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학·전자산업 개척하며 산업근대화 새지평 열어
[뉴스핌=이강혁 기자] LG그룹은 오는 27일로 창립 70년을 맞는다. 한국의 화학과 전자산업을 개척하며 산업근대화의 새지평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그룹들이 흥망성쇠를 겪는 과정에서도 큰 잡음없이 전진하고 있는 LG그룹. 이런 성장의 원동력은 창업주부터 계승·발전되고 있는 '연구개발(R&D) 중시 경영'에 있다. 무수한 '최초' 수식어가 70년 R&D 역사를 말해 준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LG그룹은 창립 70주년 행사를 맞아 별다른 자축행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정상업무를 보기로 한 것이다. 어지러운 시국을 감안한 것도 있으나, '일등 LG'의 목표를 향한 도전과제가 그만큼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시끌벅적한 행사보다는 영속 기업으로 가기 위한 혁신활동에 매진하자는 게 경영진과 직원들의 뜻이다.
▲일제시대 겪은 구인회 창업회장의 기업가 정신 '자본 통한 경제력'
LG그룹의 시작은 1947년이다. 고(故) 연암 구인회 창업회장이 부산 서대신동에서 락희화학공업사(현재 LG화학)을 설립해 화장품인 럭키크림 제조에 나선 것이 출발이다. 70년 세월이 지난 현재, 그룹 규모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단적으로 1947년 3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약 150조원으로 성장했다. 종업원수도 창립 당시 럭키크림을 생산하기 위해 90평 규모의 공장에서 20명 정도가 일하기 시작해 현재는 약 22만2000명이 국내(13만7000명)와 해외(8만5000명) 곳곳에서 근무 중이다.
국내 최초 국산화 한 전화기로 시험통화하는 연암 구인회 LG 창업회장. <사진 =LG그룹> |
LG그룹의 역사에서 연암은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07년 8월 27일 경남 진양군 지수면 승내리에서 태어났다. 일제시대를 겪으며 성장한 연암은 청년 시절부터 '민족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본을 통해 경제력을 길러야 한다'는 일념으로 기업가의 길을 걸었다.
1945년 해방이후 보다 큰 꿈을 펼치기 위해 부산으로 나와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연암은 그 해 11월 무역업을 주로 하는 조선흥업사를 설립했다. 당시 연암은 인척이었던 허만정 공의 아들 허준구 상무와 함께 동업경영을 시작했다.
1946년 2월에는 화장품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화장품 판매업에 성공한 연암은 크림을 직접 생산하기로 결심했다. 이에 연암은 1947년 1월 오늘날 LG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하고 럭키크림을 생산으로 제조업에 진출해 이후 20년 동안 우리나라 산업근대화의 새 지평을 열어나갔다.
연암은 크림 사업 성공을 발판으로 1952년 9월부터 플라스틱 빗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해 11월에는 공장을 부전동으로 옮겨 5대의 사출기로 칫솔, 세숫대야, 식기 등을 생산했다.
1954년 6월에는 연지동에 공장을 세워 비닐원단 및 플라스틱제품 제조시설을 대폭 확장했다. 1955년 3월에는 럭키표 치약도 생산했다. 럭키치약은 그 후 오랫동안 국내시장을 주도했다.
1957년 플라스틱공업이 군소업체의 도전으로 성장의 한계에 부딪히자, 연암은 전자부문으로 사업전환을 했다. 금성사(현재 LG전자)가 설립된 것은 1958년이다. 1959년부터 라디오 생산을 시작했고, 1961년 12월 TV수상기 제작에도 나섰다. 1966년 8월 금성사는 국내 최초로 흑백TV(19인치)를 생산, 그 후 전자제조업체로 폭발적인 성장을 했다.
연암은 또, 1966년 국내 민간업체 최초의 외자를 도입한 합작회사 호남정유를 설립해 에너지산업을 개척하며 우리나라 산업 근대화에 초석을 놓기도 했다. 그 밖에도 과학기술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연구기금을 지원토록 하기 위해 연암문화재단을 설립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LG의 창업자로서의 경제계 및 사회적으로 역량을 발휘하다가 1969년 말에 향년 62세로 영면했다.
▲구자경, 새로운 변화와 도약 전기 마련...구본무, '지속적 혁신+경쟁력 강화'
연암의 바통을 이어받은 것은 그의 장남인 구자경 회장(LG그룹 명예회장)이다. 1970년 1월의 일이다. LG의 새로운 변화와 도약이 전기를 맞은 것은 이때부터다.
구 명예회장은 2대 회장에 취임하면서 '내실 있는 안정적 성장'을 강조했다. 이후 LG그룹은 화학산업과 전자산업을 양대 축으로 삼아 석유화학, 정밀화학, 에너지, 반도체 등 첨단 산업 분야와 건설, 증권, 유통, 보험 및 금융 등 서비스산업으로 사업영역을 넓혀나갔다.
1995년은 LG로의 새로운 출발과 '일등 LG'를 위한 도전이 시작된 때다.
그해 1월 LG로 새롭게 출발해 2월에는 3대 구본무 회장 체제가 출범했다. 1947년 부산에서 락희화학공업사로 출발한 지 48년 만에 LG가 새로운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한 것이다.
구 회장 취임 이후 LG는 세계를 향해 정도경영을 통한 '일등 LG'에 본격적으로 도전했다. 이동통신, LCD, 반도체, 에너지 및 유통사업에 도전해 큰 성과를 거뒀다. 중국과 유럽, 미주 지역에서 광범위하고 다각적인 세계화 전략을 펼쳐 세계 속에 LG 이미지를 심어 나갔다.
그러나 1997년 말, 한국에 닥친 IMF체제를 거치면서 LG는 큰 변화를 겪게 됐다. 위기에 닥친 국가경제를 재건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의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자유치를 위한 합작, 계열사 간 통합과 사업 이관을 통해 기업체질을 강화해 나갔으며, 그 와중에서 반도체와 카드, 증권 등 LG 성장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계열사를 매각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후 LG그룹은 2003년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며 한발 앞선 선진 경영시스템을 구축해 투명경영에도 앞장섰다. 대기업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어온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고, 사업자회사는 오로지 본연의 자기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때 LG그룹은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하며 LS그룹과 GS그룹으로 계열분리를 단행했다. 창업 이래 이어졌던 57년 동안의 '구-허' 동업경영체제도 아름답게 마감했다.
올해 창립 70년을 맞은 LG그룹은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를 통해 사업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대주제를 설정하고 있다. 미래 성장 기회를 꾸준히 확보해 영속하는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구 회장은 지난 2월 최고경영진과의 창립 70년 기념 만찬에서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고통도 있었지만 우리는 이를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며 "최근의 경영환경을 볼 때 지난 세월 여러 난관을 헤쳐 나가면서 얻은 교훈들을 깊이 새겨 다시 한번 변화하고 혁신해야만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구 회장은 이어 영속하는 기업으로의 토대를 만들기 위해 "사업 구조 고도화의 속도를 더욱 높여 반드시 주력사업을 쇄신하고, 미래 성장 사업을 제대로 육성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LG그룹은 올 한해 프리미엄 가전, 올레드(OLED), 고부가 기초소재 등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수익성을 제고하기로 했다. 또한 친환경 자동차 부품과 에너지솔루션 등 신성장사업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본격적인 성과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연구개발과 개척정신...70년 원동력은 '연구개발 중시 경영'
이런 LG그룹의 70년 성장 원동력은 '연구개발 중시 경영'이다.
연암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순간마다 되뇌인 말에는 이런 고민의 흔적이 잘 녹아있다. 연암은 "남이 안 하는 것을 해라. 뒤따라가지 말고, 앞서가라. 새로운 것을 만들라"고 부단해 '연구개발'을 독려했다.
지난 2013년 LG전자가 세계 최초로 출시한 55형 올레드TV. <사진 = LG전자> |
이처럼 창업회장이 경영이념으로 삼았던 새로운 사업 개척의 근본이 되는 '연구개발'과, 남이 하지 않는 일을 찾아 먼저 도전하는 '개척정신'은 1990년 구 명예회장이 LG의 새로운 경영이념을 정립하면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로 발전됐다.
그리고 이런 경영이념은 구 회장이 취임한 이후 ▲기술 차별화 ▲원천 기술 확보의 대주제 속에서 적극적이고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이어지고 있다. 구 회장이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직접 채용현장으로 달려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LG 관계자는 "연구개발과 개척정신을 반복적이고 강력하게 주문하면서 LG 특유의 연구개발 중시 기업문화가 굳어졌다"고 부연했다.
LG그룹은 현재 서울 강서구 마곡산업단지에 4조원을 투자해 국내 최대 규모의 융복합 연구단지인 'LG사이언스파크'를 건립 중이다. 이곳에는 향후 2만2000여명의 연구인력들이 집결한다. 융복합 연구 및 핵심∙원천기술 개발을 통해 시장선도 제품과 차세대 성장엔진을 발굴하는 LG의 '첨단 연구개발 메카' 역할을 하게 된다.
한편, LG그룹은 R&D 중시 경영을 통해 국내외 산업사의 한 획을 긋는 무수한 '최초' 수식어를 만들었다. 1959년에는 국내 최초 라디오 개발에 성공했고, 1961년에는 국내 최초로 자동 전화기를 개발했다. 1966에는 국내 최초 흑백TV를 개발해 국민들 삶의 질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세계 최초 수식어도 여러개 가지고 있다.
▲세계 최초 42인치 TFT-LCD 개발(2002년) ▲세계 최초 나노기술 적용한 고차단성 플라스틱 신소재 '하이페리어' 개발(2004년) ▲세계 최초 지상파 DMB폰 개발(2004년) ▲2600mAh급 원통형 리튬이온 2차전지 세계 첫 생산(2005년) ▲세계 최초 LTE 단말 모뎀칩 개발(2008년) ▲세계 최초 55인치 TV용 올레드 패널 개발(2011년) ▲세계 최초 55인치 올레드 TV 양산(2013년) ▲세계 최초 플렉서블 와이어 배터리 개발(2013년) ▲세계 최초 플렉시블 및 투명 OLED 동시 개발(2014년) 등이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 재계팀장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