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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협상책임자, 강경파 김영철에서 리수용 등 외교관으로 교체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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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지난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2월 말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비(非)외교관 출신에 보수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철이 미국과의 협상책임자로 계속 등장하는 대내외 복잡한 상황을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가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처음에는 김영철을 수용하는 듯 했지만 그가 북한 측 협상책임자를 계속 맡는 것이 비생산적이라는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관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좌초될 뻔 했을 때 김영철의 미국 방문이 이를 살려냈지만, 정상회담 후 그 해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영철과의 회담 분위기는 불편하고 긴장이 감돌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폼페이오는 당시 방문에서 김정은을 만나지 못한 채 귀국했고, 직후 북한은 미국이 ‘강도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며 맹비난했다.

이후 10월 폼페이오가 다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을 만났을 때, 김영철은 환영식과 회담 후 만찬에만 나타났다. 대신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이 폼페이오와의 회동에 참석했고, 김정은은 7월에 만나지 못한 데 대해 폼페이오에게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38노스는 김영철이 김정은과 폼페이오 간 주요 대화 자리에 끼지 못한 점과 김정은의 사과 등으로 판단해 볼 때, 김정은이 자신의 ‘오른팔’인 김영철을 책망하고 협상대표의 교체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영철은 김일성군사종합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맡고 있다. 통일전선부는 한국, 더 나아가 중국 정책을 관장하는 기관이지만 역대 통일전선부장은 대미 정책까지 총괄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영철은 남북 군사 협상과 미국과의 협상장에 자주 등장했지만 외교관 출신이 아니라고 38노스는 지적했다.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나 리용호 외무상, 최선희 외무성 부상 등 전문 외교관들이 미국과 우호적인 분위기를 유지해나가는데 더 적절한 인물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또한 김영철의 과거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2014년 미국 소니사 해킹 사건 당시 정찰총국의 총국장을 맡고 있었으며, 현재 미국과 한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이다.

38노스는 김정은이 이러한 인물을 계속 미국과의 협상 책임자로 내세우는 이유는 미국에 메시지를 보내는 데 가치가 있다는 판단에서라며, 김영철이 김정은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 로이터=뉴스핌] 남혜경 인턴기자 =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논의를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배경 속 왼쪽에서 두 번째)과 만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2019.01.18.

◆ 김영철 vs 김여정

외교정책에 있어 김영철은 북한 강경정책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은은 김영철의 이러한 이미지를 활용해 이중적인 외교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38노스는 해석했다.

김영철은 김여정과 자주 같이 등장한다. 2018년 동계올림픽 당시 김여정이 개막식에 나타나 한국 관계자들과 친화적인 모습을 보였던 반면, 김영철은 폐막식에 나타나 기자들에게 자신을 “당신들이 천안함 사태의 주역이라 비난한 인물”이라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김여정과 김영철을 양쪽에 앉혔다. 이는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쉽게 갈 수도, 어렵게 갈 수도 있음을 신호하려 한 것이라고 38노스는 분석했다.

◆ 북미협상에서 김영철은 어떤 카드?

38노스는 김정은이 미국에도 이와 같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정은이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와 신뢰 구축 조치를 말할 때 미국 측에서는 리수용이나 리용호가 협상을 맡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북미 협상 초반부터 김영철이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김정은은 미국에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지만 우리는 아직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38노스는 분석했다.

◆ 북한 엘리트 설득 위해 필요한 인물

38노스는 또한 김정은이 미국과의 협상 과정과 관련해 당과 군부 등 북한 정치 엘리트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김영철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외무성 인사들은 이러한 내부 단속까지 하기에는 영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김영철이 이제는 군복을 입지 않지만, 여전히 인민군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군부 출신으로는 최고위급에서 의사 결정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에 군부 내의 영향력이 막강하다.

◆ 2차 북미회담 후 북한 책임자 교체될까?

지난해 10월 김정은-폼페이오 회동에서 배제된 만큼 이번 워싱턴 방문에서 김영철이 단순히 메신저 역할만 했다면 김정은이 협상책임자 교체를 위한 포석을 깔아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고 38노스는 전했다.

또한 38노스는 이번 김영철의 워싱턴행에 동행한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과 최강일 외무성 북미국장 대행이 모두 전문 외교관들이라는 점에도 주시했다. 특히 김성혜는 김정은이 북미 협상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해석이 맞다면 2차 북미정상회담 후 북한 책임자가 리수용이나 리용호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유화책과 강경책의 균형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김정은의 계산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북한이 유화적인 조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38노스는 경고했다.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건데 받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댄 스커비노 주니어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go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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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문의 화랑담배]김일성 동북항일연군 변상문의 '화랑담배'는 6·25전쟁 이야기이다. 6·25전쟁 때 희생된 모든 분에게 감사드리고, 그 위대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제목을 '화랑담배'로 정했다.  만주(滿洲)는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흑룡강성(黑龍江省), 그리고 내몽고자치구(內蒙古自治區) 동부를 포괄하는 지명이다. 이중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을 동북(東北)이라고 한다. 중국은 만주 명칭보다 동삼성(東三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동삼성에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창설한 것은 1933년 9월 18일이었다. [사진= AI 생성 이미지] 중국 공산당은 1928년 봉천에 만주성위(滿洲省委)를 설치하고 전 만주에 걸친 공산 세력 확장에 나섰다. 그러던 중 1933년 9월 18일 남만에서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를 창설하였다. 제1군 제1사는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滿洲省委) 남만특위(南滿特委) 관할 반석현위(盤石縣委) 산하 유격대를 중심으로 만들었다. 1사 창설 당시 반석현위 산하 유격대장은 진옥진(陣玉震)이었다. 부대장은 박한종(朴翰鍾)이었고, 대원은 한인 20여 명이었다. 이 유격대가 차츰 발전하여 1930년 10월 중국 홍군 제32군 남만유격대가 되었다. 병력은 한인 80명을 포함 230여 명이었다. 총대장은 경기도 용인 출신 이홍광(李紅光)이었다. 이부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1군 제1사가 된 것이다. 군장(軍長)은 중국인 양정우(楊靖宇)였고 사장(師長)은 이홍광(李紅光)이었다. 남만의 반석은 당시 한인 공산주의운동의 중심지였다. 따라서 반석현위 중국 공산당 주요 간부는 대다수 한인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오성륜(吳成崙), 박윤세(朴允世), 한진(韓震), 조걸(趙杰) 등이다. 오성륜은 김성주의 역사 날조와 관련하여 대립 관계에 있는 인물이다. 오성륜을 제대로 알아야 김성주를 제대로 알 수 있다. 오성륜은 1898년 11월 7일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 영와면(永瓦面) 용남동(龍南洞)에서 태어났다. 1906년 아버지를 따라 만주로 건너와 간도에서 살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중퇴했다. 열아홉 살 때 상해에서 김원봉의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2년 3월 상해 황포탄부두(黃浦灘埠頭)에서 김익상(金益相)·이종암(李鍾巖)과 함께 일본군 육군 대장 다나카를 저격했으나 실패했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유치장에 있던 중, 탈출하여 독일로 갔다. 독일에서 다시 소련으로 건너가서 모스크바공산대학을 졸업했다. 1926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다. 1929년 중국 공산당 지시에 따라 만주 반석현위 간부가 되었다. 그는(오성륜) 중국 공산당 만주성위 반석현위 간부로서 요즘으로 따지면 특수부대 성격의 이홍광의 개잡이대(打拘隊)를 지도했다. 이홍광의 개잡이대는 반석현위 일대의 지주는 중국·조선인을 가리지 않고 <개犬>로 부르며 무자비하게 살해했다. 이 개잡이대가 사실상 이홍광의 1사 핵심 전력이기도 했다. 오성륜은 외모가 빼어났다. 말과 글이 수려했다. 당연히 이 지역 일대의 여인들이 그를 좋아했다. 오성륜이 남만주 거주 한인 중 제일 먼저 중국 공산당에 입당시킨 인물이 이동광(李東光)이다. 이동광 여동생 이영숙은 미모가 빼어난 과부였다. 오성륜이 이영숙의 집을 거점으로 잡았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이영숙은 오성륜에게 반해버렸다. 오성륜이 시키는 심부름이면 거절하는 경우가 없었다. 둘은 만난 지 1개월이 안 돼 동거에 들어갔다. 이 사실을 안 오성륜의 상해 동거녀 두군서(杜君恕)가 이영숙을 찾아왔다. 두군서는 오성륜의 의열단 친구 김성숙의 중국인 아내 두군혜(杜君慧)의 친동생이었다. 두군서도 오성륜을 처음 보았을 때 사랑에 빠져버린 여자였다. 두 여자가 머리끄덩이까지 잡고 싸웠다. 오성륜은 독일에서도 독일 여자와 깊은 사랑을 한 바 있었다. 그는 염문을 뿌리고 다니는 풍류남아였다. 1941년 동북항일연군 잔여 세력이 소련으로 넘어갈 때 같이 가지 않고 당시 중국 열하성(熱河星)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에 투항하였다. 야마모도 히데오(山本英雄) 라는 일본 이름을 지어 친일 활동하였다. 사망 일자는 알 수 없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은 1934년 3월 동만특위(東滿特委) 관할 연길현(延吉縣) 삼도위(三道崴)에서 창설했다. 제2군 제1사 역시 한인 주진(朱鎭)이 대장으로 있던 유격대가 근간이었다. 총병력은 565명이었는데, 이중 한인이 549명이었다. 제2군 군장(軍長)은 중국인 왕덕태(王德泰)였고, 제1사 사장(師長)은 한인 주진(朱鎭) 이었다. 동북인민혁명군은 총 11개 군(軍) 이었다. 중국 공산당은 이 동북인민혁명군(東北人民革命軍)을 1936년 7월 동북항일연군(東北抗日聯軍)으로 개편하였다. 그 이유는 1935년 7월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한 '통일전선전술' 결정에 따른 것이다. 코민테른의 '통일전선전술'은 두 가지 방식으로 되어 구성돼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을 반파쇼인민전선으로 묶어 자기 나라의 독재정권을 쓰러뜨리는데 총동원하되, 공산당이 그 주도권을 잡아 독재정권을 타도한 후, 공산정권을 수립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국가에 있어서는 자기 민족의 주권을 찾기 위해 전 민족을 반제민족통일전선으로 묶어 해방운동을 벌이되, 공산당이 그 주도권을 잡아 해방이 이루어지면 바로 공산정권을 세우는 방식이다. 중국 공산당은 코민테른이 제시한 두 번째 방식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을 동북항일연군으로 그 명칭을 바꾼 것이었다. 즉 외양상으로 폭이 넓은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을 위해 공산주의 계급혁명 색채가 짙은'인민혁명군' 명칭을 버리고, 대신 항일 구국군의 민족적 이미지가 있는「항일연군」을 사용한 것이다. 이른바 중국 공산당의 1935년 8·1선언이 그것이다. 중국 공산당은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코민테른 지시대로 항일민족전선 결성을 위해 1936년 4월부터 오의성 부대와 접촉하기 시작하여 8월에 양군(동북항일연군, 오의성 부대) 총합 2,000여 명의 병력으로 합동작전을 펼쳐 무송현성(撫松縣省)을 공격하여 만주군을 격멸했다. 이때 김성주는 동북항일연군으로 전속(轉屬: 원적을 바꾸어 소속을 바꿈)하였다. 전속부대는 동북항일연군 제1로군 제2군 제6사였다. /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2026-0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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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영, 왕즈이 잡고 말레이오픈 3연패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날카로운 공격력까지 장착해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안세영(삼성생명)이 2026년 첫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다. 안세영은 11일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왕즈이(중국)를 56분 만에 게임 스코어 2-0(21-15, 24-22)으로 물리치고 대회 3연패를 달성했다. 우승 상금은 10만1500달러(1억3000만원)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 [사진=BWF]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지난 해 8차례 만나 모두 왕즈이를 제압했던 안세영은 이날 승리호 상대 전적 17승 4패가 됐다. 왕즈이는 지난해 12월 21일 왕중왕전 결승에서 패한 뒤 "안세영은 항상 모든 나라 선수들에게 롤모델"라며 믹스트존에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쏟았다. BWF 관계자조차 "왕즈이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본다"고 할 만큼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이번 대회는 안세영에게 긍정적인 변수가 많았다. 8강에서 맞붙을 예정이던 세계 3위 한웨이(중국)가 감기 몸살로 기권했고 준결승에서 최대 난적인 세계 4위 천위페이(중국)의 기권으로 결승에 올랐다. 결승 상대 왕즈이는 이날 경기 전 "안세영은 허점이 거의 없는, 매우 철저하고 완성도 높은 선수"라며 승리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안세영은 1게임 초반 몸이 덜 풀린 듯 범실을 쏟아내며 1-5까지 밀렸다. 뒤늦게 리듬을 찾은 안세영은 하프 스매싱을 앞세워 득점을 쌓아 10-11로 인터벌에 들어갔다. 휴식 후 특유의 송곳샷이 살아나며 역전했고 셔틀콕을 상대 엔드 라인과 사이드 라인 위에 떨어뜨리며 21-15로 게임을 잡았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승리한 뒤 포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안세영이 11일 월드투어 슈퍼 1000 말레이시아 오픈 여자 단식 시상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BWF SNS 동영상 캡처] 2026.01.11 psoq1337@newspim.com 2게임에선 짜릿한 뒤집기쇼를 펼쳤다. 9-17까지 밀려 패색이 짙었으나 수비와 길게 가져가는 랠리로 추격에 나섰다. 왕즈이가 20-19로 먼저 게임 포인트에 들어갔지만 안세영이 듀스를 만들고 23-22로 앞선 뒤 대각 스매시로 챔피언십 포인트를 뽑았다. 2026년을 여는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안세영은 환호하는 말에이시아팬들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포효했다.   psoq1337@newspim.com 2026-01-1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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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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