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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리스트 제외] 광주서 반일운동 확산...83개 시민단체 시국회의

기사입력 : 2019년08월06일 20:31

최종수정 : 2019년08월06일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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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일본 정부가 지난 2일 한국을 수출관리 우대 대상국인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기로 결정하면서 강제징용 피해자에 관한 관심과 반일 행동이 확산되고 있다.

6일 오전 광주시 동구 YMCA 무진관에서는 민중당 광주시당, 5·18유공자유족회,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83개의 시민사회단체가 시국회의를 열고 일본의 경제침략과 관련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화이트리스트 제외 결정에 반발하는 광주시민대회 [사진=전경훈 기자]

시국회의를 제안한 민중당 광주시당은 “일본 아베 정부가 발표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한 결정 등은 총칼 대신 경제무기를 앞세운 제2의 경제침략이다”며 “지난달 24일 전국 682개 단체가 ‘역사왜곡·경제침략·평화위협 아베규탄 시민행동’을 결성해 전국적으로 일본 규탄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광주 지역사회도 함께 투쟁할 것을 제안했다.

이날 광주시민대회는 10일 오후 6시30분 금남로에서 1000여 명의 집회 참가인원과 함께 투쟁에 나설 것을 계획했다.

같은 날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광주 서구에 거주하는 근로정신대 피해 당사자이자 강제징용 손해배상 원고로 참여한 양금덕(91) 할머니 자택을 방문해 “피해자분들이 일본에 사죄받고 존중받아야 하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정부가 국민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을 분명히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양금덕 할머니는 “일본 정부는 우리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한다”며 “시민들이 함께 일본과 싸워줘서 고맙다”고 이 같이 말했다.

근로정신대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오른쪽에서 두번째) 자택을 방문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맨 오른쪽)[사진=전경훈 기자]

심 대표는 “아베가 요즘 하는 행동이 옛날 식민지 시절처럼 이래라 저래라 하면 되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며 “정부도 그렇고 우리 정치권도 이번 기회에 식민지 종주국으로서 그 우월감에 빠져있는 아베를 확실하게 응징하겠다는 그런 각오로 임하겠다”고 피력했다. 

이어 “지금 강제징용 문제, 위안부 문제 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피해자들에게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서두르겠다”며 “빠른 시일 내에 일본이 고개를 숙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했다.

양금덕 할머니는 “중학교를 보내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 공장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며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대부분의 나이가 90대인데 사죄 한번 안하고 수십년째 모른척으로 일관하는 일본 정부가 너무 괘씸하고 우리 정부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성토했다.

지난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재판 당시 건강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양금덕 근로정신대피해자의 모습 [사진=전경훈 기자]

여론 안팎에서는 이번 화이트리스트를 계기로 다른 사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지금이라도 정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근로정신대란 일제 강점기 말기에 조선 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조직을 말한다. 일제는 위안부와는 또 다른 형태의 인권유린적 착취행태를 자행했다.

양금덕 할머니와 같은 시기에 일본으로 끌려간 피해자들은 대부분 10대 초·중반의 나이로 ‘취직을 시켜준다’는 꼬임에 넘어가 반 강제로 차출된 뒤 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의 사업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지난해 미쓰비시 소송에서 승소한 후 만세를 외치는 근로정신대 피해자들과 시민들의 모습 [사진=전경훈 기자]

여성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해방 이후에도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다.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가 성적 착취를 당했다’는 편견 때문에 피해 사실을 숨기며 살았다. 근로정신대 손해배상 청구건수가 적고 피해 사실 자체 또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국언 근로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 대표는 “피해자들이 많이 작고 하신 상태고, 강제동원 지원법에 의해서 정부는 생존해 계신 분들에게 1년에 80만원의 의료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한달로 치면 6만9000원 정도의 금액만 지급하고 있어 징용피해자들을 대한민국에서 80만원짜리의 존재감 밖에 안된다”고 토로했다.

kh10890@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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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기차 주행거리 두배 증가 배터리 개발 [베이징=뉴스핌] 조용성 특파원 = 중국이 에너지 밀도를 두 배 증가시킬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 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칭화(淸華)대학 화학공학과의 연구팀은 '음이온이 풍부한 용매화 구조 설계'를 개발해 냈으며, 이를 기반으로 불소 함유 폴리에테르 전해질을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고 중국 관찰자망이 30일 전했다. 해당 연구 성과는 논문 형식으로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에 등재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폴리에테르 전해질은 고체이며, 연구팀은 해당 전해질을 사용하여 전고체 배터리를 제작했다. 제작된 전고체 배터리는 604Wh/kg의 에너지 밀도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리튬 이온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가 150~320Wh/kg인 점을 감안하면 에너지 밀도가 두 배 이상 높아진 것이다. 동일한 무게의 배터리이지만 해당 전해질을 사용한 전고체 배터리는 두 배 이상의 전력을 충전할 수 있는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기차의 1회 충전 주행 거리가 두 배 증가할 수 있게 된다. 현재 500km가량을 주행할 수 있는 전기차가 1000km를 주행할 수 있게 된다. 해당 전고체 배터리는 안전성 테스트도 통과하였다. 못을 박아도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120도의 높은 온도의 박스 안에 6시간 동안 방치되었지만, 연소나 폭발이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500회 이상 충방전을 거치면서도 에너지 저장 용량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연구진이 만들어낸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된다면 많은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해진다. 전기차의 주행 거리는 두 배 증가하며, 드론의 비행 거리도 두 배 증가하게 된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역시 부피당 저장 용량을 크게 끌어올리게 되며 ESS 소형화가 가능해진다. 칭화대 연구진이 개발한 전고체 전해질의 도식도 [사진=네이처 캡처] ys1744@newspim.com 2025-09-30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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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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