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뫼비우스 단상] 파놉티콘. 시놉티콘. 바깥

기사입력 : 2017년08월04일 18:15

최종수정 : 2017년08월07일 11:26

일상에 흔히 보이는 것들로 뫼비우스적, 그 이상의 상상 여행을 하려 한다. 주변의 사물들엔 저마다 독특한 내력이 숨어 있고 어떻게 빚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나침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출발한 여행의 과정에 어떤 빛깔의 풍경이 나타날지, 그 끝이 어디까지 다다를지 필자 자신도 설레인다. 인문학의 시대라고 하는데 인문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 메타적 성찰 역시 필요한 시점이다. 사물과 풍경, 시대와 인문을 두루 관통하면서 색다르면서도 유익한 여행을 떠나려 한다.

 

파놉티콘, 시놉티콘이란 말이 곧잘 쓰인다. 간단히 설명하면 파놉티콘은 원형 감옥인데 둘레의 방에 갇힌 죄수들을 감시하는 중앙의 방이 비어있는 상태이다. 죄수들은 중앙의 빈 방에 간수가 있다고 여긴다. 그렇게 길들여졌고 그런 자기 검열이 내재화되어 있다. 권력과 시민들의 관계로 흔히 해석되는 바 중앙의 권력의 입장에선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고 시민들의 입장에선 세뇌되어 알아서 기는 것이다.

시놉티콘은 그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즉 이번엔 바깥에서 안쪽을 감시하고 경종을 울리며 심판도 하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이 그럴 것이다.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에선 시민 운동이 그 역할을 한다. SNS가 발전된 지금은 그러한 운동이 보다 효과적이다. 아랍의 봄인 자스민 혁명이나 최근의 광화문 촛불집회가 이런 사례에 속한다.
파놉티콘이 먼저였을테고 그에 대한 저항이 시놉티콘이다. 전자는 원형이고 후자는 원형으로 간주된다.
원은 우주라든가 마음처럼 긍정적이며 근원적인 것, 원대한 것과 통한다. 주역도 원이다.
하늘과 땅을 천원지방이라고 하듯이 자연엔 원의 성질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연에서 비롯된 문명은 진행되면서 그 원이 뒤틀리는 양상 또한 띄어간다. 로마의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도 그런 예의 하나일 것이다. 검투사나 맹수가 동원되고 심지어는 기독교인들이 희생자가 된다.
이쯤에서 폭력에 대한 이론 하나를 빌어 오고 싶다. 물론 권력과 폭력은 다르다. 권력은 파놉티콘이나 시놉티콘, 콜로세움에서 보듯 폭력적이기도 하고 시민들을 위해 제대로 봉사할 때 바람직한 것이 되기도 한다. 폭력화된 권력, 폭력 자체가 문제인데 르네 지라르는 이에 천착해 희생양 이론을 만들어 낸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사회엔 폭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큰 폭력을 막기 위해 작은 폭력이 필요하다. 작은 폭력을 미리 만듦으로써 큰 폭력을 방지할 수 있다. 작은 폭력의 대상자 즉 희생자로선 그가 보복할 힘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억울하게 희생된 뒤에 성스럽게 미화된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의 살해에 동참하고도 느끼지 못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해서이다. 대강 이런 식인데 인간이 사는 사회나 문명의 끔찍함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인류사엔 진실과 평화 역시 존재했고 존재한다. 르네 지라르가 간과하거나 자신의 이론을 위해 배제시킨 부분이다. 서양의 이론들은 여기서도 보이듯이 어느 부분을 과도하게 부각시키기도 하고 그 극대화를 위해 반론이 될만한 소지들을 외면하는 경우까지 생긴다. 주역을 가진 동양으로서는 잘 되지 않는 부분이다. 경전의 결여로 인해 무모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다고도 볼 수 있는데 그로 인해 진실에 대한 전율적인 통찰이 생기는 것 또한 사실이며 학문적 성과로 이어진다. 어쨌든 인류사에서 폭력은 마이너하지 않고 메이저에 가까운 게 사실일텐데 갑의 위치에 있는 국가들도 폭력을 이용해 자기네 권력이든 사회의 존속을 시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콜로세움은 그런 면을 포함해 갑의 오락성, 둘러리로 삼고 싶은 시민들 길들이기 등 다양한 꽁수 차원에서 당시의 권력 측에서 고안되었을 것이다.
로마 문명의 영향 또한 짙게 받은 서양 문명은 중세, 근세를 거치면서도 폭력의 문제는 증대되면 되었지 근원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점에선 서양 문명만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인류의 보편적인 문제이다. 폭력 아닌 평화를 외치는 중세의 기독교마저 폭력의 생산자 위치에 주로 서 있었다. 그런 흐름 속에 18 세기의 영국에서 벤담의 공리주의가 탄생된다. 산업혁명 무렵으로 부의 성장과 함께 그 그늘로서 불평등이 커지던 시대였다. 파놉티콘은 그런 시대 상황 속에 처음 벤담에 의해 나온 아이디어였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다는 논리 하에 저비용 고효율로 죄수 같은 사람들을 관리하자는 차원이었다. 그러한 파놉티콘이 현대에 와서 푸코에 의해 이 글의 서두에 쓴 내용으로 재해석된 것이다. 그것은 근현대 사회의 권력 메카니즘의 핵심을 꿰뚫는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파놉티콘에 저항해 출현한 시놉티콘 역시 탁월하다. 그 둘 모두 현대 사회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보는 훌륭한 후레시들이자 실제로 돌아가는 실체들이다.
그런데 내가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른 것이다.
파놉티콘과 시놉티콘 둘 모두 옵티콘(opticon) 즉 시각과 관련되어 있다. 파놉티콘은 판(pan) + 옵티콘(opticon)이며 시놉티콘은 신(syn) + 옵티콘(opticon)이다. 전자는 ‘두루 본다’이며 후자는 ‘함께 본다’이다. 둘 모두 시각이란 패러다임과 호응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강점을 약화시키려는 뜻은 전혀 없다. 권력이 지 멋대로 시민들을 유린할 때 시민들은 자신을 방어하고 못된 권력을 저지시키는데에 놀라운 감동의 모습을 보여왔다. 질식할 듯한 상황에서의 거룩한 자유에의 행진과 빼앗길 수 없는 권리의 쟁취는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흐름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우리의 담론은 파놉티콘에서 시놉티콘으로 넘어간 다음에 혹 멈추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심하게 말하면 그릇된 시각을 올바른 시각으로 교정한 다음에 멈추어진 것은 아닐까. 그 둘 모두 시각이라는 패러다임과 연결된 사유란 사실의 의미에서 느껴지는 것은 없는 것일까.
지금껏 써온 내 에세이의 흐름 중 하나는 현대 문명에서 시각이 우리의 오감 중에 가장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각은 지나치게 과열된 정보들에 의해 폭력을 당해 피로감에 쌓여 있다. 그와 동시에 또한 바로 그런 이유에서도 시각이 폭력화되기도 한다. 시각에 너무 과부하가 걸린채 진행되는 게 현재의 우리 문명의 큰 특징이다. 그러나 인류의 문명사가 모두 그렇지는 않았다. 시각보다 청각이 중시된 문명도 있었다. 현대가 비디오 세계라면 중세는 오디오 시대라고 말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아쉽게도 책의 제목과 저자명이 생각나지 않는다. 시각, 청각을 포함한 오감을 낮게 보는 문명 내지 공동체도 있었다. 이를테면 불교 공동체에선 오온개공이라는 말을 쓴다. 그런 거시적인 맥락을 생각할 때 시각에서 시각으로의 이동은 훌륭한 담론인 동시에 뭔가를 놓칠 수도 있는 담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파놉티콘과 시놉티콘의 바깥으로 마음이 갔다.
권력이 장난치는 거나 그런 권력에 대해 장난치지 말라고 노려보는 눈. 그 후자는 전자가 깔아놓은 판 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자가 깔아놓은 판 자체를 날려버릴 태풍까진 아니다. 전자의 모델을 빌려 전자의 횡포에 응징하는 것이다. 새로운 디자인은 나오지 않는다. 주어진 모델에 내용물만 정반대로 바꾼 것이다.
독일에서 히틀러의 파시즘이 폭력을 휘두르던 시절에 빼놓을 수 없는 사상가 한 명이 한나 아렌트이다. 그녀는 전체주의에 대해 끝까지 저항을 하면서 그 해결책으로 사랑을 주장한다. 의외로 소박한 개념이다. 그러나 소박과 순수는 오래 간다. 가장 지속성이 있는 가치일른지도 모른다. 인간의 본질이기에 그렇다. 권력과 사랑은 인간이나 그 집단인 사회에서 핵심적인 범주들이며 이분법적으로 쉽게 정의되고 평가되는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파놉티콘이나 시놉티콘은 아주 단순화시키면 눈빛과 눈빛의 싸움이다. 정확하게는 눈빛의 부재와 눈빛의 싸움이다. 그 양쪽은 모두 감시와 재감시 등등으로 차갑게 빛난다.

이에 반해 사랑하는 사람들 간의 눈빛은 전혀 다르다. 양자 간에 감시 따윈 없다. 사랑만이 흐른다. 눈빛에서 감시의 긴장을 빼면 달라진다. 별빛처럼 되고 음악처럼 된다. 또한 명상의 세계에선 눈을 감는다. 시선이 외부에서 내면으로 향하는 것이다.
이런 세계를 바탕으로 그 이상에 대해 적어도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파놉티콘. 시놉티콘 그 두 개를 둘러싼 맥락 바깥을 보여주기에 권력놀음하는 짓거리나 그에 저항한 정의로운 몸짓을 포함한 더욱 큰 그림, 초원이나 바다, 하늘마저 바라보게 하는 상상력이 제공될 수 있다. 상상력은 당장엔 힘이 없을 수는 있어도 언젠가 놀라운 것을 창출할 때의 씨앗이기도 할 것이다. 또한 파놉티콘에 대항하는 시놉티콘 역시 유한성과 한계를 지닌 인간이 개재될 수밖에 없는 바 문제를 띨 수 있다. 가령 불의의 권력에 저항함에도 그 스스로도 어느 순간 페쇄성이 생기거나 폭력성을 띨 수도 있게 된다. 그릇된 보수의 진영 논리에 저항하는 시놉티콘적 성격의 운동에서도 그와 똑같은 진영 논리가 발견되곤 하는 등등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맹점에 대해 파놉티콘이나 시놉티콘의 바깥으로 사유의 폭을 확장하게 되면 가령 시각 너머 청각에 마음을 기울일 경우 경청이라는 가치를 품을 수 있게 된다. 타자의 모순 뿐 아니라 그것을 질타할 때의 자아의 모순에도 가만히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도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세계에 파놉티콘과 시놉티콘의 팽팽한 싸움들이 행해진다. 그것들을 그 바깥의 다른 눈들로도 바라본다면 사태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담론도 더욱 풍성해짐으로서 새로운 길이 열릴 가능성도 있고 우리가 속한 문명 너머도 꿈꿀 수 있는 자유의 사색자가 될 수도 있다.

이명훈(소설 ‘작약도’ 저자)

CES 2025 참관단 모집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여론조사] '헌법' 개정해야 한다 58.3% [서울=뉴스핌] 이바름 기자 = 국민 10명 중 5명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담은 헌법 개정 이후 37년간 유지돼 온 우리나라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한 여론조사 결과가 28일 나왔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5일~26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ARS 조사 결과 '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응답이 58.3%,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26.2%, '잘모름'은 15.5%로 나타났다. 지지정당별로 보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은 82.0%가 '개정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잘모름'이 10.5%,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7.6%였다. 국민의힘 지지자들 가운데서는 '개정할 필요가 없다'가 55.4%, '개정해야 한다' 27.0%, '잘모름'은 17.6%로 조사됐다. 조국혁신당 지지자들은 '개정해야 한다' 86.8%, '개정할 필요가 없다' 7.1%, '잘모름' 6.2%였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정해야 한다' 56.2%, '잘모름' 22.7%, '개정할 필요가 없다' 21.0%로 집계됐다. 진보당 지지자들은 '개정할 필요가 없다' 45.5%, '개정해야 한다' 35.6%, '잘모름' 18.8%였다. 무당층은 '개정해야 한다' 59.1%, '잘모름' 26.1%, '개정할 필요가 없다' 14.8%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보면 광주·전남·전북에서 헌법 개정 의지가 강했다. 광주·전남·전북은 69.2%가 '개정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21.2%, '잘모름'은 9.6%였다. 이어 강원·제주는 '개정해야 한다' 63.2%, '잘모름' 22.8%, '개정할 필요가 없다' 14.1%였다. 부산·울산·경남도 '개정해야 한다'가 62.2%로 과반을 차지했다.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24.2%, '잘모름'은 13.6%로 조사됐다. 경기·인천은 '개정해야 한다' 61.1%, '개정할 필요가 없다' 24.5%, '잘모름' 14.4%로 응답했다. 서울은 '개정해야 한다' 57.4%, '개정할 필요가 없다' 27.0%, '잘모름' 15.5%였다. 대전·충청·세종은 '개정해야 한다' 46.4%, '개정할 필요가 없다' 29.8%, '잘모름' 23.8%로 답변했다. 전국에서 헌법 개정 필요성 응답 비율이 가장 낮은 곳은 대구·경북으로 '개정해야 한다' 44.9%, '개정할 필요가 없다' 39.6%, '잘모름' 15.5%로 조사됐다. 연령별로 보면 중장년층에서 헌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했다. 40대는 68.8%가 '개정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16.2%, '잘모름'은 15.0%였다. 60대는 64.0%가 '개정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26.3%, '잘모름'은 9.7%로 집계됐다. 50대는 '개정해야 한다' 62.7%, '개정할 필요가 없다' 22.8%, '잘모름' 14.5% 순이었다. 30대는 '개정해야 한다' 55.3%, '개정할 필요가 없다' 31.8%, '잘모름' 12.9%로 답변했다. 만18~29세는 '개정해야 한다' 53.1%, '개정할 필요가 없다' 27.4%, '잘모름' 19.5%였다. 70대 이상은 '개정해야 한다' 41.5% '개정할 필요가 없다' 36%, '잘모름' 22.5%로 전 연령 가운데 유일하게 '개정해야 한다'가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 국정 지지별로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자 중 74.9%가 '개정해야 한다'고 답변했으며 '잘모름'은 13.3%,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11.9%로 나타났다. 반면 '잘하고 있다'는 응답자 중에서는 62.5%가 '개정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으며 '개정해야 한다' 18.8%, '잘모름' 18.7%였다. 성별로는 남성은 '개정해야 한다' 65.8%, '개정할 필요가 없다' 29.5%, '잘모름' 15.5%로 조사됐다. 여성은 '개정해야 한다' 50.9%, '개정할 필요가 없다' 29.5%, '잘모름' 19.6%로 나타났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흔히 '1987년 체제'로 불리는 현행 헌법은 40년 가량 시간이 흐르면서 승자독식과 패권정치의 극심한 부작용으로 인해 개헌에 대한 정치권과 국민적 공감대가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김 대표는 "보수와 진보 지지층에서 헌법개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 향후 헌법 개정 논의시 상당한 진통을 겪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결과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할당 추출 방식으로 추출된 표본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응답률은 3.5%, 신뢰수준은 95%, 표본 오차는 ±3.1%p다. 통계보정은 2024년 1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 값을 부여(셀가중)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right@newspim.com 2024-11-28 06:00
사진
[여론조사] 尹지지율 0.9%p↑, 27.8% [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해 20%대 중후반을 기록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28일 발표됐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의뢰로 여론조사 전문업체 미디어리서치가 지난 25일~26일 이틀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에게 물은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평가는 27.8%로 집계됐다. 부정평가는 69.8%로 나타났다. '잘 모름'에 답한 비율은 2.4%다. 긍정평가는 지난 조사에 비해 0.9%포인트(p) 상승했고 부정평가는 1.7%p 하락했다.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간 격차는 42.0%p다. 연령별로 보면 40대에서 긍정평가와 부정평가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만 18세~29세에서 '잘함'은 21.4% '잘 못함' 76.8%였고, 30대에서는 '잘함' 29.5% '잘 못함' 68.3%였다. 40대는 '잘함' 16.2% '잘 못함' 83.0%, 50대는 '잘함' 23.6% '잘 못함' 74.6%로 집계됐다. 60대는 '잘함' 31.8% '잘 못함' 65.9%였고, 70대 이상에서는 '잘함' 48.4% '잘 못함' 45.1%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잘함' 23.9%, '잘 못함'은 73.8%로 집계됐다. 경기·인천 '잘함' 26.0% '잘 못함' 72.8%, 대전·충청·세종 '잘함' 29.8% '잘 못함' 63.6%, 강원·제주 '잘함' 15.4% '잘 못함' 82.1%로 조사됐다. 부산·울산·경남 '잘함' 28.6% '잘 못함' 68.7%, 대구·경북은 '잘함' 47.8% '잘 못함' 49.1%로 집계됐다. 전남·광주·전북은 '잘함' 22.9% '잘 못함' 75.9%로 나타났다. 성별로도 남녀 모두 부정평가가 우세했다. 남성은 '잘함' 23.5% '잘 못함' 74.9%, 여성은 '잘함' 32.1% '잘 못함' 64.6%였다. 김대은 미디어리서치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의 인적쇄신 약속과 APEC·G20 정상외교 활약,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위반 1심 판결(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때문에 보수층 중심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며 "하지만 윤 대통령의 지지율 30% 회복 여부는 국민 눈높이에 맞는 쇄신 인사들의 기용 여부와 김건희 여사 특검 여부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며 야권은 김건희 여사 특검·채 상병 사건 관련 국정조사 등 정치적 반격을 노리고 있어 윤 대통령 지지율 상승세 유지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재권 부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변화하려는 의지를 형식적으로나마 보여준 게 보수층 결집 효과가 있는 것 같다"며 "(지지율이) 조금 더 오를 수도 있었는데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 무죄 판결 때문에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할당 추출 방식으로 추출된 표본을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100%) ARS 전화조사 방식으로 실시했으며 응답률은 3.5%,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다. 통계보정은 2024년 1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 값을 부여(셀가중)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parksj@newspim.com 2024-11-28 06:0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