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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시론]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 원칙이 깨져서는 안된다

기사입력 : 2018년07월25일 09:03

최종수정 : 2018년07월25일 09:38

 

 

[서울=뉴스핌] 이석중 에디터 =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한 비핵화 논의가 정전협정 기념일인 27일을 앞두고 북한이 새로운 카드를 빼들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23일(이하 현지시간) 북한이 탄도미사일 실험장인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을 해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동창리 시험장은 북한이 미 본토 타격이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쓰이는 ‘백두산 엔진’을 개발한 곳이며, 장거리 로켓 은하 3호를 시험발사한 곳이기도 하다.

이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환영의 뜻을 표했고, 청와대도 지지부진하던 북미 협상에 좋은 영향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반면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미사일 시험장 해체 현장에 조사관 파견을 허용해야 한다며 의구심을 보였다.

실제로 북한이 비핵화를 이행하기 위한 단계라기 보다는 최근 ‘비핵화 전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고 나선 점에 비춰 미국의 체제보장을 압박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맞을 듯 하다.

CNN은 지난 23일 “북한이 비핵화 이행에 앞서 평화협정 체결과 같은 미국의 '담대한 행동'을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휴전협정을 김정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할 항구적인 평화협정으로 대체할 의지가 없다면 북한도 비핵화 협상을 더 진전시키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

우리 정부와 미국이 공언해 온 ‘선 비핵화, 후 평화협정 체결’의 원칙을 정면 부정하는 것이며, 협상의 프레임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 제재 완화에 예외를 둬서는 비핵화 기대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제재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지난 6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3차 방중 이후 중국이 비료, 식량, 유류 등 지원을 재개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 중인 중국으로서는 북한을 지렛대로 삼기 위해 대놓고 제재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러시아도 가세했다. 알렉산드르 마체고라 주 북한 러시아 대사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하는 게 논리적"이라고 했다.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의 노동 허가 기간을 내년 12월까지 연장토록 지시했다는 소식까지 있다. 북한 노동자에 대한 신규 노동 허가서 발급은 지난해 9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 2375호 위반이다.

여기에 우리 정부도 나섰다. 문재인 정부는 비핵화와 남북교류를 동시에 추진하는 투트랙 전략 하에 대북제재 예외를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겠다는 생각이다.

비핵화 이전이라도 북한과의 교류를 위해 북한에 제공할 물자의 반출은 예외적으로 허용해 달라는 것.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최근 미국 방문 기간 중 미국과 UN에 이같은 요구를 전달했다. 대북 제재를 위한 국제사회의 연대를 우리가 무너뜨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북한산 석탄 9156t을 국내 반입한 의혹을 받는 제3국 선박 두 척이 총 32차례나 우리 항구를 드나들었으나 청와대와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25일 방한하는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의 행보가 주목된다. 우리 정부가 요구하는 제한적인 물자공급의 필요성에 대해 남북 경협 기업들을 만나 직접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광복절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위해 금강산 면회소 개보수에 필요한 유류나 트럭 등 반입 금지 품목에 대한 반출 등이 우선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도 있다. 여기에 통신 분야와 남북 철도 연결 및 현대화 사업 등 북한의 공공인프라 개선 사업에도 정부는 유연한 물자공급을 인정받고 싶어 한다.

대북 투자나 합작 사업을 금지한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 2375호의 예외에 해당하는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 인프라 사업'은 안보리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북한에 대한 운송 서비스 제공 등을 금지한 미국의 양해도 필요하다.

우리 정부의 요구대로 이런 예외가 인정되면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 이번에도 북 협상술에 당할 건가?

아직은 미국의 태도에 변화는 없다. 미 국무부는 23일 '대북 제재와 단속 주의보’를 발표했다. ‘제재 주의보’는 지난 2월에 이어 두 번째다.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국무부는 제3국을 통한 북한의 대북제재 회피 행태를 상세히 나열하면서,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업체와 개인들에게 주의를 촉구했다. 북한의 불법 무역과 해외 노동자 파견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대북 제재완화 움직임을 겨냥한 것이다.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일 수도 있다.

이에 앞서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엄격한 제재는 북한의 FFVD(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중요하다”며 “모든 유엔 회원국은 만장일치로 대북 제재를 철저히 이행하기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추가 제재를 통해 대북 압박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벤 카딘 미 상원 외교위 민주당 의원은 VOA방송에서 “대북 제재 강화 외에 다른 방도는 없어 보인다”고도 했다.

그만큼 북한의 비핵화의 진정성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경계해야 할 것은 북한의 협상전략이다.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한편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을 제거하는 정도로 핵무기 보유국 지위 확보가 김정은 위원장의 목표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서해위성발사장' 해체도 그 일환이다. 또 6·12 북미정상회담 합의사항인 미군 전사자 유해송환도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 이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의 협상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대신 북한은 단계적 동시 행동 조치를 주장하며 시간을 벌면서 일부 핵무기와 대륙간탄도탄(ICBM)을 폐기한 후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할 것이다. 단계별로 세분화해 하나씩 해결하는 북한의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같은 북한의 협상전략에 말려 섣불리 제재완화에 나서서는 안된다. 비핵화를 압박하는 수단인 대북제재는 국제사회의 만장일치로 결의됐고, 그 해제도 비핵화 조치 이후 국제사회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브룩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열린 애스펀 안보포럼에 보낸 영상 기조연설을 통해 "북한이 핵탄두 제조에 필요한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지 않았다"며 "북한의 핵생산 능력이 아직 그대로"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비핵화를 위해 실질적 행동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미국은 ‘북한이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평화협정에 서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천명해야 한다.

북한에 비핵화 이행을 위한 시간을 주면 줄 수록 핵과 미사일 능력은 더욱 고도화될 수 있다. 북한 비핵화는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제재완화는 계속돼야 한다.

julyn11@newspi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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