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먀오후이 전통 시장 축제 전면 취소
'2월 한달도 장사 힘들것' 한국인 식당 사장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설 쇠고 27일부터 영업하려 했는데 내일(29일)도 힘들 것 같아요. 당국이 설 연휴를 당초 1월 30일 에서 2월 2일까지로 연장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2월 8일(정월 대보름)까지도 출근이 어렵고 이후에도 직장인들 재택 근무가 늘어날 전망입니다. 거리에 나다니는 손님이 없는데 무슨 장사가 되겠어요. 3월이나 4월 날씨가 따뜻해져야 바이러스 전염이 주춤해진다고 하니 그때까지는 개점 휴업상황이 지속될 것 같아요".
28일 늦은 오후 베이징 한인 밀집지역인 차오양구 왕징의 한국 식당. 삼겹살을 구워놓고 마주앉아 얘기를 나누던 중 주인 김 씨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며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김 사장은 "설령 영업을 한다해도 자칫 매장에서 감염자가 한명이라도 나오면 아예 가게 문을 닫아야하는 리스크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에 설령 손님이 있다해도 장사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기자가 찾아갔을 때 혼자서 덩그러니 텅빈 가게를 지키면서 한국 유선 채널 CGV에서 방영하는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는 2017년 하반기에는 사드 때문에, 작년 8월에는 '도시정비사업' 때문에 온통 난리를 겪었는데 이번 우한폐렴은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는 초대형 급 재난이라고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자는 이날 낮 우한폐렴에 따른 베이징 시내 표정을 취재하기 위해 왕징 일대를 돌아본 뒤 지하철을 타고 시내 디탄(地團) 공원과 둥청(東城)구 일대에 나가봤으나 어디를 가나 통행금지라도 내려진 것 같이 행인들의 발길이 한산했다. 간간히 O2O 택배 기사들의 오토바이가 지나다닐 뿐 넓은 대로는 마치 경기가 끝난 운동장 처럼 적막하게 느껴진다.
베이징에서도 확진환자가 100명에 육박하고 사망자까지 나오면서 2000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하철은 이용객의 발길이 뚝 끊긴 가운데 어느 노선 할 것 없이 대부분 좌석이 거의 텅텅 빈 채 운행되고 있었다. 지하철 역사와 플랫폼 마다 소독하는 사람과 검역원, 긴급 투입된 승하차 관리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시내버스도 승객 한 명 없이 다니는 차가 태반이다. 그나마 좀 있으면 지하철과 시내버스운행 까지 중단될 거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당초 설 연휴 마지막 날(1월 30일)을 이틀 앞둔 28일, 이때쯤이면 통상 귀경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거리가 활기를 띠기 시작하지만 올해는 아예 도시 일터로 귀환하는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는다. 돌아오지는 않고 떠나가는 사람만 자꾸 늘어나고, 집에 있는 사람조차 외출을 꺼려하다 보니 도시가 공동화 되는 느낌이다.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우한폐렴에 대한 불안감으로 행인이 줄어들면서 28일 베이징 지하철이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텅 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중국당국은 28일 24시 현재 우한폐렴 확진자가 5974명, 사망자가 132명으로 늘었다고 발표했다. 2020.01.29 chk@newspim.com |
기자가 이번 설 휴가에 취재겸 찾아가 함께 설을 쇤 중국 서부 간수성 민친(民勤)현의 중국 친구 예펑위(叶鹏玉). 기자가 먼저 베이징을 향해 길을 떠나던 지난 25일 오전만 해도 그는 29일에 출발해 정상적으로 1월 31일에 출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설 당일인 25일 시진핑 주석 주재하에 공산당 정치국 상무회의가 열린뒤 상황이 급박해졌다. 컴퓨터 프래그래머인 예펑위는 28일 낮 문자로 4일로 출근을 늦췄다고 했고, 다시 저녁에는 그마저도 불확실한 상황이 됐다고 전해왔다.
예펑위는 무엇보다 교통 사정 때문에 베이징으로 오기 힘든 상황이 됐다. 간수성은 전 성에 걸쳐 확진환자가 19명으로 비교적 적은 편인데도 지방 소도시와 촌락을 연결하는 교통에 대해 강력한 통제 조치를 취하고 나섰다. 민친현이 고향인 예펑위가 베이징 가는 기차를 타려면 3시간 정도 버스를 이용해 인근 우웨이시로 가야하는데 시외 버스 운행을 전격 중단시킨 것이다.
급한대로 택시를 이용할까 고민중이었든데 택시 운행까지 중단시켜 민친현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는 현재 헤이처(黑车, 불법영업 승용차)를 알아보고 있지만 아무래도 2월까지 발이 묶일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왕징의 롄자(璉家) 부동산 장(张)씨도 고향 산둥성으로 설을 쇠러 갔다가 당초 30일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2월 초로 귀경을 늦췄다.
[뉴스핌 베이징 = 최헌규 특파원] 인구 20여만 명의 간수성 민친현 현 정부는 27일 시 내외 장거리 여객버스와 시 경계를 넘어가는 택시운행까지 모두 중단한다는 긴급 통지문을 발표했다. 2020.01.29 chk@newspim.com |
설 쇠러 간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지방 현지에서 발이 묶이다 보니 베이징은 마치 주민 소개령이라도 내린 것처럼 어느 곳을 가나 텅텅 빈 느낌이다. 28일 오후 찾은 시내 디탄 공원은 평소 설 연휴 같으면 먀오후이 (庙会) 전통 시장 축제가 열리면서 참관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곳이지만 올해 설의 경우 한산하기가 이를테 없다. 관리원에게 물어보니 우한폐렴으로 인해 올해 먀오후이가 설 전전날 전격 취소됐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설 연휴 후의 출근일을 당초 1월 31일에서 2월 3일로 늦췄다. 하지만 기업들은 정월 대보름이 지나 2월 9일께 부터 출근을 시작할 계획인데 이마저도 희망사항일 뿐 사실상 언제 쯤 정상 근무가 재개될지 아무도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직장인들이 돌아오지 못하면서 기업들은 생산활동에 차질을 빚고 서비스 자영업자들의 영업에도 타격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왕징 대형 한국 식당 대표는 예년 처럼 설 이틀뒤인 27일 부터 영업을 재개 했는데 하루에 한 두 손님이 다녀간다고 말한뒤 하지만 식재료는 평소처럼 모두 준비해야한다며 이런상황에서 도저히 영업을 지속할 수 없어 큰 걱정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그렇다고 문을 닫아도 인건비와 임대료 등 모든 비용은 평소같이 발생하기 때문에 진퇴양난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 최헌규 특파원 ch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