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교역여건에 경제성장 좌우...'안정적' 보긴 힘들어
통화정책방향, 여러 변수 고려한 후에 추가 인상할 듯
[뉴스핌=허정인 기자] 복수의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신중한 금리 인상을 강조했다. 통화정책방향을 전환했지만 그 속도는 완만해질 것이라는 걸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즉,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 시기도 여건에 따라 내년 하반기 이후로 늦춰질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 경기가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반도체 수출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고, 이러한 수출성과가 민간소비와 노동시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어서다.
수출용 컨테이너 모습 <사진=뉴시스>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30일 기준금리 인상을 결정한 후 “향후 성장과 물가의 흐름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완화 정도의 추가 조정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채권시장은 ‘신중히’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이 총재는 “액면 그대로 신중히 하겠다는 것”이라며 “정책방향을 완화 정도의 축소로 잡았지만 고려할 요인이 아주 많다”고 부연 설명했다. 경기, 물가를 중시해서 보지만 국제 경제 여건의 변화,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성이 높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신중히 수행하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 금통위원은 “금통위 전체의 스탠스가 반영된 ('신중히' 라는)단어”라고 말했다. 기자간담회 발언을 정리할 때, 금통위원 모두의 의견이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3.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의 발언에 의하면 내년 역시 잠재성장률 수준인 3% 내외의 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경제성장의 대부분을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달 1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수출의 부가가치 및 일감 유발효과'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동안 재화 수출은 우리나라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에 71.0% 기여했다. 특히 수출이 급증(24.0%)한 3분기의 실질 GDP 성장에 대한 기여도는 94.8%에 달했다.
수출은 글로벌 교역요건에 따라 좌우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리스크, 중국과의 교역환경 변화, 북핵 문제, 국제유가, 환율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우리나라 성장률도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더해 수출의 열매가 민간소비와 고용시장으로 스며들지 않고 있다. 한국은행이 이달 1일 발표한 ‘2017년 3분기 국민소득(잠정)’에 따르면 3분기 성장률(1.5%) 중에서 내수는 0.7%p 기여했다. 여기서 정부 기여도를 제거하면 민간소비 기여도는 0.4%p에 불과하다.
10월 고용률은 61.3%로(통계청, 10월 고용동향 자료) 같은 기간 OECD 국가의 고용률(66.9%)보다 낮다. 이 상황에서 현재 취업자의 대부분이 자본집약적 산업에 몰려있다. 전체 취업자를 100으로 놓고 산업별로 살펴보면 제조업이 16.6%로 구성비가 가장 높고, 노동집약적인 숙박 및 음식점업은 5.2%로 낮다. 국내 고용시장도 국제 교역여건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30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삼성본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금통위원들 역시 이 같은 맥락에서 우리 경제를 바라보고 있다. 10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두 번째로 의견을 개진한 위원은 “경기개선에도 불구하고 내수 및 고용시장 회복에 따른 수요측면의 물가상승압력은 물가수준 목표달성을 확신하기에 충분히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과 설비투자 확대가 일부 제조업(반도체)에 편중됨에 따라 GDP 개선에도 불구하고 회복세는 견조하지 못한 모습”이라며 “글로벌 경기개선이 내수 및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지속성을 더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다섯 번째로 의견을 밝힌 위원은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수출부문과는 달리 민간소비의 회복세가 확실해질지, 이에 따른 체감경기 및 고용 측면의 영향에 대해 추가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며 “교역여건 악화, 가계부채 문제 등 여러 불확실성이 경제회복에 어떤 영향을 줄 지 더 모니터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하면 추가 금리인상 시기는 내년 1분기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 GDP갭이 이미 플러스로 전환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는 이일형 금통위원, 소폭의 마이너스 GDP갭이 조만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는 금통위원(10월 의사록 세 번째)을 제외하고 나머지 위원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의견을 개진한 금통위원은 실질중립금리 하락을 근거로 기준금리 인상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물가상승 압력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통화정책 전환속도가 완만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완화적 인상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이와 관련해 앞선 위원과 다른 위원은 “본래 성장세를 고려하면 내년 초 인상이 적합할 것으로 봤으나, 현 통화정책을 그대로 유지하면 가계부채 증가 등 금융안정이 저해될 것으로 보고 시점을 앞당겼다”며 “(연달아 인상하는)긴축기조로 접어들만큼 경기가 회복됐다고 보진 않는다”면서 11월 금리인상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5월 '사실상 인하'를 주장한 위원인 것으로 추정된다.
[뉴스핌 Newspim] 허정인 기자 (jeongi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