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라씨로
KYD 디데이
정치 통일·외교

속보

더보기

[클로즈업] '회고록 파문' 존 볼턴 누구...네오콘 대표주자, 美 군사력 동원 지지

기사입력 : 2020년06월23일 18:01

최종수정 : 2020년06월23일 20:35

페리 "볼턴, 국무장관 되면 북·미 대화 없을 것" 예언
볼턴 "국제질서 확보 위해 미국의 군사력 동원해야"

[서울=뉴스핌] 이영태 기자 = "공화당 출신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과 유엔대사를 지낸 존 볼턴이 국무장관으로 임명된다면 미국과 북한의 대화는 없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인 2016년 11월 14일 회고록 <핵 벼랑을 걷다> 한국어판 출간 차 방한한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이 당시 연세대 특별초청강연에서 한 말이다.

1999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조정관으로 '페리프로세스' 보고서를 입안한 페리 전 장관은 강연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 초기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강경한 정책을 주도한 '네오콘' 볼턴이 국무장관이 되면 아마 2001년으로 복귀하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대북 포용정책을 기초로 한 '페리프로세스'는 북한의 핵 활동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려면 미국, 일본이 북한과 수교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로이터 뉴스핌]

◆ 볼턴 등이 핵심인물인 네오콘은 어떤 세력

반면 볼턴 등이 핵심세력인 네오콘은 미국 공화당의 신보수주의자들 또는 그러한 세력을 통틀어 일컫는다. 힘이 곧 정의라고 믿고 군사력을 바탕으로 미국이 세계의 패권국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네오콘은 네오-콘서버티브(neo-conservatives)의 줄임말이다. 1960~1970년대 민주당 좌파에 몸담았다가 베트남전쟁이 패배로 끝나고, 당 내에서 반전·평화주의가 득세하자 이에 반발해 공화당의 반공·반소 노선으로 돌아선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부시 정권의 핵심 인물인 딕 체니(Dick Cheney)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국방부장관, 폴 울포위츠(Paul Wolfowitz) 국방부 부장관, 루이스 리비(Louis Libby) 부통령 비서실장 등이다. 이들은 미국의 정계·언론계는 물론, 각종 싱크탱크 등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특히 유대인이 많다.

23일 0시(현지시각) 공식판매에 들어간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 등에 대해 원색적인 표현을 동원해 비난하며 국제사회에 파문을 일으킨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어떤 사람일까.

23일 0시(현지시각) 공식판매에 들어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The room where it happened)'. 2020.06.23 [사진=회고록 캡처]

예일대 시절부터 골드워커 지지자로 강경보수 성향

볼턴은 소방관인 아버지,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가난한 백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 자라난 곳도 흑인이 다수인 볼티모어 다운타운이다. 하지만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했던 볼턴은 미국에서 명문대로 손꼽히는 예일대에 들어갔다. 그는 초등학생 때에는 별로 공부를 하지 않다가, 중학생 때부터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

1970년 예일대를 수마쿰라우데급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볼턴은 재학 시절부터 대권에 나선 공화당계 정치인 배리 골드워터(Barry Goldwater)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골드워터는 "소련과의 핵전쟁을 불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대외 강경파였다. 네오콘 중에는 전직 극좌 트로츠키파 운동권이 전향해 강경 우파가 된 경우가 많았는데, 볼턴은 대학시절부터 드물게 강경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그는 베트남 전쟁의 지지자였지만, 의도적으로 베트남 파병을 회피했다는 의혹이 있다. 당시 미군은 징병 추첨제였는데, 볼턴은 185번이었다. 그는 징병 순서가 다가오기 전에 주방위군(maryland army national guard)에 입대했다. 볼턴이 속한 그룹에선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최대 195번까지 징병됐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베트남으로 가지 않으려고 편법으로 징집을 회피한 셈이다.

그는 주방위군 장교로 4년간 군 복무를 했으며, 그 후 2년간 미 육군예비군(US Army Reserve)에서 2년간 추가로 복무했다. 볼턴을 병역 기피자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국 연방군이 아니라 해외 파병 등 최전방 징집을 기피했을지는 몰라도 병역 자체를 기피하지는 않았다.

볼턴 스스로도 병역기피 논란을 의식한 듯 예일대 졸업 25주년 기념문집에서 "나는 동남아시아의 논밭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베트남 전쟁은 이미 패배한 전쟁이라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예일대 로스쿨로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딴 볼턴은 컨빙턴 & 벌링 로펌의 워싱턴 사무소 변호사, 로널드 레이건 정부의 법무부 차관, 조지 H. W. 부시 정부의 국무부 국제기구 국장, (자신의 설립 권한으로 신설하였던) 러너, 리드, 볼턴 & 맥마너스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로 역임했다. 조지 W. 부시 정부 때는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관를 거쳐 2005년 8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UN 주재 미국대사를 지냈다.

[서울=뉴스핌] 정일구 기자 =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지난해 7월 24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청사에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9.07.24 mironj19@newspim.com

네오콘이면서 트럼프 지지해 국가안보보좌관 발탁

이후 그는 언론에 출연하는 등 재야 활동을 하다 2018년 3월 22일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H.R. 맥마스터의 후임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으로 임명됐다. 대선에서 트럼프를 반대했던 다른 네오콘 인사들과 달리 트럼프를 지지해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강경한 스타일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과의 의견차가 빈번하다는 소문이 자주 흘러나왔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의 불화설에 대해 "만약 볼턴에게 일을 전적으로 맡겼다면 우리는 지금쯤 네 개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을 것"이라며 볼턴의 호전성에 불만을 표했다는 트럼프 대통령 측근의 말을 인용하기도 했다.

페리 전 국방장관이 언급했듯 볼턴은 한때 트럼프 행정부 초대 국무장관으로 검토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외교분야 고위관리 상당수가 볼턴 임명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는 딕 체니,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과 충돌한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 보좌관, 스티븐 하들리 전 국가안보 보좌관이 포함됐다.

[서울=뉴스핌]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7월 24일 청와대에서 방한 중인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사진= 청와대] 2019.07.24 photo@newspim.com

볼턴 "국제질서 확보 위해선 미국의 군사력 동원도 가능"

볼턴은 국제질서 확보를 위해서는 미국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으며 때로는 군사력 동원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이라크전을 적극적으로 옹호했으며 북한에 대해서도 선제 타격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볼턴은 북한에 대해 외교적 해결 노력이 오히려 북핵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며 외교 노력을 기울이는 사이 북한이 미사일 기술을 개발해 미국과 동맹국들을 위협할 뿐이라고 피력했다.

볼턴이 회고록에서 2018년 북미정상회담이나 2019년 남북미 판문점회담은 물론,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유화적 접근법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강조한 배경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0일 볼턴을 경질하고 후임에 로버트 오브라이언을 임명했다. 볼턴의 국가안보보좌관 경질사유는 ▲탈레반과의 협상문제로 인한 불협화음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거듭되는 반발 ▲유엔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을 만나는 문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대행 등 주요 안보정책결정자들과의 불협화음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medialyt@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버핏, 하락장에 옥시덴털 등 주식 더 샀다 [뉴욕=뉴스핌] 김민정 특파원 =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가 이번 주 뉴욕증시 하락 장세 속에서 그동안 꾸준히 매수해 온 옥시덴털 페트롤리엄의 지분을 추가 매수했다. 20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버크셔는 890만 주의 옥시덴털 지분을 4억500만 달러(약 5860억 원)에 매수했다. 이번 지분 인수는 지난 17일과 18일, 19일에 걸쳐 이뤄졌다. 이번 매수로 버크셔가 보유한 옥시덴털의 지분은 28%로 확대했다. 버핏 회장은 하락장에 주식을 저렴하게 산 것으로 보인다. 옥시덴털의 주가는 이번 달 들어 10% 하락해 연초 이후 24%의 낙폭을 기록 중이다. 전날 옥시덴털의 주가는 52주래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워런 버핏 회장 [사진=블룸버그] 옥시덴털은 버크셔가 보유한 주식 중 6번째로 규모가 크지만, 버핏 회장은 완전한 인수설을 부인했다. 버크셔가 옥시덴털을 추가 매수한 것은 지난 6월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버크셔가 보유한 옥시덴털의 가치는 120억 달러에 이르지만 투자 전문매체 배런스는 옥시덴털 투자로 버크셔가 10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같은 기간 버크셔는 북미 최대 위성 라디오 사이러스XM 지분 500만 주를 1억1300만 달러에 샀다. 사이러스XM은 올해 60%나 급락해 현재 10여 년간 가장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최근 투자자들은 회사가 2025년 실적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주식을 공격적으로 매도했다. 도메인 등록 서비스업체 베리사인의 지분 23만4000주를 약 4500만 달러에 사들였다. 현재 버크셔는 이 회사의 지분 13%를 보유 중이다. 이로써 지난 3거래일간 버크셔가 매수한 지분은 최소 5억6000만 달러에 달한다. mj72284@newspim.com 2024-12-21 00:55
사진
달러/원 환율 1,450원 돌파...15년래 최고 [서울=뉴스핌] 고인원 기자= 19일 달러/원 환율이 1450원도 돌파하며 15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에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예상대로 기준 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으나 내년 기준 금리 인하 속도를 줄일 가능성을 시사한 여파다. 연준은 18일(현지 시각)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 회의를 마치고 기준 금리를 4.25~4.50%로 0.25%포인트(%p) 인하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연준은 9월과 11월에 이어 이달까지 세 번의 회의에서 연속으로 기준 금리를 내렸다. 연준은 별도로 공개한 경제 전망 요약(SEP)에서 내년 말까지 금리 인하 폭을 0.50%p로 제시했다. 이는 9월 1.00%p를 기대한 것에서 크게 축소된 수치다. 이 같은 예상대로면 연준은 내년 0.25%p씩 총 두 차례 금리를 낮추게 된다. 매파적인 연준의 내년 금리 전망에 이날 미 달러화는 2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고, 달러/원 환율은 한국 시간 19일 오전 6시 50분 기준 1453원으로 1450원도 넘어섰다. 이는 지난 2009년 3월 이후 약 15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이 제롬 파월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를 차기 의장으로 지명했다. [사진=블룸버그] koinwon@newspim.com 2024-12-19 06:58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