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진화 나선 통일부 "文정부 출범 직후부터 준비"
"대북전단 저지 만을 위한 법안 아냐…종합적 성격"
南측 기민한 대응에도…북한 호응 여전히 '미지수'
[서울=뉴스핌] 노민호 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경고' 담화문을 계기로 청와대와 정부의 '북한 눈치 보기' 논란이 일고 있다.
청와대는 "대북전단이 백해무익"이라며 단호한 대응을 공언했고, 정부는 더 나아가 담화문이 발표된 지 4시간 만에 법 정비를 예고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사진=뉴스핌 DB] |
◆ '北 눈치 보기' 논란 진화 나선 통일부…"文정부 출범 직후부터 준비"
최근 남북 경색의 키를 쥐고 있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새벽 담화문에서 국내 탈북민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지난달 31일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을 문제시 삼았다.
김 제1부부장은 '똥개', '쓰레기', '바보' 등의 원색적인 표현으로 탈북민을 비난하며 한국 정부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성토했다. 그는 특히 ▲금강산관광 폐지 ▲개성공단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남북군사합의 파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자 통일부는 같은 날 오전 10시 40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처하며 법률적 조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대북전단은 판문점선언에 관련된 사항"이라며 "이행 차원에서 이전부터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이어 오후 3시에도 당초 계획에 없던 출입기자단 브리핑을 열고 대북전단 관련 법 제정과 관련,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준비해왔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김 제1부부장의 담화문 발표를 계기로 법 제정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명이었다.
통일부는 법 제정의 배경과 관련, 김 제1부부장의 담화문에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 제1부부장의)담화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정부 인식 등 (그간의) 준비상황을 말할 필요가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통일부 청사 내부 [사진=뉴스핌 DB] |
◆ "대북전단 저지 만을 위한 법 아닌 종합적 성격"
통일부는 일명 '전단 살포 금지법' 등 대북전단 문제에 한정된 법 제정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비무장지대(DMZ) 평화지대화, 남북 간 모든 적대행위 중지 등의 내용이 담긴 남북 합의를 이행한다는 차원에서 접경지역의 주민 보호와 평화적 발전을 위한 종합적 성격의 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 통일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접경지역의 긴장 조성과 주민안전 위협, 지역발전을 저해하는 전단 문제에 대한 규제방안도 포함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통일부의 해명에도 불구, 일각에서는 해 묵은 '남남갈등' 조짐도 감지된다고 우려했다. 헌법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에 따라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없다는 목소리와 국민의 생명·안전이 최우선 가치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HRW) 필 로버트슨 아시아담당 부국장은 '기본권 충돌 가능성'을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전략을 바꾸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논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17년 5월 국내 한 북한인권 단체가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을 규탄하는 대북 전단을 살포하고 있는 모습으로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사진=자유북한운동연합] |
◆ 실제 입법 가능성 있나…南 '기민한 대응'에 北 호응 여부 주목
실제로 입법이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과거에도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돼 왔기 때문이다.
대북전단을 살포하기 위해서는 먼저 통일부 장관에게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지난 2008년 발의됐지만 당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2014년 북한이 대북전단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유사한 법안이 재차 발의됐지만 이 또한 무산됐고 2016년에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
대북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조속한 시일 내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북한의 대남 공세가 누그러들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예컨대 북한이 남북 간 '독자적 협력공간' 확보를 원하는 우리 측의 제의에 호응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호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며 "정부가 급하게 발표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인데, 허겁지겁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상당히 여유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북한은 지금 자신들이 키를 쥐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끌려가는 형국"이라며 "문제는 우리가 균형을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대남전단 살포 금지법은 두고 두고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 좀 더 시간을 두고 신중한 대북전략과 맞물려 가는 것이 필요해보인다"고 조언했다.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