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피해자, 성적주체성과 자존감 결코 낮다고 볼 수 없어"
기존 처벌규정과 사회적 변화 사이 괴리 인정
법원 "입법부가 손 봐야"
[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여비서 성폭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53)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위력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했다고 입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10시30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피감독자 간음)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위력·위계 행사에 따른 처벌이 있다”며 “다만 피해자는 개인적 취약성 때문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수 없던 사람 같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이어 “피해자 심리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떠나 피고인의 어떤 위력을 행사했다거나 피해자가 제한을 당했다고 볼 만한 상황이라곤 볼 수 없다”며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로서는 오피스텔 문을 열고 나가는 등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피해자가 내심에 반하는 상황에 있었다 해도 현재 성폭력 범죄 처벌 체계 하에서는 위력에 의한 성폭력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핌] 이윤청 기자 =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8.08.14 deepblue@newspim.com |
기존 처벌규정과 사회적 변화 사이의 괴리를 지적하며 입법부로 공을 돌리기도 했다.
재판부는 “기존 처벌규정이 사회적 변화에 부응 못해 책임과 처벌 사이에 불합리한 괴리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며 “입법부에서 체계적 정비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사법부에서는 각종 증거법칙과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결정을 내릴 뿐”이라고 덧붙였다.
안 전 지사의 여비서 성폭행 혐의는 지난 3월 5일 김지은(33) 전 충남도 정무비서의 미투 폭로로 알려졌다. 김씨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2월까지 러시아·스위스·서울 등 출장지에서 성폭행을 당하고 업무 중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고소장을 접수한 검찰은 지난 4월 11일 안 전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형법상 피감독자간음과 강제추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였다.
[서울=뉴스핌] 이윤청 기자 =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선고 공판을 방청하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2018.08.14 deepblue@newspim.com |
1심의 ‘무죄’ 선고에 방청석 반응은 극명히 엇갈렸다. 재판 내내 고요했던 법정은 울분과 박수로 뒤덮였다. 재판부가 퇴정하자 한 여성은 “정말 너무한다”, “정의가 없다”고 외쳤다. “지사님, 힘내세요”라고 외치며 박수를 치는 방청객도 있었다.
안 전 지사는 조용히 쏟아지는 눈물을 닦았다. 얼어붙어 있던 변호인단 얼굴에도 웃음이 피었다.
반면 피해자석에 앉아 선고 내내 정면을 응시하던 김씨는 선고가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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