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사모펀드 투명화가 대책의 핵심"
업계선 "규제 강화는 시장 위축 불가피"
핀셋 규제로 부작용 최소화 목소리도
[편집자] '라임'에 이어 '옵티머스'까지. 국내 사모펀드의 비리가 낱낱이 드러나면서 금융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큰 충격과 실망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 과정에서 사건 면모가 상세히 밝혀지겠지만 관련 사모펀드 업체는 물론이고 금융당국과 판매사, 수탁사 등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입니다. 사모펀드로 유입되는 자금줄이 말라 사모펀드업계가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감지됩니다. 뉴스핌은 사모펀드의 순기능은 살리되 역기능과 부작용은 최소화 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서울=뉴스핌] 임성봉 기자 = 연이어 터진 라임과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를 두고 전문가들은 안전장치를 마련해 무너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모펀드 시장 규제가 완화된 지난 2015년 이전 수준으로 보다 강도 높은 규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안팎에선 대체로 사모펀드 규제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 방향과 범위, 강도를 두고서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자칫 규제 강화가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우려 때문이다. 이번 사태로 잔뜩 움츠러든 자산운용 업계 내부에선 현행 시스템에서 상호 견제와 감독 기능 강화 수준의 규제가 바람직하다는 목소리도 조심스레 나온다.
◆ 제도 개편 '안갯속' 핀셋 규제?...일부선 "규제 강화가 능사 아냐"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현재 ▲운용사 내부통제 강화 ▲투자자에 대한 정보 제공 확대 ▲감독당국에 대한 보고의무 강화 ▲부실 운용사 적극 퇴출 등을 뼈대로 한 사모펀드 개편안을 마련 중에 있다. 아울러 라임 사태 등에서 드러났던 일명 '쪼개기 펀드' 편법을 막는 방안도 함께 강구하고 있다.
[표=자본시장연구원] |
이는 지난 2015년 금융위원회가 대폭 사모펀드 관련 규제를 완화한 것과 비교해 낮은 수준의 개선책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분별한 사모펀드 투자를 제한할 장치가 빠져있고 실질적인 사모펀드 투명화로 판단하기에는 설익은 대책이라는 것이다. 또 규제 완화 이후 군소 사모운용사가 난립하면서 과열 경쟁에 따른 부작용 문제 등 근본적 대책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정용건 금융감시센터 대표는 "첫째로 사모운용사와 개인 투자자들의 진입을 제한적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고 둘째로는 판매사가 운용사의 상품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운용사가 판매사에 신탁보고서를 보여줄 의무가 없다 보니 사과에 독이 들었는지, 썩은 사과인지 판단할 방법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특히 금감원이 특정 사모펀드에 이상한 낌새가 있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검찰에 고발조치하는 등 시장에 강경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안도 선택지로 놓고 봐야 한다"며 "금융 사기나 부실 운용의 경우, 미국처럼 적극적으로 수사당국에 고발하는 것으로 용납될 수 없는 범죄라는 사회적 컨센서스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업계 내부에선 사모펀드에 대해 강도 높은 규제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규제가 강해지다 보면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최소의 규제가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대표적인 시장 중 하나고 실제로 규제 완화 이후 모험성 자본공급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며 "감독당국을 통한 투명성 강화와 판매사, 수탁사 등과 연계한 내부통제 강화 방안 등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지만 적격투자자 요건을 높이는 것 등은 시장에 직격타를 입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종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도 "지난 2015년 제도개편을 계기로 시장경쟁이 촉진되면서 다양한 유형의 전문사모집합투자업자가 등장했고 대체자산 투자규모가 크게 늘어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비록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나긴 했으나 감독당국이 앞으로 사모펀드 시장이 제도개편의 취지에 부합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조성하는 데 힘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다만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을 다시 높이기보다는 늘어나고 있는 부실이나 부적격 운용사의 퇴출이 적절히 이뤄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사모펀드 투자자에게도 투자책임의 원칙을 명확히 하고, 투자위험을 감수할 수 없는 투자자들의 사모펀드 투자를 제한할 필요는 있다"고 조언했다.
◆ 관리 손놓은 금융위 해체론 수면위로...금융소비자보호원 출범 목소리도
라임과 옵티머스 사태는 그간 국내에서는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유형이라는 점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라임이 부실자산을 숨기고 옵티머스가 수천억을 빼돌리는 동안 별다른 감시 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이 때문에 과거 사모펀드 규제는 풀어놓고 관리·감독에는 손을 놓고 있던 금융위원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이른바 '금융위 무용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앞서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국회에서 열린 '사모펀드 환매중단 사태로 본 금융감독체계 개편 방향 토론회'에서 "사모펀드 관련 규제가 완화된 뒤 금융사고가 늘었고 이로 인해 투자자들의 신뢰가 무너졌다"며 "금융당국이 증권업계 발전을 오히려 저해한 것인 만큼 금융위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위 해체론은 저축은행 사태, 동양사태 등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꾸준히 제기됐던 주장이다. 금융위가 관련 규제를 풀면 사건이 터지고 이후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방식이 반복된다는 게 이 주장의 골자다. 특히 금융위가 금융정책 수립과 감독 기능을 모두 갖고 있는 이상 정밀한 감독은 불가능하다는 점도 금융위 해체론에 힘을 싣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
고동원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원인은 금융위가 금융정책 기능뿐 아니라 감독 기능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금융위의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기구가 사실상 없는 상황인데 금감원은 현행법상 금융위의 지도·감독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사모펀드 등에 대한 관리·감독 문제가 불거지자 최근에는 일부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조합 등이 힘을 합쳐 직접 금융자본을 감시하는 '금융감시센터'를 출범하기도 했다. 이들은 센터를 출범하면서 "라임,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관련 문제들은 단순히 실수가 아닌 구조적 문제"라며 "부실한 정책과 감독 기능의 상실 그리고 정책 허점을 이용한 사모펀드 주체와 이윤추구에만 물든 금융지주사들의 무책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다름이 없는 데도 감시 기능은 찾아볼 수가 없다"며 출범 배경을 밝혔다.
사정이 이렇자 금융소비자보호원(보호원) 설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보호원은 지난 2010년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꾸준히 논의됐으나 업계 반발 등이 심해 매번 좌초됐다. 주요 쟁점은 보호원을 독립기구로 출범 시킬 지, 금감원 산하에 둘 것인지 등이었다. 당시 정치권과 여론은 독립기구 출범 쪽에 무게를 뒀으나 당장 조직 축소가 불가피해지는 금감원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또 금감원과 보호원, 2개의 감독기구를 두게 되는 금융회사들도 독립기구 출범을 마뜩찮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결국 보호원 설립 논의는 10년째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건이 끊이질 않자 보호원 설립 논의도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양새다. 금융시장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금감원만으로는 이를 적절하게 관리감독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감원과 완전히 분리된 새로운 독립기구가 생긴다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금융소비자 보호가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금융투자업계까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금감원도 사모펀드 사태 책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인 만큼 현재 상황에서 정치권이 보호원 설립을 강하게 추진한다면 못할 것도 아닌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금감원은 최근 산하 조직으로 '사모펀드 전수조사 태스크 포스(TF)'를 내년부터 정식 직제에 편입해 운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TF는 감사원 등과의 협의를 거쳐 올 연말쯤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앞서 금감원은 올 초 금융소비자보호처를 기존 6개 부서·26개 팀에서 13개 부서·40개 팀으로 확대·개편하기도 했다.
imbo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