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진 "양승태가 헌재 대응 방안 마련 지시했다"
[서울=뉴스핌] 고홍주 기자 = 양승태(72·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 수뇌부가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한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27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3·12기)·고영한(65·11기) 전 대법관들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재판에는 이규진 전 부장판사(58·19기)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내면서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등에 개입하고, 각종 문건을 작성 지시해 상부에 보고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 전 부장판사는 대법원과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헌재를 압박할 방안이 담긴 '헌법재판소 관련 비상적 대처방안 검토' 문건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이 한번 비상적 상황을 가정하고 검토해보라는 취지로 말해서 작성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헌재 상대로 비상적이고 극단적인 대처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계기가 무엇이었냐'는 질문에는 "2015년 7월 당시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좌)·박병대 전 대법관(가운데)·고영한 전 대법관(우) [사진=뉴스핌DB] |
검찰은 그 계기가 교대역에 설치된 헌재 광고판이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당시 교대역에는 흥부가 관가에서 억울하게 곤장을 맞는 장면과 함께 '헌법소원을 해보라'는 문구가 있는 헌재의 광고가 걸려있었다. 법원에서 억울한 판단을 받으면 헌재가 이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광고였다.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는 사법부 수뇌부의 큰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이 전 부장판사도 "(양승태) 대법원장이 불쾌해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박병대 당시 행정처장 주재 실장회의에서 얘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헌재가 위치한) 안국역에 헌재를 비난하는 광고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고 증언했다.
이 전 부장판사는 당시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이었던 문성호(45·33기) 부장판사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고, 이후 수차례 수정을 거쳐 10월 초에 보고됐다.
보고서 초두의 검토배경에는 '현재 헌재는 유화적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GS칼텍스 관련 재판소원 사건과 관습법 규범통제 등 민감한 사건이 계류중이고 상고법원 국회 심사 등 중요 국면에서 법원에 대한 공세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돼 있다.
이어 △헌재의 존립 근거를 위협하는 방안 △헌재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방안 △헌재에 대한 노골적인 비하 전략 검토 등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전 부장판사는 이러한 문구를 문 부장판사가 직접 기재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문 부장판사가 아이디어가 별로 없어서 대부분은 사법정책실에서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라며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저 내용은 양 전 대법원장이 비상적 상황을 가정해서 검토해보라고 했던 것이라서 실현 가능한 방안은 전혀 없고 실현된 것도 없다"고 항변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이밖에도 헌재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파견 법관들로부터 헌재 사건 등 내부 동향 파악을 해왔다는 것과 관련해서도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헌재 일을 맡아서 해줘야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다만 그는 "지시로 보기에는 좀 그렇고, 헌재 파견 나간 법관들을 활용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며 "제가 헌재에서 근무할 때도 중요한 일이 있으면 대법원에 보고했기 때문에 (자의적으로)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 전 부장판사로부터 지시를 받아 문건을 직접 작성한 문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증인신문에서 "당시 이렇게 해도 되나 생각도 했지만 지시에 대해 적극적으로 저지하거나 반대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스럽다"면서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은 아니어서 지시를 받고 상당 기간 (작성을) 미뤘던 것은 맞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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