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운구 포르부, 스페인, 2013. ⓒ강운구 |
[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 지난 2013년, 사진가 강운구(Kang WoonGu)는 스페인 북동쪽의 국경도시 포르부(PortBou)를 찾았다. 프랑스와 면한 카탈루냐의 작은 항구를 찾은 것은 철학자 발터 벤야민(1892-1940)을 추모하는 조형물 때문이었다.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대니 카라반이 만든 벤야민 추모비가 한국의 사진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기잡이를 하는 트롤어선의 기착지인 포르부는 벤야민이 최후를 맞았던 곳이다. 유대계 철학자이자 평론가로 파리에 머물던 벤야민은 나치의 추적을 피해 피레네산맥을 넘었다. 병약한 몸으로 간신히 국경을 넘은 그는 미국으로의 탈출을 꿈꿨으나 포르부 경찰서장으로부터 ‘곧 게슈타포에게 넘겨질 것’이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좌절한 벤야민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포르부 여관방에 남겨진 그의 가방에는 통로(Passage)를 천착한 미완성 유고 ‘파사젠베르크’(Passagenwerk)와 모르핀이 들어 있었다.
관습을 뛰어넘는 논문과 시대를 앞서간 비평을 내놓았지만 비극적 최후를 맞은 천재를 위해 이스라엘 출신의 아티스트 대니 카라반은 포르부 해안절벽에 ‘통로’라는 조형물을 만들었다. 벤야민 타계 50주년을 기념해 헌정된 추모비는 쇠로 된 긴 통로가 해변에 꽂히도록 설계됐다. 공간및 인물의 역사성에 기반한 ‘장소특정적 작업’을 해온 카라반은 33개의 가파른 계단이 바다를 향해 강하하다가, 유리와 맞닥뜨리도록 했다. 꽉 막힌 출구는 벤야민의 최후를 반영한 것이다,
이 드라마틱한 조형물은 방문객들로 하여금 카메라를 절로 들게 만든다. 강운구도 이를 촬영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고, 카라반의 긴 통로와 푸른 지중해를 절묘한 구도로 포착해냈다. 길게 수직강하하는 좌우의 녹슨 철판은 서로 그림자를 만들고, 좁은 계단에는 저 멀리 지중해의 물빛이 어른거린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화면의 소실점에 해당되는 바닷가 유리창에, 사진가 자신의 그림자가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사람의 그림자가 아로새겨지면서 이 사진은 더욱 특별한 사진이 됐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곳이지만, 아무나 찍을 수 없는 사진이 된 것이다.
포르부 사진을 비롯해 2009년 이후 작업한 사진 140점을 모아 강운구가 작품전을 꾸렸다. 작가는 한미사진미술관(관장 송영숙)에서 ‘강운구 네모 그림자’라는 타이틀로 오는 11월25일까지 전시를 연다.
강운구는 세계성, 국제성이라는 미명 아래 국적 불명의 사진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이 땅의 정체성을 담은 사진을 선보여왔다. 외국의 사진이론을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 ‘작가주의적 사진’을 추구해온 그는 지난 2008년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저녁에’라는 타이틀로 개인전을 가진 이래 9년 만에 개인전을 열게 됐다.
작가는 몇해 전부터 ‘이 땅에서 사진가로서의 의무복무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짐을 벗고나니 사진이 재밌어졌고, 특히 디지털 사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50년간 아나로그 사진을 고집했던 그는 이제 아나로그와 디지털의 경계가 무의미하다고 선언했다. 필카(필름카메라), 디카, 폰카를 넘나들며 작업하기 시작한 것. 강운구는 “많은 후배들과 잘 아는 사진가들이 내가 아나로그 사진의 순교자가 되길 은근히 바란 듯하지만, 나도 그만 스마트폰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번 사진전에는 그가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과 아나로그 방식으로 찍은 사진들이 다양하게 혼재돼 있다. 그런데 어떤 사진이 필카 사진인지, 어떤 사진이 폰카 사진인지 식별이 불가능하다.
강운구 보성, 전라남도, 2011. ⓒ강운구 |
또한 이번 전시는 ‘네모 그림자’라는 제목답게 ‘네모’와 ‘그림자’를 차곡차곡 담은 다양한 사진들이 출품됐다. 도시 이곳저곳, 특히 오래된 전통가옥에는 사각의 벽이 마치 캔버스처럼 남아 있는데, 그 벽에 아른아른 투영된 나무그림자를 강운구는 한 편의 시(詩)처럼 포착해냈다. 그 단아하고 서정적인 미감은 조선시대 문인화와 사군자를 보는 듯하다.
오랫동안 빛과 그림자를 천착해온 작가는 근래들어 그림자를 사진 속에 더욱 열심히 담고 있다. 특히 작가 스스로의 그림자를 사진에 담고 있어 이채롭다. 이에 대해 ”그림자는 시간을 따라 자동인 듯이 슬슬 기며 달라지다가 어떤 순간에 갑자기 사라진다. 그런 덧없는 그림자를 네모난 틀(프레임)에 담으려고 나는 내 그림자를 끌며, 틀(카메라)을 들거나 메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어떤 그림자가 느낌을 주거나 말을 할 때 그것을 알아채고 주저 없이 틀에 가두는 게 사진가가 하는 일이다”라고 했다.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소신만을 포착해온 강운구는 요즘들어 한결 열린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땅 뿐 아니라 온 세상의 네모와 그림자를 흑백, 컬러, 아날로그, 그리고 (한동안 수용하지 않던) 디지털 사진들로 펼쳐보이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형식과 색을 자유롭게 넘나들지만 그의 사진은 일관된 맥을 견지한다. 그것은 말로, 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를 사각의 화면에 반듯하고 진솔하게 담아내는 것이다. 과장하거나 만들지않고, 대상의 본질을, 그 핵심을 ‘가장 사진다운 사진으로’ 온전하게 포착하는 것, 이는 지금까지 강운구가 추구해왔고 앞으로도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다.
[뉴스핌 Newspim] 이영란 편집위원 art2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