸른색 원피스로 멋을 낸 그는 한설희를 맡은 이유가 '나이'라며 웃었다.
"지난해 겨울부터 바빴어요. '라이더스'하고, '뱀파이어 탐정' 끝난 다음날 '운빨로맨스' 촬영을 시작했거든요. 준비 기간이 짧아 처음엔 사실 많이 주저했죠. 하지만 주변이나 회사에서 그것 때문에 안하기는 아쉽다고 조언해줬어요. 캐릭터 사이에 간극이 크기도 하고, 아무래도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들어가는 드라마라 결국 출연을 결정했죠. 지금은 안했으면 어쩔뻔 했나 싶을 만큼 애착이 가는 드라마가 됐어요.(웃음)"
이청아에게 안했으면 후회가 남을 정도로 애착이 남는 '운빨로맨스'. 그는 이 드라마로 인해 배운 점이 많다고 털어놨다. 안해봤던 역할이라 걱정도 고민도 많았지만 원래 이청아를 녹여낼 수 있는 부분이 에이미에게도 있었다. 바로 수호(류준열)를 사심없이 챙기는 '여자사람 친구(여사친)' 이미지가 그랬다.
"처음에는 이런 역을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제겐 없던 이미지라 걱정이 컸지만 이젠 '응? 이런 면도 나한테 있네? 어울리네'라고 느끼게 됐죠. 물론 저한테 있는 면을 좀 녹여내긴 했어요. 여자들한테 털털하고 허당끼 넘는 면이나, 앙금이 쌓여도 금방 풀고 시원하게 구는 거요. 특히 수호를 대하는 '여사친'은 평소 저와 많이 닮았어요. 아직도 저는 설희 역에 절 부르신 게 신기해요. '뱀파이어 탐정'에서 좀 달라진 모습을 보셨나 했는데 저를 이미 마음에 두시고 그걸 보셨대요. 나이가 들어서 이런 역이 어울리게 됐나. 혼자 생각하기도 했죠."
많은 배우들이 작품을 통해 "많이 배웠다"는 말을 하지만, 이청아에게 한설희가 꽤 특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원래 걱정이 많은 성격이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한설희로 살면서 내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졌다"고 웃었다. 그리고 연기하며 진심으로 설희를 이해했기에 이젠 실제로 설희 같은 여자를 만나도 미워하지 않을 수 있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설희는 항상 자신감 넘치고 남들이 아닐지언정 본인은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죠. 저는 전혀 아니거든요. 설희는 항상 자신을 믿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참 배우고 싶었죠. 나도 스스로 후한 점수를 주고 싶어졌어요. 사랑에 실패했을 때도 저라면 '더 잘 해볼 걸'하고 후회했을지 몰라요. 근데 설희는 '할 만큼 했다. 이제 놔줄게. 보늬랑 이어줄게'라고 딱 쿨하게 물러서죠. 캐릭터 하나를 마칠 때마다 저라서 몰랐던 살아가는 법들을 배우게 돼요. 인생의 결점들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거죠."
결과적으로 '운빨로맨스'에 악역이 없었지만, 로맨스의 특성상 삼각관계는 불가피한 부분. 한설희는 남녀 주연인 수호와 보늬(황정음)의 관계에 긴장감을 주는 역할이었고, 악녀로 발전될 가능성도 사실 농후했다. 결국은 쿨하게 물러서며 그들의 연애를 응원해주는 '멋진 언니'로 남았지만 이청아는 그 부분에 묘한 만족감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다.
"사실 저는 악녀가 될 줄 알았어요. 보늬한테 약간 훼방놓을 때 감독님께 많은 질문을 했죠. 설희가 갈팡질팡하게 보일까 고민했지만, 뒤늦게 보니 보늬한테 더 몰입이 되고 타당성이 생겼어요. 그래서 악역이 필요하구나 싶었죠. 아쉽냐고 물으시면 악녀로 끝까지 안가봐서 모르겠어요.(웃음) 끝까지 갔다면 '와 악역해서 좋았다' 했을 거예요. 하하. 어쨌든 최선을 다했죠. 어떻게 매력적으로 설희를 그릴까. 전체 극에서 도움이 되게 할까 고민했고, 에이미의 농담 아닌 농담도 사람들을 약간은 긴장하게 하는 장치였어요. 욕을 먹어도 극에서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죠. 작가님은 훈훈한 여사친으로 마무리해주셨어요."
데뷔 15년차 이청아는 그간 작품의 주역을 맡아왔다. 이번에도 남녀 주연 4인방으로 등장은 했지만 메인 커플은 아니었다. 이 부분에 아쉬움은 없었을까. 이청아는 "설희가 주인공이었다면 제게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솔직하게 스스로를 평가했다.
"만약 설희 캐릭터가 주인공이었다면 저한테 오지 않았을 거예요. 그동안 제게 설희와 맞는 이미지가 전혀 없었거든요.(웃음) '항상 주인공이었는데, 왜 이런 역을 줘?' 이런 생각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어요. 매번 배역이 오면 그간은 '잘 할 수 있겠다'라며 언제나 참여했죠. 학교 다닐 땐 회사 몰래 단편도 많이 하고요. 어차피 개봉도 안하니까요. 하하. 쉬는 게 사실 감이 떨어지는 것 같고 불안해요. 뭐든 기회가 온다면 많이 해보는 게 좋죠."
나이 얘기가 나오니 이청아의 '연기 변신'이라는 키워드로 자연스레 얘기가 옮겨갔다. 그는 과거에 비해 최근작 '뱀파이어 탐정' '운빨로맨스'를 비롯해 영화 '해빙'까지 완전히 새로운 역할로 대중을 찾고 있다. 그것이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여배우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일지, 이청아의 생각을 물었다.
"조금 덜 조심하기로 했어요. 30대에 접어들며 좀 달라졌죠. 어릴 땐 제 세상이 좁으니까 작은 변화 하나가 엄청 크게 다가왔어요. 살다보면 굉장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지만 막상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더라고요. '머릿속에서 키운 공포는 그 안에서만 가장 크구나' 깨달았어요. '아 몰라' 하고 툭 저지른 게 더 많은 걸 배우게 해주기도 하고요. 배우는 익숙해지는 게 가장 안좋은 것 같아요. 앞으론 운동선수나 의사, 변호사, 음악가 이런 것도 해보면 좋겠어요. 직업에 따라 캐릭터가 천차만별이잖아요. 그간 알바 인생이었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정규직, 커리어 우먼을 겪어봤죠. 하하."
정말이지 무탈하게 소리소문없이 강한 업계의 강자라 할 만한 이청아. 칭찬 아닌 칭찬에 그는 "소심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자평했다. 그가 세간에 오르내린 건 꾸준히 작품으로 발전된 연기를 보여준 것 외에 공개 연인 이기우와 관계가 밝혀진 순간이 다였다.
"제가 소심해서 그래요. 돌다리로 두드리고 안 건너는 성격이죠. 공공질서 어기는 것과 남한테 피해주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요. 사실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은데 그게 안변하더라고요. 이렇게 그냥 살면서 삶 속에서 나름대로 자유로움을 찾으려고요. 하하. 공개 연애요? 장단점이 있다고 봐요. 결혼이 아닌 이상에야 원해서 공개하는 분들은 없잖아요. 이미 벌어진 일, 그 안에서 장점을 찾으려 해요. 저흰 그냥 밥도 같이 먹고, 누릴 수 있는 걸 누릴 수 있는 점은 좋아요."
어릴 적부터 연기를 시작해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조금씩 다른 캐릭터를 통해 삶의 여러 부분을 겪어보고 저변을 넓혀가는 배우. 이청아는 그런 길을 걸어왔다. 그는 올 하반기 개봉을 앞둔 영화 '해빙'을 여러 모로 기대하고 있었다. 도덕 관념에 매여 사는 이청아의 정반대 이미지를 볼 수 있다며 기대를 당부했다.
"빨리 보여드리고 싶어요. 도덕관념이 아예 없는 캐릭터를 굉장히 해보고 싶었거든요. 연기가 아니면 해볼 수 없는 일이니까요. '뱀파이어 탐정' 때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밟는데, 처음엔 '어떡해, 죄송해요' 하다가 나중엔 무심하게 하게 됐죠. 정말 빨리 익숙해지기 때문에 평소에 더 조심해야겠다 생각하기도 하고. '해빙'에서 저는 너무 색다른 캐릭터라 최근에 새로운 시도를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확 받으실 거예요. 진짜 요새 애들 같은 화장을 하고 날라리 같은, 발랑 까진 느낌? 도덕 관념이 없죠.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이청아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 이형석 기자 (leeh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