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문화·연예일반

속보

더보기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푸시킨

기사입력 : 2017년08월17일 11:09

최종수정 : 2017년08월17일 11:09

예술보다 사랑, 사랑보다 예술(4)

푸시킨의 고향, 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 <사진=이철환>

19세기 러시아는 최악의 전제정치와 농노제의 유산,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봉기 등으로 숨 가쁘게 요동치던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표트르 대제 이래의 서구화 정책과 프랑스 혁명 등을 통해 유럽의 진보사상과 사조가 물밀듯이 밀려들어 왔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폴레옹의 침입에 맞서 싸우면서 민족의식이 크게 고양됐고, 지식인들은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당시 러시아에는 사치와 향락에 찌든 황실과 귀족사회 그리고 이들에게 수탈당하는 민중들과 농노의 비참한 현실이라는 두 개의 사회가 존재했다. 이러한 모순된 사회체제에 갈등하던 젊은이들은 새로운 조국을 만들기 위해 혁명을 일으켰고 목숨을 바쳤다.

그런 가운데서도 러시아인들은 문학·예술·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문화의 꽃을 피워내었다. 그것은 실로 시대정신의 소산이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은 푸시킨과 고골리, 투르게네프,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체호프로 맥을 이어가면서 그 황금기를 구가한다. 특히 이 시기의 러시아 문학은 사회현실을 농도 짙게 반영하는 독특한 리얼리즘 문학으로서 세계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푸시킨도 이 시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푸시킨의 작품세계는 도스토예프스키가 평가했듯 모든 것을 포용한 보편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는 시·소설·희곡·평론·기행문·역사물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작품을 썼으며, 운문소설이란 새로운 장르를 창안해 내었다. 더욱이 작품마다 해당 장르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작품성이 뛰어나다. 또한 그의 작품에는 전통적인 고전주의와 서구적 낭만주의, 그리고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풍토로 자리 잡게 된 사실주의의 요체가 녹아 있다.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Aleksandr Sergeevich Pushkin, 1799~1837)은 1799년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향락과 사치에 빠져 살던 부모는 아이들의 교육을 프랑스인 가정교사에게 맡겨 놓은 채 별 관심이 없었다. 푸시킨은 성격이 급하고 게을렀으나 상상력이 무척 탁월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서재에서 문학과 철학 서적을 탐독한 그는 6년간 유서 깊은 귀족학교 리쩨이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리쩨이는 알렉산드르 1세가 황실과 귀족 출신의 자녀들을 나라의 간성으로 키우기 위해 세운 학교였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외국 유학파 교수들의 혁신적인 교육에 영향을 받아 반체제 인사로 성장했는데 푸시킨도 그중 하나였다.

1817년 리쩨이를 졸업한 푸시킨은 수도 페테르부르크의 외무성에서 근무하게 되는데, 다른 귀족 자제들처럼 음주와 여색 등 향락에 빠져 무절제하고 방탕한 나날을 보낸다. 이때 쓴 시들은 주로 사랑·우정·기쁨 등을 주제로 한 서정시들이었지만, 진보적인 청년귀족들과 교제하게 되면서부터 점차 조국과 민중에 대한 사랑을 시에 담았고 자유가 중심주제로 떠올랐다. 특히 청년혁명단체 '데카브리스트(Dekabrist)' 와 어울려 전제정치를 공격하는 시를 쓰기도 했다.

1817년 자유를 찬미하는 송시 '자유'와 1819년 농노제 붕괴를 예언한 '농촌' 등 일련의 과격한 정치적 작품을 발표하면서 푸시킨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불온시인'으로 낙인찍히게 된다. 이후 시적 독창성이 뛰어나고 낭만주의의 도래를 예고한 장편 서사시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출간하여 젊은 세대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지만, 1820년 결국 남러시아로 추방된다. 시골에 추방당해 있던 덕분에 데카브리스트 반란에 연루되는 것을 면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니콜라이 황제가 즉위한 후 사면을 받아 몸은 자유로워지게 되었지만, 죽을 때까지 비밀경찰의 엄격한 감시와 검열을 받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이 유배생활은 그에게 폭넓은 독서를 통해 문학적 영감을 키우고 작품 활동에 전념케 하는 기간이 되었다. 특히 남러시아 카프카즈의 이국적인 분위기에 젖으면서 새로운 시적 영감을 얻었으며,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에 빠짐으로써 소위 푸시킨의 '바이런 시대'가 열리게 된다.

한편, 1823년에는 요주의 인물로 지목되어 흑해의 항구 도시 오데사로 다시 이송된다. 거기서 그는 러시아 문학사상 최초의 리얼리즘 작품인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Evgeny Onegin)'을 쓰기 시작했다. 또 어머니의 영지가 있는 미하일로프스코예에서 연금 상태로 머물 때는 셰익스피어에 깊이 빠져 비극 시 '보리스 고두노프'와 풍자적 서사시 '누린백작' 등을 완성한다. 이후 '예브게니 오네긴'의 초고가 완성되고, '엘레지', '잠 안 오는 밤에 쓴 시', '벨킨 이야기' 등의 서정시와 산문이 쏟아져 나왔다.

푸시킨은 1831년 근 10년간에 걸쳐 쓴 역작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한다. 일견 통속소설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작품은 귀족청년 오네긴의 생활상을 통해 1820년대 당시 러시아 귀족사회의 방탕과 무기력을 폭로하였다. 아울러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려 깊은 여성 타치야나의 형상을 통해 러시아의 미래와 희망을 꿈꾸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이 발표된 이후 러시아 사회에서 여주인공 타치야나는 강인한 러시아적 여인상으로, 오네긴은 부정적인 남성상의 전형으로 부각된다.

그 후로도 푸시킨은 많은 시를 썼는데, 특히 마지막 장편 서사시 '청동의 기사'는 전제적 국가권력과 소시민의 운명이 어떻게 대립 모순적 관계를 갖게 되는지를 조명하고 아울러 제정 러시아의 역사적 숙명을 제시하였다. 그는 또 "정확함과 간결함이 산문의 생명이며, 산문에는 사상이 담겨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산문에서도 많은 걸작을 남겼다. 그의 리얼리즘의 경향은 오히려 시보다는 산문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의 대표적인 산문으로는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벨킨 이야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의 원형이 된 역사소설 '대위의 딸',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소설 '스페이드의 여왕' 등이 있다. 특히 로마노프 왕조를 뒤흔든 당대 최대의 정치범을 소설 속에 형상화한 '대위의 딸'은 치밀한 구성과 간결한 문체로 푸시킨 산문 예술의 극치라는 평을 받았다.

푸시킨은 문학활동을 하는 가운데 삶에 대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여러 명언들을 남겼는데 그 중 일부를 소개한다.

“재빠른 성공은 반드시 빛이 바랜다, 가을 낙엽이 썩어 사라지는 것처럼.”
“어떠한 나이도 사랑에는 약하다. 그러나 젊고 순진한 가슴에는 사랑이 좋은 열매를 맺는다.”
“사람은 누구나 실패 앞에서는 평범하다.”
“사람이 항상 좇아야 할 것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다. 사람이 항상 좇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다.”
“두 신체가 한 곳에서 존재할 수 없듯, 두 가지의 다른 생각이 도덕의 영역에서 공존할 수는 없다.”

이처럼 푸시킨은 러시아인들에게 대문호로 추앙받아 왔지만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부인의 끊임없는 불륜행각이 그를 괴롭혔고 끝내는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러한 고뇌가 그를 더 집필활동에 전념케 하고 문학의 깊이를 더 심화시켰는지도 모를 일이다.

1828년 29세의 푸시킨은 모스크바의 한 무도회에서 16세의 미녀 나탈리야 곤차로바를 보자 넋을 잃는다. 얼굴이 라파엘로의 그림 '마돈나'처럼 생긴 나탈리야는 허영심이 많고 속물적인 여자였지만, 푸시킨은 자기의 청혼을 거절하는 그녀의 냉담함에 더 깊이 빠지고 만다. 위선적이고 천박한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겨우 약혼을 승낙 받은 푸시킨은 1831년 2월 그녀와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 가을 페테르부르크에 정착하여 연년생의 두 딸을 낳는다. 그러나 나탈리야는 남편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고 도와주기는커녕 허영과 사치에 빠진 채 러시아 사교계에서 염문을 뿌리고 다녔다. 아내 때문에 그 많던 재산이 바닥을 보이고 심지어는 귀중품을 전당포에 잡혀야 할 지경이 되었으니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 푸시킨의 고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교계의 여왕처럼 군림한 나탈리야는 한 궁정행사에서 황제의 눈에 들게 되었다. 이후 그녀의 미모에 반한 황제는 그녀를 자주 볼 수 있도록 푸시킨을 시종보에 임명한다. 시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신분이었지만 푸시킨은 그 직책을 통해 역사의식에 눈뜨게 되면서 처량한 자신의 삶을 그나마 보상받으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삶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결국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만드는 사건이 일어난다.

나탈리야가 새로운 염문을 뿌렸던 것이다. 네덜란드 공사의 양자인 프랑스 태생 단테스는 잘생긴 용모를 무기삼아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를 휘젓다가 나탈리야에까지 접근했다. 아내의 불륜을 암시하는 익명의 투서가 푸시킨과 그의 친지들에게 날아들기 시작했다. 푸시킨의 진보적인 사상을 미워한 세력가들의 음모라는 말도 있고, 나탈리야와 황제 간의 불륜을 덮어두기 위한 계책이라는 말도 있지만 푸시킨은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하게 된다.

1837년 1월 27일 낮 4시에 결투가 벌어졌고 푸시킨은 단테스의 총에 맞아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그러나 아내는 총알을 맞고 피투성이가 된 푸시킨에게로 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정부(情夫)인 단테스에게 뛰어갔다. 죽어가면서 다른 남자의 품으로 달려가는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된 그의 심정은 얼마나 비통하고 참담했을까? 결국 1837년 1월 29일, 푸시킨은 37년 8개월의 짧은 생애를 마감한다. 푸시킨은 사랑하는 여인으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다 끝내 목숨까지 잃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몸을 내던졌던 것이다.

푸시킨이 죽음을 맞이하던 순간, 그의 집 주변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민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황제는 푸시킨의 죽음을 민족적 손실로 여기고 분노하는 군중들이 시위라도 일으킬까 두려워해 장례를 조촐하게 치르도록 명령하였다. 그의 서재는 샅샅이 수색되고 의심이 드는 기록물은 모조리 압수되었다. 시인 오도예프스키는 '러시아 시의 태양이 졌다'는 추도문을 발표하여 정부의 질책을 받았고, 레르몬토프는 부패한 러시아 사교계와 궁정을 질타하는 '시인의 죽음에 부쳐'를 발표했다가 카프카즈로 유배되었다.

황실의 강압 정책에도 불구하고 푸시킨의 시와 명성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전국으로 번져나갔고, '예브게니 오네긴'은 순식간에 매진되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며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소중하게 되리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이철환 객원 편집위원 mofelee@hanmail.net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보분석원장, 한국거래소 시장감시위원장)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관세협상 쟁점…쌀·쇠고기·구글지도 [세종=뉴스핌] 최영수 선임기자 = 한미 관세협상이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오는 8일 1일까지 관세 유예기한이 연장되면서 일단 3주간 시간을 벌었다. 하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한 쟁점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앞으로의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수차례 협상에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은 결국 '비관세장벽' 때문이다. 특히 한국 측이 민감분야로 설정하고 있는 ▲쌀 시장 개방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 허용 ▲구글 정밀지도 반출 허용 등 3가지 쟁점이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제조업 협력' 카드 제시했지만…美, 농축산물 개방까지 요구 미국 정부는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에 대한 품목관세(25%)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8일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1시 20분(한국시간) 트루스소셜(Truth Social)을 통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율 및 발효일자 등이 포함된 서한을 공개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4월 2일 발표한 국가별 관세와 같은 수준이다. 협상 시한이 3주간 연장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한국 정부는 앞서 미국 측에 '제조업 협력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미국 측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측이 농축산물 등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제조업 협력' 카드만으로 협상을 진행해 왔지만, 결국 한계에 봉착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부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짧은 시간동안 국익 최우선 원칙을 갖고 치열하게 협상에 임했으나 현실적으로 모든 이슈들에 대해 합의 도출까지 시간이 부족했다"고 밝혔다. ◆ 자동차·철강 품목관세 인하 vs 농·축산물 개방 '저울질' 한미 간 몇 차례 협상에도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결국 미국 정부가 농축산물 시장까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의 정밀지도를 구글에 허용해 달라는 요구 역시 한국 정부로서는 민감한 쟁점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한국 정부의 목표는 이 같은 민감분야를 사수하면서 자동차·철강 품목관세를 경쟁국 대비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인하하는 것이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6일 협상 결과에 대해 "자동차와 철강 등 품목관세 철폐 또는 완화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오른쪽)과 제이미슨 그리어(Jamieson Greer) USTR 대표가 5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관세협상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2025.07.06 dream@newspim.com 문제는 농업계와 소관부처(농림축산식품부)를 어떻게 설득하느냐다. 과거 정부도 쌀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을 검토했다가 강한 저항에 부딪혀 보류한 바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품목관세를 완전히 철폐하는 조건이라면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산업부는 8일 미국 정부의 발표에 대해 "미국 측의 주된 관심사인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국내 제도 개선, 규제 합리화 등과 함께, 양국 간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을 통해 핵심산업 도약의 기회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한국 측의 요구대로 자동차, 철강 등 품목관세를 원하는 수준으로 인하(철폐)될 경우, 미국 측이 요구하고 있는 비관세장벽 개선에 대해서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결국 품목관세 철폐와 비관세장벽 개선 두 가지 요소를 놓고 얼마나 균형적이고 합리적이 수준으로 타결되느냐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한국 정부가 '상호호혜적이고 균형적인 협상'을 기본 원칙으로 내세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산업부는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 호혜적인 협상결과 도출을 위해 협상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dream@newspim.com 2025-07-08 11:38
사진
'어느덧 20살' 슈퍼주니어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슈퍼주니어(SUPER JUNIOR, 에스엠엔터테인먼트 소속)가 8일 정규 12집 'Super Junior25'(슈퍼주니어 이오)로 컴백했다. 이번 앨범은 슈퍼주니어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이다. 총 9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타이틀 곡은 'Express Mode'(익스프레스 모드)다. 'Express Mode'는 댄서블한 사운드와 중독적인 후렴구가 특징인 업템포 클럽 팝 곡으로, 가사에는 현재에 멈추지 않고 다음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패기 넘치는 태도를 담았다. 어느덧 20년이 된 슈퍼주니어가 컴백을 기념하여 일문일답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1. 드디어 정규 12집,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이 발매되는 소감은?- 이특: 슈퍼주니어가 20년을 함께했다. 저 역시 너무나 놀라운 시간이었는데, 이번 앨범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욱 놀라운 시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다.- 시원: 믿기지 않을 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값진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함께해 준 멤버들, 스태프들, 그리고 무엇보다 변함없이 곁을 지켜준 팬분들 덕분에 이 앨범이 더욱 의미 있게 완성될 수 있었던 것 같아 감사하다. 2. 앨범명도 특별하다. 'Super Junior05'에서 'Super Junior25'가 됐는데, 슈퍼주니어에게 있어 가장 많이 바뀐 것과 그래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희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저의 외모.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식단도 했는데…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은 이특, 은혁의 동안력과 몸무게. 둘을 보며 좋은 자극을 많이 받는다.- 예성: 정신 연령? ㅎㅎ 우리는 아직 20대 같다.- 려욱: 멤버들의 입담과 '티키타카'는 변함없는 것 같다. 대본 없이 우리끼리 카메라 하나 두고도 콘텐츠 백만 개는 나올 것 같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3. '히트곡 부자'로 유명한 만큼 타이틀 곡을 정하면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은데, 'Express Mode'가 선정된 이유가 있다면?- 예성: 다른 좋은 곡들도 많았지만 이 노래가 가장 '타이틀 곡' 같다고 느껴졌다.- 신동: 저희는 항상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지 않나, 이번에도 고민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Express Mode'를 듣자마자 다들 "이거다!" 싶었다. 슈퍼주니어다운 에너지와 재치, 그리고 요즘 감성까지 딱 잘 버무려진 곡이라, 들으면 그냥 바로 타이틀! 하는 느낌이다.- 은혁: 20주년이라는 숫자와 지금의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앞으로도 한발 한발 더 나아가겠다는 의미도 있고, 음악과 퍼포먼스도 우리를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려욱: 데모 들을 때만 해도 'Haircut'에 한 표를 던졌던 나였지만, 녹음을 하고 보니 'Express Mode'가 우리의 에너지를 잘 담고 있었고 퍼포먼스까지 멋지게 보여줄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인정하게 됐다. 4. 최근 일상에서 나를 제일 'Express Mode'로 설레게 혹은 달리게 만드는 것은?- 희철: 반려견 기복이 산책.(웃음) 기복이 활동량이 상당해서 하루에 몇 번씩 산책을 하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아주 난리도 아니다. 기복이가 저를 미친 듯이 달리게 만든다.- 예성: E.L.F.들과 어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저를 'Express Mode'로 달리게 만든다. 우리 더 가까워지자!- 려욱: 노래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E.L.F.들에게 멋진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하루빨리 콘서트로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다.- 규현: 퇴근 후 접속하는 '33 원정대'.(웃음) 오랜만에 빠지게 된 게임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5. 타이틀 곡 'Express Mode' 퍼포먼스, 준비하면서 어렵지는 않았는지?- 예성: 디스크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 안무가 좋아서 더 열심히 했다.- 신동: 솔직히… 좀 힘들었다. 하하! 퍼포먼스가 진짜 'Express Mode'로 달려야 해서, 예전처럼 체력으로만 밀어붙이긴 어렵더라. 대신 디테일한 표현, 팀워크를 더 살리려고 노력했다. 근데 또 무대 올라가면 신기하게 힘이 난다. E.L.F. 앞이라 그런가 보다.- 은혁: 멤버들 모두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잘 준비했다. 그래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웃음) 6. 앨범 콘셉트인 'SUPER AWARDS'처럼 서로에게 주고 싶은 상 이름을 직접 정해본다면?- 신동: 은혁이한테 '몸이 한 개로 부족했상'을 주고 싶다. 안무 짜랴, 디렉팅 보랴, 촬영 챙기랴… 진짜 슈퍼 히어로다. 그리고 희철이 형한테는 '말은 많았지만 행동도 많았상', 은근히 뒤에서 멤버들 챙기고 조용히 마음 써준 거 다 알고 있다. 나머지 멤버들에겐? '아직도 이렇게 잘생겼상' 드린다. 왜냐면… 정말 아직도 잘생겼으니까.(웃음)- 려욱: '너네가 짱이야 상' 7. 지난 20주년을 돌아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지?- 시원: 나이가 드는지 데뷔 무대가 갑자기 기억이 난다.- 려욱: 데뷔했던 순간이 제일 마음에 와 닿는다.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를 떠다니듯 춤추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꺼진 마이크에 크게 목놓아 부른 'Twins'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규현: 'SUPER SHOW' 투어를 다닐 때인 것 같다. 어느새 너무 오랜 시간 공연을 해와서 기억도 뒤죽박죽이긴 하지만 역시 남는 건 벅차게 느꼈던 공연 순간의 감동이다. [서울=뉴스핌] 오광수 문화전문기자 = 데뷔 20주년을 맞은 슈퍼주니어. [사진= SM엔터테인먼트] 2025.07.08 oks34@newspim.com 8. 슈퍼주니어하면 콘서트도 빼놓을 수 없는데, 'SUPER SHOW 10' 투어가 곧 시작된다. 200회 공연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 새롭게 세워보고 싶은 기록이 있다면?- 이특: 숫자에 대한 기록이라면 300회, 400회, 계속해서 새로운 숫자를 써 나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렀을 때 'SUPER SHOW'가 더욱 다양한 콘텐츠로 새롭게 재탄생하기를 바라본다.- 예성: 기록에 대해선 큰 생각은 없지만 하다 보니 200회 공연이 되다니 신기하다. 벌써 우리가 이렇게 오래 공연을 하고 있다니!- 려욱: 300회까지 가면 좋을 것 같다. 슈퍼주니어 멤버들과 관객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쌓일수록 그 횟수가 어떻든 행복할 것 같다.- 규현: 가보지 못했던 곳들도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 세계에 E.L.F.가 살게 되는 기록도 꿈꿔본다! 9. 슈퍼주니어에게 붙는 수식어가 많은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앞으로 어떤 수식어를 더 만들어가고 싶은지?- 은혁: 너무 거창한 수식어들은 솔직히 좀 민망하고 쑥스러운 것 같다. 그냥… '수식어가 필요 없는 그룹' 슈퍼주니어라는 표현이 가장 좋지 않을까?- 려욱: '한류 광개토대왕'이 제일 좋다. 어렸을 때 광개토대왕을 좋아해서 그런지 몰라도… 내 마음에 콕 박힌다. 10. 이번 앨범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희철: 이제 우리가 무슨 바라는 목표가 있겠나… 무탈히 즐겁게 활동 잘 마치길 바란다. 사랑한다 멤버들아!! 건강하자!!- 예성: 활동 끝까지 무사히 잘 해내고 싶다. 즐겁고 행복하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다.- 시원: 이번 앨범은 단순한 앨범이 아니라, 저희가 걸어온 20년의 시간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여정이 누군가에겐 시작점의 작은 용기나 희망이 되고, 후배들에게는 '이렇게 꾸준히, 진심으로 해 나가면 가능하구나'라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한다. 11. 20년 동안 슈퍼주니어를 지켜준 E.L.F.에게 한 마디- 이특: 한결같이 우리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E.L.F.! 이제는 우리가 받았던 사랑을 돌려주고,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 늘 고맙고 사랑한다!- 동해: E.L.F.가 없었다면 모든 것이 불가능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하늘에 햇빛이 없고 물을 주지 않으면 시들듯이, 우리는 E.L.F.라는 존재가 없으면 내일 당장 시들어 버릴 거다. E.L.F.에게 너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진심으로 사랑해!- 려욱: 우리와 함께해 준 영원한 친구 E.L.F.들 정말 고마워.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 내 인생에 큰 선물이고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어. 20주년 너무 감사하고 우리 앞으로 함께하자. 사랑해. 슈퍼주니어는 8월부터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 'SUPER SHOW 10'(슈퍼쇼 10)에 돌입한다. 투어의 막을 올리는 서울 공연은 8월 22~24일 올림픽공원 KSPO DOME에서 개최된다. 또한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9월 홍콩, 자카르타, 10월 마닐라, 멕시코시티, 몬테레이, 리마, 산티아고, 11월 타이베이, 방콕, 12월 나고야, 2026년 1월 싱가포르, 마카오, 쿠알라룸푸르, 가오슝, 3월 사이타마까지 슈퍼주니어는 전 세계 16개 지역에서 투어를 이어가며 '레전드 공연킹'다운 면모를 보여주고 20주년을 화려하게 마무리할 전망이다. oks34@newspim.com 2025-07-08 13:40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