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선미 기자 = 태평양에 배치된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CVN-71)의 브렛 크로지어 함장이 선내 코로나19(COVID-19) 집단감염을 막기 위해 승조원 하선을 요구했다 경질돼 미국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미 해군이 크로지어 함장을 직위 해제했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크로지어 함장이 승조원 하선을 요구한 서한이 언론에 유출되도록 하는 데 원인을 제공해 해군 규율을 어겼다는 것이 경질 사유다.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CVN-71)의 브렛 크로지어 함장 [사진=로이터 뉴스핌] |
크로지어 함장은 선내에서 코로나19 최소 확진자 8명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집단감염이 우려되자 지난달 30일 국방부에 "(선내에서는) 승조원 5000명에 대한 감염 여부를 조사하기 어려우니 하선해 검사하도록 지원해달라"는 서한을 보냈다.
그는 서한에서 "우리는 전쟁 중에 있지 않으므로, 선원들이 죽을 이유가 없다"며 "지금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해군의 가장 신뢰할 만한 자산인 수병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해군 측은 크로지어 함장이 해당 서한을 '다양한 직책의 많은 사람들'에게 보내 결과적으로 언론에 유출되게 한 책임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NYT는 크로지어 함장의 서한이 언론에 공개된 후 해군 당국이 손을 놓고 있다가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는 비난이 일자 "국방부 고위 관리들이 서한 유출에 격분했다"고 보도했다.
해군 측은 "크로지어 함장의 서한은 해군이 대응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크로지어 함장의 경질에 승조원 가족뿐 아니라 워싱턴 정계에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실시되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형편없는 결정"이라며 "해군은 승조원 보호와 국가안보라는 임무에 충실했고, 팬데믹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려 했던 군 지휘관에게 총을 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전직 해군 출신으로 이라크 전쟁 참전 용사였던 세스 몰튼(민주·매사추세츠) 하원의원도 "지휘부에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직위해제가 아니라 존경을 받아야 한다"며, 크로지어 함장의 경질과 관련해 해군 지도부는 의회로부터 질문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직 선내에 남아있는 수병들의 가족은 크로지어 함장의 경질로 위기 대응에 차질이 생기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한 선원의 가족은 "그는 부하들을 돌보려했을 뿐인데 경질 당했다"며 "해군 측이 자신들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집단감염이 시작될 당시 괌에 정박 중이던 루스벨트함에는 해군 수병을 비롯해 조종사와 해병대 등 약 5000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크로지어 함장이 서한을 보낸 지난달 30일 경에는 이미 선내 확진자가 100명을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선내 확진자는 최소 114명이다.
선내 최초 확진자의 감염 경로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지난달 초 함정이 베트남항에 정박했을 때 승조원 30명 가량이 현지 호텔에 체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 측은 지금까지 루스벨트함에서 승조원 1000명 가량이 하선했으며, 수일 내에 2700명 가량이 추가로 하선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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