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해제 이후 유럽·亞기업, 이란 선점 열기 '후끈'
미 기업, 트럼프·이란 갈등 심화에 불똥 튈까 우려
[뉴스핌= 이홍규 기자] 주요국들의 대(對)이란 경제 제재 이후 글로벌 기업들이 이란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신중한 자세를 보이는 미국 기업을 제치고 시장 선점하려는 유럽과 아시아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프랑스 푸조와 르노는 이란에서 자동차를 제조하고 있으며, 영국의 보다폰은 네트워크 인프라 구축을 위해 이란 기업과 협력 중이다. 또 영국의 로얄더치셸을 비롯한 주요 석유회사들은 에너지 자원 개발을 위한 임시 계약을 맺었다. 독일 지멘스 등 인프라 대기업들은 대형 프로젝트 계약을 체결했다.
<사진=블룸버그통신> |
푸조의 진 크리스토프 쿠에마드 중동 수석은 "회사의 인도 초기 진출로 미국 경쟁사들을 앞지르게 됐다"면서 이는 (시장 진출에) 속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미국 기업들이 이란에 일찍 발을 들여 놓은 경쟁사들 때문에 수익성 높은 거래들을 뺏길 위험에 놓여있다고 분석했다.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013년 오바마 행정부가 개인 통신 기기의 수출을 허용한 이후 이란 시장 진출을 검토했으나 금융과 법률적 문제 때문에 시장 진출을 철회했다.
통상 미국 기업이 이란과 사업을 하기 위해선 미국 재무부로부터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는 작년 미국 항공사 보잉이 이란에 166억달러 규모에 이르는 80대의 항공기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을 제외하고 이란과 대규모 거래를 체결한 미국 기업들이 소수에 그치는 이유다.
◆ 트럼프·이란 갈등 심화에 미 기업 기회 축소
작년 11월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 기업들의 이란 시장 진출 기회는 더 쪼그라드는 모양새다. 대선 기간 이란과 맺은 핵 협상을 파기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이란의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발표했다. 이에 맞서 이란은 미국 15개 기업에 제재를 부과했다.
지난 2015년 타결된 핵협상으로 미국과 유럽연합(EU), 유엔의 대이란 경제 제재가 해제됐다. 제재 당시 이란의 에너지 수출과 외국인 투자 유치가 제한됐다. 다만 음식, 의약, 농산물은 미국의 제재 대상에서 제외돼 미국 기업들은 외국 자회사나 제 3국을 통해 이란에 해당 품목을 수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포드와 제네럴모터스 등 미국의 완성차 업체들은 핵협상 이후에도 이란을 멀리하고 있다. 반면 푸조 등 프랑스 자동차 기업들은 이란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푸조는 지난 6월 4억유로 규모의 합작 투자 계약 2건을 체결한 데 이어 이란의 국영 자동차기업 코드로와 합작해 내년까지 연간 20만대의 자동차를 생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 정부가 승인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재작년 12억6000억달러에서 110억달러로 치솟았다. 이란 상공회의소의 페드람 솔타니 부사장은 "200여개 외국 기업 사절단이 핵 협상 발효 이후 이란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대규모 글로벌 은행들은 핵협상에도 불구하고 이란과 관계 회복을 꺼려하고 있다. 이는 이란과 자금 송금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스탠다드차타드, BNP파리바, 크레디트스위스 등 서방 은행들은 미국 제재 조치와 관련해 벌금을 부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로 이란과 거래를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 소규모 유럽 은행들은 이 틈을 파고 들고 있다.
한편, 석유와 인프라 회사 등을 포함한 일부 다국적 기업들은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다시 되돌려 놓을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셸과 프랑스의 토탈, 오스트리아 OMV는 이란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지만 계약 규정이나 조건 등은 완성하지 못한 상태라고 WSJ은 전했다.
[뉴스핌 Newspim] 이홍규 기자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