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기업주도 조선 구조조정…정부는 지원사격
눈치보던 석화‧철강, 설비 재가동· 고부가화 박차
[뉴스핌=전민준 기자] 정부에 등 떠밀려 구조조정 하고 있는 조선‧석유화학‧철강업계가 '최순실 게이트'로 컨트롤타워를 잃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시중 여론과 달리, 정작 당사자인 관련업계는 쿨한 반응이다. 자율적인 사업재편을 추진할 수 있어서다.
27일 조선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조선업계가 정부 입김이 담긴 맥킨지의 보고서를 그대로 따라야 해 불만이 가득했던 상황이었다"며 "최순실 게이트로 청와대, 정부가 힘을 잃을 경우 업계의 반발이 예상, 조선사들이 애초 제시한 자구안대로 추진할 가능성이 클 것"이라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채권단 주도로 조선업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정부는 지원사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앞서 이달 초 조선업계에는 구조조정 컨설팅을 맡은 맥킨지의 보고서 일부가 노출됐다.
업계 대변기관인 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지난 7월 맥킨지에 조선업 구조조정 컨설팅을 의뢰했고, 이후 3개월 뒤 대우조선해양의 생존은 어렵고,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중심으로 ‘빅2’로 재편해야 한다는 컨설팅 결과가 업계에 알려졌다.
특히 정부가 맥킨지 보고서를 구조조정의 주요 참고자료로 활용하겠다고 최근 밝히면서 대우조선은 크게 반발하고 있었다. 정부는 컨설팅 과정 중 수시로 개입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던 터였다.
'최순실 게이트'로 정부의 힘이 더 약해질 경우, 조선사가 현 사업 분야를 유지하는 가운데, 설비는 다운사이징(규모 축소) 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채권단 등의 입장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또 채권단은 조선경기 회복이 예상되는 2018년까지 대우조선이 버틸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바, 최대 주주인 산은이 일부 추가 출자하고, 최대 채권자인 수은도 출자전환에 동참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관계자는 "정국 혼란에 빠지면서 경쟁력 강화 방안 발표가 연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정부가 힘을 잃으면 대우조선의 재무개선방안도 채권단 주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했다.
석유화학과 철강업계도 내심 자발적인 체질개선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공급과잉 1순위로 꼽힌 고순도 테레프탈산(TPA)은 최근 시황회복과 고부가화로 재가동 요인이 발생했지만 정부 눈치를 보느라 다시 켜지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세계 TPA 시장은 올 하반기 들어 신규 증설 제한, 가동률 조정 효과로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국내 1‧2위인 한화종합화학과 삼남석유화학도 신수요 개발에 성공하면서 라인 재가동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한국석유화학협회 관계자는 "라인을 다시 돌릴 경우 정부 방안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어서 쉽게 단행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철강업계는 후판 사업고도화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제품 고부가화, 설비 축소 등으로 후판은 이미 구조조정이 상당히 진행됐다"며 "정부 때문에 필요한 설비까지 줄여야 했는데, 이번 사태로 자발적인 체질 개선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실제 후판3사는 최근 조선용 후판 값을 전분기 대비 t당 10% 인상했고, 고성능 후판 등 고부가 제품을 내놓으며 수익 개선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이와 관련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무조건 설비를 줄이라는 게 정답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번 파문으로 산업 구조조정이 정부와 정치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지 않겠냐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또, 정부가 레임덕에 빠져 구조조정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전민준 기자(minjun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