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방문 빌미로 투자 강요는 적폐
삼성 방문 계기로 관치투자 끊어야
[세종=뉴스핌] 최영수 기자 = 6일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은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다소 싱거운 만남이었다.
경제부 최영수 차장 |
당초 업계에서는 '100조원 이상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정부와 삼성은 고심 끝에 이를 배제했다.
청와대발 '투자 구걸론'이 불거진 측면도 있었지만 김동연 부총리 스스로 괜한 오해를 사고 싶지 않은 '진심'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업계에서는 언젠가부터 '관치(官治)금융'에 빗대어 '관치(官治)투자'라는 말이 자리잡았다. 경제부처 장관의 현장방문을 계기로 대규모 투자나 고용 계획을 발표하며 이른바 '선물'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특히 개별 기업의 투자계획을 경제부처 장관이 먼저 받아보고 자신들의 보도자료에 담는 행태는 '관행'이란 이름으로 오랜 기간 지속돼 왔다.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계획을 적기에 발표하지 못하거나 없던 계획을 억지로 짜내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때로는 기업의 투자계획 자체가 '거품'이거나 '재탕'하는 일도 적지 않았고 기업의 '민원'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부와의 회동을 계기로 10대 그룹의 투자계획을 모아 발표하기도 했다. 경제부총리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경제부처 수장들도 대기업 방문을 빌미로 대규모 투자 및 고용계획을 받아내고는 마치 자신의 업적인양 생색을 내곤 했다.
하지만 화려한 투자계획들은 사실 그 때 뿐이다. 정부의 생색내기가 끝나면 실제로 얼마나 투자가 진행됐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는다. 그렇게 기업의 투자계획은 공수표가 되어 과대포장과 부당거래를 거듭하며 구습이 되어버렸다.
때문에 이번 김동연 부총리와 이재용 부회장의 만남에서 투자계획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잘한 일이다. 청와대가 지시를 했던, 김동연 부총리의 진심이든 동기보다 중요한 것은 결과다. 앞으로 이 같은 구태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산업부 장관이나 다른 경제부처 장관들도 이 같은 유혹을 떨쳐버려야 하는 숙제는 동일하다. 기업들이 자기 의지대로 투자와 고용계획을 세우고 각자 원하는 시기에 발표할 수 있도록 맡겨야 한다. 정부는 그저 기업들이 마음껏 투자하고 고용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혁하고 손질하면 그만이다.
기업의 투자가 어느 때보다도 어렵다. 문재인 정부로서는 조바심이 날 만도 하다. 하지만 과거 정부의 구태를 떨쳐버리고 기업과의 부당거래를 끊어 내야만 한국경제에 희망이 있다.
기업들도 이제 정부 눈치보기를 끝내고 소신껏 투자하고 고용하기 바란다. 정부와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하는 의무는 기업에게도 있기 때문이다. '투자 구걸론' 같은 낯 뜨거운 용어가 더 이상 국민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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