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뫼비우스 단상] 숫돌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어릴 때 살던 집의 사진을 꺼내 본다.
그리 넓지도 않고 아주 오래 되어 볼품 없는 한옥. 빈 집으로 폐가마저 되어 있지만 지구상에 있어온 모든 집 중에 내겐 가장 의미 있고 아름다운 집이다.
신식으로 바뀌기 전의 재래식 부엌엔 아궁이가 있었다. 그 안엔 구닥다리 레일이 깔려 연탄이 담긴 도구를 운반했다. 어머니의 애환과 소망도 함께 버무려졌다.
부뚜막에 놓인 검은 솥단지엔 검댕이 붙어 있었다. 그것이 검은 보석인 줄을, 흑연, 다이아몬드, 그래핀과 같은 로얄 패밀리라는 사실을 어릴 땐 알지 못했다.
마당의 장독대엔 항아리가 있었다. 된장과 간장이 익어갔을 것이다. 냄새가 고약했는데 내가 장성해서는 발효의 내음으로 그보다 좋은 것이 없어 보였다.
부엌의 벽에 걸린 소쿠리를 형이 걷어와 마당에 내놓은 날도 있었다. 창고에서 나무 토막을 꺼내오고 안방에서 긴 끈을 구해왔다. 그걸로 나무 토막을 묶었다. 그 막대기를 소쿠리 안에 그것을 받치며 놓아두었다. 끈의 끝을 움켜쥐고 참새가 날아와도 보이지 않게금 마루 깊숙이 몸을 숨겼다. 밥을 안치고 마루를 닦던 식구들은 그 풍경을 보면서 웃음을 참고 있었다. 딱지 치기, 구슬 놀이 등 노는 일이 직업인 나 역시 색다른 호기심이 일어 멀뚱히 지켜보고 있었다.
참새는 형보다 영리했다.
안방엔 공작새가 수놓인 커다란 천이 걸려 있었다. 어머니가 시집오기 전에 손수 짠 것이다. 아버지가 아끼는 그 부친의 작은 유품. 실크로드의 이미지로 내게 부각된 그것도 어딘가에 숨어 있었을 것이다.
성냥, 싸구려 망원경, <안데르센 동화집>, <그리이스 로마 신화>, 카프카의 소설, 실, 뜨개질 바늘, 골무, 비녀, 대야, 밥상, 두꺼비집, 망치, 대패도 그 집에 있었다.
또 있었다. 마당엔 수채가 흘렀는데 그 곁에 숫돌이 있었다. 부엌에 걸려 있던 칼들이나 마루 위의 가위는 그 검은 돌에 갈려 날카로와졌다. 칼이나 가위로서의 생명력이 살아난 것이다. 그만큼 숫돌은 닳아졌다.
제 몸을 허물고 비워 다른 사물들을 빛나게 해주어서 그런지 작고 볼품 없는 숫돌은 엄청난 무게감으로 그 자리에 붙어있는 듯했다.

산책에 나서서 걷다보니 어느 집 창에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빛과 그림자의 조화 속에 네모난 창틀이 문득 천원지방의 ‘방’의 형상으로 보였다,
유리창은 말라르메의 시에도 나오듯 비상이며 자유이자 하늘을 상징한다. 그 유리창의 틀이 땅의 형상이라는 이 순간의 발견 하나만으로도 내 가슴은 뛴다.
그러고 보니 숫돌도 천원지방의 ‘방’ 모양이다.
숫돌이 마당에서 내 눈을 유독 끌었다면 안방에서는 벼루라고 할 수 있겠다. 붓과 먹, 선지와 함께 문방사우에 속하는 벼루. 그것은 숫돌과 왠지 닮은 점이 있어 보인다.
둘 모두 자기 몸을 허물고 비워 다른 것을 빛나게 하는 도구로 쓰여서인 것 같다. 먹이 갈릴 때 벼루 또한 조금씩 갈려 네모난 허(虛)의 바닥이 둥그렇게 패여나간다. 그곳에 먹물이 특히 진하게 고여 붓에 스며드는 것이다.
벼루는 천원지방의 ‘방’ 형상을 바탕으로 ‘원’의 형상도 빚는 셈이다. 원래는 네모난 형태인데 먹과 더불어 갈리다보니 ‘원’ 즉 하늘 형상마저 지니게 되면서 그 안에 고이는 먹물이 붓에 의해 글이나 그림으로 화하는 것이다.
네모난 창틀에 끼여진 유리창에 햇빛이 하늘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흡사하다고 한다면 궤변이며 억지일 뿐인가.
그렇게 보아도 상관없다.
내겐 지금 그런 상상이 유리창에 투영되면서 내가 사는 셋집 역시 문득 좀더 소중해지는 것이다.
마당이 없어서도 그럴 것이다. 마당이 없기에 화단도 없고 흙도 없고 꽃도 없다. 수채 옆에 놓여 있던 숫돌도 없다. 결여 때문인지 오래도록 잊고 있던 그 존재가 떠올랐었는데 벼루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지며 그 둘이 유리창에 덧씌워진 것이다.
세상엔 집이 없는 사람, 집은 있으나 나라가 없는 사람, 집도 나라도 없는 사람, 나라도 집도 있었으나 둘 다 빼앗기고 자기 집이던 바로 그곳에서 노예로 전락한 사람 등등 별의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버젓한 고향의 집을 두고 난민의 신세가 되어 이국의 난민촌에서 냄새 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탈출 과정에서 목숨처럼 아끼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영혼을 짓누르는 사람들도 많다. 세상의 참담한 비극들 앞에서 나 정도의 궁핍은 오히려 송구할 뿐이고 그에 대한 상상의 덧칠도 가벼운 일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수저, 싱크대, 보일러 조절 장치, 머그컵, 안방문, 스위치, 거울 등등은 모두 자그마한 안식처로서의 내 셋집 안의 물건들이다.
의미를 부여하다 보니 하나하나 새롭게 변모했고 더욱 소중하고 따스하게 와닿았다. 물론 그것들은 그 자체로 풍성함을 지니고 있다. 그 하나하나엔 내가 미처 담지 못한 깊이들이 머금어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다른 어느 걸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들인 사람들이 사는 집. 그것 역시 탐욕, 이기심의 집이 아니라 소유 이상의 존재의 집이기를 바래 본다.
유리창이 큰 나의 셋집 안엔 작은 앉은뱅이 탁자가 있다. 노트북도 놓여 있고 볼펜도 놓여 있다.
숫돌이 제 몸을 허물고 비워 다른 존재들을 빛나게 하듯 볼펜 역시 그런 면도 있어 보인다. 노트북은 볼펜이자 종이이다. 붓이자 선지이기도 하다. 내 가슴 속의 먹과 벼루를 더욱 갈아 진한 먹물이 둥근 바닥에 잘 고이도록 해야겠다.

이명훈 (소설 ′작약도′ 저자)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채해병 순직' 임성근 1심 징역 3년 [서울=뉴스핌] 박민경 기자 = 채해병 순직사건과 관련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는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이 8일 1심 선고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는 이날 오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임 전 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상현 전 해병대 1사단 7여단장에게 금고 1년 6개월 ·최진규 전 11포병대대장 금고 1년 6개월·이용민 전 7포병대대장 금고 10개월 ·전 7포병대대 본부중대장 장모 씨에게 금고 8개월 2년 집행유예를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 전 여단장, 최 전 대대장, 이 전 대대장에 대해서는 "오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됐고,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점 등에 비춰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된다"며 "앞서 선고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와 관련해 법정구속한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는 8일 오전 업무상과실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임 전 사단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사진은 임 전 사단장. [사진=뉴스핌 DB] 재판부는 양형 이유에 대해 "당시 지휘부는 수색 작전 과정에서 안전사고 위험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대원들에게 필요한 안전장비를 제대로 구비·지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단장과 여단장 등 상급 지휘관들은 수중 수색을 중단시키거나 물가 접근 자체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홍수 범람 위험을 미연에 방지했어야 했다"며 "그럼에도 불분명한 작전 지휘 상황 속에서 오로지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 몰두한 나머지 '더 내려가서 헤치고 꼼꼼히 수색하라'는 식의 적극적·공세적 지휘를 반복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위험지역에서 성과를 얻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대원들의 생명·신체 위험을 사실상 도외시했다"며 "수색에 투입된 장병들이 구조 장비조차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 상태였고, 허리 높이까지 물에 들어가라는 취지의 지시가 내려졌음에도 안전 확보와 관련한 구체적 조치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단장·여단장·대대장 등 지휘관들은 장병들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소홀히 했고, 단순한 부작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위험을 인지하고도 오히려 위험을 가중시키는 적극적 지시를 내렸다"며 "사망이라는 중대한 결과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시했다. 순직해병 특검팀(특별검사 이명현)은 지난달 1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임 전 사단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은 "임성근은 해병대원들의 안전보다 적극적 수색을 강조하며 반복적으로 질책해 사고 발생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며 임 전 사단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특검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함께 기소된 박 전 여단장에게 금고 2년 6개월, 최 전 대대장에게 금고 2년 6개월, 이 전 대대장에게 금고 1년 6개월, 장씨에게 금고 1년을 각각 구형했다. 임 전 사단장 등 5명은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군 보문교 부근 내성천 유역에서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작전 도중 해병대원들이 구명조끼·안전로프 등을 착용하지 않은 채 수중수색을 하게 해 채해병이 급류에 휩쓸려 사망하게 한 혐의 등을 받는다. 임 전 사단장은 작전통제권을 육군 제50사단장에게 넘기도록 한 합동참모본부 및 육군 제2작전사령부의 단편명령을 어기고, 직접 수색 방식을 지시하고 인사 명령권을 행사하는 등 지휘권을 행사한 혐의도 받는다. 법원로고 [사진=뉴스핌DB] pmk1459@newspim.com                   2026-05-08 11:47
사진
KF-21, '전투용 적합' 최종판정 받다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한국형전투기(KF-21) 보라매가 7일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전투용 적합' 판정을 획득하며 체계개발의 최종 관문을 통과했다. 2015년 12월 체계개발 착수 후 10년 5개월, 2023년 5월 '잠정 전투용 적합' 판정 이후 약 3년간의 후속 시험평가 끝에 이뤄진 결과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스웨덴·일본에 이어 독자 전투기 개발 능력을 완전히 확보한 8번째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1월 12일 경남 사천 남해 상공에서 KF-21 시제 4호기가 비행성능 검증 임무를 수행하며 비행시험을 전면 완료했다. KF-21 개발은 총 1600여 회, 1만3000개 항목에 이르는 비행시험을 단 한 번의 사고 없이 완료하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사진=한국항공우주산업 제공] 2026.05.07 gomsi@newspim.com 방사청에 따르면, KF-21은 2021년 5월 최초 시험평가를 시작해 올 2월까지 약 5년간 지상시험을 통해 내구성과 구조 건전성을 검증했다. 특히 2022년 7월부터 2026년 1월까지 42개월간 진행된 비행시험에서는 총 1600여 회 비행에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극저온·강우 등 악천후 조건 하 비행, 전자파 간섭 하 비행, 공중급유, 무장발사시험 등 1만3000여 개의 다양한 시험조건을 통해 비행 성능과 안정성을 완벽하게 검증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전투용 적합 판정은 KF-21 블록-I(기본성능·공대공 능력)의 모든 성능에 대한 검증이 완료됐음을 의미한다. 방사청은 KF-21이 공군의 작전운용성능(ROC)을 충족하고, 실제 전장 환경에서 임무 수행이 가능한 기술 수준과 안정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 노지만 방사청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은 "국방부·합참·공군·한국항공우주산업(KAI)·국방과학연구소 등 민·관·군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이룬 결실"이라며 "향후 양산 및 전력화도 차질 없이 추진해 공군의 작전수행 능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방사청은 비행시험 효율화를 위해 시험 비행장을 사천에서 충남 서산까지 확대하고 국내 최초로 공중급유를 시험비행에 도입했다. 그 결과 개발 비행시험 기간을 당초 계획보다 2개월 앞당길 수 있었다. KF-21 체계개발 사업은 올해 6월 종료되며, 양산 1호기는 올해 하반기 공군에 인도될 예정이다. 양산 1호기는 지난 3월 25일 경남 사천 KAI 공장에서 출고됐으며, 4월 15일 출고 22일 만에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물량은 순차적으로 실전 배치될 계획이며, 추가무장시험을 통해 공대지 무장 능력도 확보할 예정이다. 공군은 2032년까지 총 120대를 전력화할 계획으로, KF-21은 노후화된 F-4E·F-5E 전투기를 대체하는 한편, 대한민국 영공방위의 핵심 전력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방사청은 "검증된 성능을 바탕으로 글로벌 방산 4대 강국 도약의 서막을 여는 K-방산 수출의 핵심 무기체계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gomsi@newspim.com 2026-05-07 11:35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