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글리츠 "트럼프 경제 성적은 사실상 낙제점"
[서울=뉴스핌] 이홍규 김사헌 기자 = 집권 4년 차를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20년 연두교서는 '자화자찬'으로 4일(현지시간) 끝이났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지지자들을 의식한 내용으로 가득했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자신의 치적을 과장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CNN방송과 AP통신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직후 그의 발언을 검증하는 '팩트체크' 기사를 내보냈다. CNN방송은 "트럼프는 거짓 주장이 난무하는 애드리브로 유명하지만, 연두교서 등 공식 연설을 할 때는 대본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그럼에도 그의 올해 연두교서는 사실과 일부 다른게 있었다고 보도했다.
◆ "에너지 1위 생산국 타이틀, 오바마가 달성"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발표한 연두교서에서 "(자신의) 대담한 규제완화 덕분에 미국은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 1위 국가가 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에너지 생산 1위 국가 타이틀은 자신의 집권기간 이뤄졌다는 얘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에 위치한 연방의회 하원 본회의장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고 있다. 2020.02.04 [사진= 로이터 뉴스핌] |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CNN은 "트럼프 재임 기간에 미국이 세계 1위 에너지 생산국이 됐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미국 에너지정보청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 2012년이 맞다"고 전했다.
CNN은 또 "2009년에 미국은 러시아를 누르고 세계 최대 천연가스 생산국이 됐고, 2013년에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석유탄화수소 1위 생산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트럼프 재임 기간 미국은 석유 생산 1위국이 된 것은 맞다고 매체는 전했다.
◆ "오바마 때 경제활동인구 30만명 줄어? 506만명 증가"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경제활동 가능 연령대'(working-age)에서 30만명이 빠져나갔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그는 "전임 행정부 8년동안 30만명의 경제활동 연령대가 노동인구에서 빠져나간 반면, 내가 집권한 지 3년 만에 경제활동 연령대에 있는 350만명이 노동인구로 편입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AP통신은 오바마 전 행정부의 성과에 흠을 내려고 수치를 호도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경제활동 연령대'의 정의가 무엇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동부에 따르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집권 8년동안 노동인구는 506만명 증가했다며, 이는 금융 위기로부터 경제가 회복되어 인구가 늘었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4일(현지시간) 하원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끝나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연설문 사본을 찢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공장 1만2000개 늘어난 건 사실…5인 미만 소공장 포함, 생산은 감소"
트럼프 대통령의 '자신의 집권 뒤에 미국에 1만2000개의 공장이 새로 생겼다'는 주장은 사실과 부합한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두 정권에서 미국은 6만개의 공장을 잃었지만 자신의 집권한 뒤에는 1만2000개의 공장을 새로 갖게됐다"고 말했다. CNN은 "두 수치 모두 옳다"면서도 "다만 5명 미만의 직원을 보유한 소규모 공장까지 모두 포함한 수치라는 점은 유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AP는 또 실제 수치가 트럼프 대통령의 '공장 1만2000개' 발언이 주는 뉘앙스와는 차이가 있음을 지적했다. 통신은 지난 12개월 동안 미국의 공장 생산량은 1.3% 감소했고, 작년 12월까지 1년 간 신규 제조업 일자리 수는 4만6000명에 그쳤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부흥'을 약속했던 미시간·오하이오·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주(州)의 제조업 일자리는 지난해 오히려 줄었다고 했다.
◆ "밀입국자들, 법원 심리 참석 안 했다? 90%가 출석"
이날 또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의 '캐치앤드릴리즈'(Catch and Release) 정책 때문에 불법 이민자들이 법정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캐치앤드릴리즈는 국경에서 체포된 밀입국 이민자들을 추방재판 기일까지 석방하는 제도다. 지난해 9월 미국 국토 안보부는 이같은 정책을 더이상 시행 않기로 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CNN은 "사실이 아니다"며 "정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대다수의 망명 신청자가 법원 심리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망명 신청자가 법원 심리에 참석하지 않는 비율은 2016년 9%에서 11%로 증가했는데, 그럼에도 이는 약 90%가 출석한다는 의미라고 CNN은 해석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연두교서를 통해 자신의 성과를 '과장'했다며 전임 행정부의 성과를 왜곡했다고 총평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의 주장을 재활용해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작된 에너지 부문 '호황'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는 한편, 제조업 분야의 성과를 부풀리고, 불법 이민자에 대한 정책을 사실과는 다르게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 스티글리츠 "트럼프 경제, 팩트 체크해보면 낙제점"
민주당 지지 경제학자 중에서 저격수로 저명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난달 '트럼프 경제의 진실'이란 칼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성과는 '낙제점'이라며 조목조목 비판했다.
먼저 그는 "미국의 계속되는 경제 성장률이나 기록적인 주가지수는일반 서민들의 생활수준이나 지속가능성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없기 때문에 경제적 성과에 대한 좋은 척도가 될 수 없다"면서, 경제 성과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란 통념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경제 건전성을 평가하려면 시민들의 건강을 살펴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미국은 선진국들 중 최하위 성적"이라며, "미국인 기대수명은 트럼프 집권 이후 2년 동안 계속 하락했고, 2017년에는 미국 중년층의 사망률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치에 달했다고 개탄했다.
그는 "미국인의 기대수명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앵거스 디튼이 "술과 약물 과다복용 및 자살로 인한 절망의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절망의 죽음 규모는 2017년에 1999년의 거의 4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전쟁이나 전염병 외에 한 나라 시민들의 건강 쇠퇴 양상을 본 것은 세계은행(WB) 수석경제학자로 있을 때 구 소비에트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 경제의 암울한 상태 때가 유일했다고도 덧붙였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감세 정책을 비판하면서 트럼프가 상위 1%, 특히 상위 0.1%에게 좋은 대통령은 될 수 있지만 그 외에 사람들에게 좋은 대통령을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상위 부자와 기업에게 감세 효과를 집중했기 때문에 2017년과 2018년 사이 미국 중위 가부의 가처분소득이 정체했다"면서 "주당 실질임금은 트럼프가 취임할 당시보다 2.6% 증가했지만 오랜 기간 임금 정체의 충격을 상쇄하지 못했는데, 일례로 정규직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40년 전에 비해 3% 낮은 상황이며, 인종적 차이도 줄이지 못해 2019년 1분기 기준으로 정규직 흑인 남성 노동자의 주당 임금은 백인 남성 노동자의 4분의 3에도 못 미쳤다"고 강조했다.
설상가상 트럼프가 유발할 경제 성장은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실제로 기후변화와 관련된 재산피해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미국에서 최고치를 돌파해 2017년 GDP의 약 1.5%에 달했다고 그는 소개했다.
또한 감세로 인한 새로운 투자의 물결이 일어날 것이란 주장과 달시, 수익성 높은 몇몇 기업에 막대한 주식 매수세가 쏠렸을 뿐 완전고용에 가까운 국가의 대외적자가 연간 5000억달러에 달하고, 1년 새 순채무 규모가 10% 이상 증가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나아가 트럼프의 무역전쟁으로 무역적자는 줄어들지 못했고 2016년보다 2018년에는 적자가 4분의 1 가량 더 늘어났고, 2018년 상품 적자는 사상 최대치였다고 스티글리츠 교수는 확인했다. 더구나 대중국 무역적자도 마찬가지 수준으로 증가했다는 사실 또한 적시했다.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던 트럼프의 약속과 달리, 제조업 취업자 증가율은 오바마 대통령 때보다 낮고, 경제 위기 이전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고 꼬집었다. 50년 만에 가장 낮은 실업률도 경제적 취약성을 숨기고 있다면서, 노동 연령층의 남녀 노동자 고용률이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보다 낮았고 다른 선진국들보다 현저하게 낮으며, 일자리 창출 속도 역시 오바마 때보다 크게 느린 편이라고 지적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마지막으로 GDP 성장률 자체로 보더라도 트럼프 경제는 미달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분기 성장률이 2.1%에 그쳐, 트럼프가 공약을 내건 4%~5%에 못 미치며, 오바마 재임 때의 평균 2.4%보나 낮다는 것이다. 그는 "1조 달러 적자와 초저금리 부양효과를 감안하면 너무나 저조한 성적"이라고 강조했다.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