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 원고 패소 취지 파기환송
[서울=뉴스핌] 이보람 기자 =건물 임대인이 의료법상 구분된 '병원'과 '의원'의 명확한 차이를 알지 못한 채 임대차 계약을 맺었더라도, 이를 사유로 계약 무효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일반인들이 두 용어의 법률상 의미 차이를 알기 어렵다는 등 이유에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2일 임차인 A씨가 임대인 B씨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1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고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한의사인 A씨는 지난 2015년 7월 한방병원 개설을 위해 건물을 알아보던 중 건물 임대 광고를 보고 건물주 B씨와 임대차 계약을 맺기로 하고 계약금 2000만원을 송금했다.
두 사람은 직접 만나 총면적 1224㎡ 규모의 B씨 소유 건물 2~4층을 이 사건 임대차 목적물로 하는 계약을 협의했다. A씨는 이 과정에서 B씨 측에 "병원이 들어오려면 용도가 병원 용도로 돼야 한다"며 소방시설과 정화조 등을 병원 용도에 적합하게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고 B씨가 이를 받아들여 두 사람은 임대차보증금 1억3000만원 등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A씨가 추후 건축사 사무소 등에 확인한 결과 이 사건 임대차목적물은 비상계단 부족 등 설계상 사유로 소속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어긋나 '의원급' 의료기관은 개설이 가능했지만 '병원' 개설 허가를 받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씨는 이에 B씨와 임대차 계약은 당초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체결된 것이므로 당초부터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이 어려운 것이었다면 계약 자체가 무효이며 이를 알리지 않았던 B씨 측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 보증금 등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판단은 다소 엇갈렸다. 1심은 A씨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으나 2심은 A씨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해당 계약이 무효라고 본 것이다.
1심은 "건물을 경매로 낙찰 받아 임대사업을 하려던 피고가 의료인이 아니면서도 이 사건 임대차 계약 체결 당시까지 쌍방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 구분 의미와 허가 절차 차이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며 계약 당시 이 차이를 알고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이같은 판단을 내렸다.
또 "병원 개설하려는 건물에 허가 가능 여부는 근본적으로 의료인으로서 허가신청을 할 사람인 원고가 잘 알 수 있고 알아 보아야 하는 사항"이라며 "뿐만 아니라 피고가 해결할 수 없는 개설 허가 요건까지 책임 사유로 정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2심은 반면 "이 사건 임대차목적물은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부터 소속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위반해 병원개설 허가를 받을 수 없어 계약 목적 달성이 법률상 불가능한 상태였다"며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원시적 이행불능에 따른 무효"라고 판단했다.
다만 피고가 병원과 의원 개설 차이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허가 개설 요건이 피고의 의지로 해결할 수 있던 문제가 아니라는 점, 오히려 원고가 의료인으로서 개설 허가 요건 등을 알아보고 병원개설 허가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을 알 수 있었다는 점, 당초 허가를 위해 피고가 원고 측 요구를 받아들여 천장 등을 수리하는 데 상당 비용을 지불한 점 등을 이유로 원고 측이 청구한 1억 5300만원 중 8300만원에 대해서만 피고가 돌려 줄 의무가 있다고 봤다.
대법은 그러나 이 사건 계약이 무효라고 판단한 원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고 사건을 파기환송 했다.
재판부는 "일반인들은 일상생활이나 거래 관계에서 '병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의료법 등에서 정한 '병원'과 '의원'의 의미, 개설 요건, 방식과 절차 등 구분과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거나 인식해 의료법상 의원과 구분되는 의료기관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사용한 것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며 1심과 마찬가지로 피고 책임을 일부 제한했다.
그러면서 "임대차 목적물 중 일부에 대해서는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해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고 피고가 이를 제안했지만 원고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면서 "한의사인 원고가 계약 당시 의원급 의료기관과 구분되는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 허가를 받아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피고 측에 명확히 알리지 않았고 허가 요건 등을 알아볼 시간이 충분했는데도 이를 알아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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