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라는 새로운 입시 제도 하에서 '열공' 시작한 기업들
빅테크 포진한 선진국, ESG 들이밀며 기업 이전 모색해
우리 정치권은 탄소세 도입 논의까지…사면초가 K-기업
[서울=뉴스핌] 김선엽 기자 = "ESG 위원회를 설립하긴 했는데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옥 옥상에 태양광 판넬이라도 깔아야 하는지, 법인차를 싹 전기차로 교체해야 하는건지 고민스럽다"
최근 기업 홍보 임직원을 만나면 ESG 경영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제조업이든 서비스업이든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ESG '올인'이다.
ESG 채권을 발행하고 ESG 위원회를 설치하고 몇몇 기업들은 공장에서 전기나 물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방안들을 살펴본다 한다.
하지만 기업마다 사업 구조가 다르고 처한 여건이 다르다보니 딱 부러진 정답을 찾기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 모습이 마치 대학 입시정책의 변화로 머리를 감싸는 학부모들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CSV(공유가치창출) 등은 기업 입장에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학원 숙제였다.
하지만 ESG는 다르다.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기업가치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이들이다. 기업들로선 사력을 다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ESG를 두고 좋은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탄소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그 동안 선진국 기업들이 화석연료를 사용하며 지구환경을 파괴해 왔는데 이제 개발도상국들이 따라잡으려 하자 이를 가로막으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ESG 평가점수가 높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을 보면 국가별 세율 차이를 이용해 법인세를 절감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노동집약적 제조 기업들은 여러 이유에서 ESG 점수가 낮을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선진국들이 연기금을 내세워 개발도상국에 ESG 경영을 강조하는 것이 곱게 보이지만 않는다. 새로운 무역장벽을 통해 자국 내 기업 유치를 도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럽은 수 십 년에 걸쳐 탄소저감 노하우를 쌓아왔다"며 "탄소배출에 대한 실력이 부족한 한국 기업이 탄소국경세를 피하기 위해선 유럽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을 설립, 유럽 내에 공장을 짓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제조업 비중이 월등히 높으면서도 탄소감축과 관련해 노하우가 적은 우리나라 기업들로서는 '탄소 사다리 걷어차기' 앞에 떨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정치권이 ESG에 군침을 흘리는 모습은 기업들에게 또 하나의 두려움이다. 몇몇 정치인은 탄소세를 기업들에게 걷어 국민들에게 월 10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한다.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다음 정부에서는 최소 30%의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런 와중에 탄소세 도입은 기업들에게 숨막히는 비용 압박으로 다가온다.
성적이 안 좋으니 때려서라도 점수를 올리겠다는 것인가. 이들의 구상(온실가스 1톤당 8만원)대로면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매해 영업이익의 2배를 탄소세로 내야 한다. 우리 기업이 매달린 사다리를 우리가 스스로 걷어차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지금은 매를 들 때가 아니다.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