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문화·연예 스타

속보

더보기

[스타톡] '치인트' 오연서 "실제 저요? 답답한 건 못참아요"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뉴스핌=장주연 기자] 훤칠한 키, 부드러운 미소, 따뜻한 성격. 모두가 그렇듯 처음에는 그냥 좋은 선배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선배 유독 나에게만 쌀쌀맞고 차갑다. 우연히 들은 엿들은 통화는 귀를 의심하게 만든다. 멀리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여겼다. 그래서 피했다. 그랬더니 이제 다가온다. 냉정하게 굴 때는 언제고, 조별 숙제를 같이하자더니 급기야 데이트 신청을 한다. 머리는 그를 밀어내라고 하는데 어째 마음은 계속 선배를 향한다.

배우 오연서(31)가 영화 ‘치즈인더트랩’을 선보였다. 순끼의 동명 웹툰을 스크린에 옮긴 이 영화는 모든 게 완벽하지만 베일에 싸인 선배 유정과 평범하지만 매력 넘치는 여대생 홍설의 두근두근하고 아슬아슬한 사랑 이야기를 담은 로맨스릴러. 극중 오연서는 여주인공 홍설을 연기했다.

“제 인생 마지막 캠퍼스 물이라는 마음으로(웃음) 욕심을 좀 냈어요. 또 때마침 영화도 하고 싶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제 시점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도 좋았죠. 출연을 결정하고는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나눴어요. 원작의 홍설도 좋지만, 저만의 홍설을 표현하길 원하셨고 그러려고 노력했죠.”

말뿐만이 아니다. 오연서는 홍설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려 애썼다. 그 결과 영화 속 홍설은 원작을 보고 상상했던, 혹은 드라마(‘치즈인더트랩’은 지난 2016년 tvN 드라마로 방송된 바 있다) 속 김고은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리액션을 가장 저답게 했어요. 또 그간 제가 했던 캐릭터들이 입체적이었다면, 홍설은 입체적이기보다 내면을 이야기하는 캐릭터라서 그 점을 잘 살리고자 했죠. 영화 특성상 편집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최대한 다른 인물을 만날 때마다 다르게 연기했어요. 유정을 대할 때, 인호를 대할 때, 친구들을 대할 때마다 차이를 뒀죠.”

반면 싱크로율은 원작과 100% 일치한다. 알다시피 오연서는 웹툰이 연재될 때부터 가상 캐스팅 1순위 배우로 꼽혀왔다. ‘치즈인더트랩’ 영화화 소식이 알려진 후 원작 팬들이 반색한 이유 중 하나도 오연서의 출연이었다.

“저도 인터넷을 하니까 알긴 했죠(웃음). 좋았어요. 만화 캐릭터를 닮았다고 하니까. 물론 이렇게 홍설과 만날지는 예상을 못했지만요. 아무래도 눈매가 닮아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듯하죠. 거기다 헤어스타일까지 똑같이 하니까 더 비슷하다고 해주신 거 같고요. 그래서 홍설의 외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다만 20대 초반을 연기하는 게 스트레스였죠(웃음).”

외적인 부분과 달리 성격은 홍설과 다른 부분이 많다고 했다. 실제 오연서는 홍설만큼 주위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편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고 쌓아두는 스타일도 아니다.

“비슷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혼자 생각이 많은 편이라는 거? 근데 대부분 달라요. 말을 하려다가도 못하고 망설이는 것부터요. 전 피하지 않고 다 이야기하는 편이죠. 답답한 걸 못 참거든요. 눈썰미도 없어요. 이상하게 가끔 촉 같은 게 올 때도 있지만(웃음), 대체로 무딘 편이죠. 워낙 많은 사람과 일하는 터라 자연스럽게 관찰을 하지 않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차기작은 미정이다. 20부작 tvN 드라마 ‘화유기’를 마치자마자 영화 홍보에 투입된 탓에 당장은 쉬고 싶은 마음이 크다.

“우선 집에서 쉬고 싶죠. 잠도 많이 자고 못 봤던 드라마도 보면서요. 제가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생활을 지향하거든요(웃음).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보다 안에서 저를 돌보는 시간을 조금 가지고 싶죠. 운동도 시작해볼까 해요. 다이어트가 아닌 체력 증진을 위해서요. 그렇게 내면도 체력도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을 갖고 나면 천천히 여행도 떠날까 하죠. 물론 그사이에 좋은 작품을 만나면 또 어떻게 계획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뉴스핌 Newspim] 장주연 기자 (jjy333jjy@newspim.com) <사진=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관련키워드]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또 다른 제6사 사장 김일성의 출현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동북항일연군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이 1937년 11월 13일 사살된 이후부터 한동안 이 부대에 대한 동향이 파악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38년 봄부터 갑자기 새로운 김일성(金日成)의 움직임이 일본 경찰 정보망에 잡혔다. 신임 제6사 사장 역시 소련으로부터 파견돼 온 자였다. 그는 소련 지령으로 전임자 김일성(金日成)의 이름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후임 제6사 사장 김일성(金日成)은 1939년 봄에 사(師)를 묶어서 방면군(方面軍)으로 편제를 변경하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1로군 제2방면군장(方面軍長)이 되었다. 소련은 중일전쟁 발발 후, 일본이 소련을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동북항일연군에 적극적인 군사 지원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소련군 내 한국·중국인 군관들에게 유격 전술을 교육하여 파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신임 제6사(제6사는 동북항일연군 제3차 개편 때 제2방면군이 된 부대) 사장으로 취임한 김일성(金日成)은 본명이 김일성(金一星)이다. 김성주 별호와 같다. 그는 1930년 5월 30일 간도 폭동 사건 때 용정에 있었던 한인이 다니는 대성중학교 학생이었다. 이날 밤(1930년 5월 30일) 김일성(金一星)은 용정역 기관차에 불을 지르는 등의 행위로 일본 경찰에 붙잡혔으나, 서울로 압송되기 전 탈출에 성공했다. 그 후 소련으로 건너가 적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소련 공산당 지령에 따라 1938년 동북항일연군으로 파견돼 온 것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1938년 4월 26일 밤 제2방면군은 평안북도 후창(厚昌) 경찰서 부흥(富興) 주재소 대안 임강현(臨江縣) 제3구(三區) 6도구(六道溝)를 습격하였다. 병력은 약 500명이었다. 모두 개인화기를 소지하고 있었고, 경기관총 6정도 출동하였다. 총 5개 대(隊)로 나누어 나팔을 불며 공격했다. 일본인 세무서원 2명, 중국인 세무서원 1명을 현장에서 사살했다. 지역 주민 50여 명을 납치해 갔다. 현금 2천 원, 식량 1만 원 상당을 탈취하였다. 이에 일본군과 만주군은 중일전쟁 후방지역 안정화 차원에서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강도 높게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군에 의한 토벌뿐만 아니라, 심리전, 교통 차단 등 다양한 봉쇄 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1939년 봄이 되면 동북항일연군 제2·3로군의 전투력은 거의 소진돼 버렸다. 제2·3로군 중 전투력을 일부 보전한 부대는 소련으로 도주하거나, 소만 국경 지대로 은거했다. 전투력을 유지한 부대는 제1로군 뿐이었다. 이때 제1로군 사령관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부사령관은 중국인 위극민(魏極民), 사령관 비서처장 겸 군수처장은 앞서 설명한 한인 오성륜(吳成崙)이었다. 총병력은 3000여 명이었다. 제1로군은 동변도(東邊道)라 부르는 길림, 통화 간도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근거지를 마련하고 부대 정비에 들어갔다. 이때 제3차 부대 개편을 단행하였다. 전투력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했지만, 병력 손실이 큰 데다, 추가 병력 보충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존의 로군 아래 군(軍)을 없애고 군(軍) 예하 모든 사(師)를 통합하여 제1·2·3방면군으로 바꾼 것이다. 제1방면군장은 조아범(曺亞範), 제2방면군장은 김일성(金日成), 제3방면군장은 진한장(陳翰章)이었다. 일본군과 만주군은 1939년 10월부터 1941년 3월까지 1년 6개월간 더욱 강하게 동북항일연군 토벌 작전을 전개했다. 이때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양정우가 1940년 2월 23일 몽강현(濛江縣) 남쪽 490고지에서 사살되었다. 그는 부하 몇 명만을 거느린 채 끝까지 항전하다 죽었다. 양정우가 죽자, 부사령관 위극민, 비서실장 겸 군수처장 오성륜,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 등 11명의 동북항일연군 수뇌부는 1940년 3월 사령관 양정우 사후 문제를 논의했다. 첫째 군은 대중 속으로 들어가 병력 획득 공작을 벌인다. 둘째 소부대로 분산하여 가능하면 북상하여 제2·3로군과 합류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때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10명 이하의 여러 개의 소부대로 나누어 북상하도록 하면서 모두 '김일성 부대'라는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에 김성주가 속한 소부대도 '김일성 부대' 명칭을 사용하면서 소련 방향으로 이동하였다. 이 무렵 일본군과 만주군은 머리를 빗는 식의 섬멸 작전을 뜻하는 빗질 작전, 쇠파리처럼 끝까지 따라붙는다는 쇠파리 작전을 전개하였다. 그 결과 제1로군 제1방면군장 조아범이 1940년 4월 8일 부대 내 한중간 민족 대립으로 한인 부하로부터 암살당했다. 제3방면군장 진한장은 1940년 12월 8일 일본군에게 사살되었다. 제1로군 사령관 비서실장 오성륜은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게 투항했다. 군 수뇌부가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하게 무너졌다. 1941년 3월 말 기준 유기 시체 1282구, 투항 1040명, 체포 890명의 손실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제2방면군장 김일성(金日成)은 부대를 여러 개의 소조직으로 재편하여 각자도생식(各自圖生式: 제각기 살길을 도모함)으로 도주하여 소련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하였다. 이때 소련으로 도주한 동북항일연군은 대략 300명이었다. 주요 인물을 살펴보면, 제2로군 총사령 주보중(周保中), 제3로군 총사령 장수전(張壽錢), 제2로군 참모장 최용건(崔庸健), 그리고 문제의 김성주와 그의 처 김정숙(金靜淑)도 이들 무리에 끼어있었다. 1940년 11월이었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3-09 06:00
사진
배우 이재룡, 강남서 사고 뒤 도주 [서울=뉴스핌] 김가희 기자 = 서울 강남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현장을 떠난 배우 이재룡이 경찰 조사에서 음주운전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8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도로교통법 위반(사고 후 미조치) 혐의로 이씨를 조사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6일 오후 11시께 서울 강남구 청담역 인근 도로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중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뒤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난 혐의를 받는다. 이재룡. [사진=CJ E&M] 사고 이후 이씨는 차량을 자택에 주차한 뒤 지인의 집으로 이동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실시한 음주 측정 결과 이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다만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음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경찰 조사에서 "운전 당시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토대로 사고 당시 상황과 음주 여부 등을 확인하고 있다. 한편 이씨는 과거에도 음주와 관련한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2003년 강남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낸 뒤 음주 측정을 거부해 면허가 취소됐고, 2019년에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강남의 한 볼링장 입간판을 파손해 재물손괴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rkgml925@newspim.com 2026-03-08 15:03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