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폭력·반전주의 신념으로 현역입대 거부 인정 첫 사례
[서울=뉴스핌] 김연순 기자 = 종교적 신념이 아닌 '개인적 신념'을 이유로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한 행위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자신의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 입대 거부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24일 병역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정모(32)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대법은 "피고인의 신념과 신앙이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를 인정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지난 2017년 10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 정당한 사유없이 입영일까지 입영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정씨는 재판과정에서 "정의와 사랑을 가르치는 기독교 신앙 및 성소수자를 존중하는 '퀴어 페미니스트'로서의 가치관에 따라 군대 체제를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고 주장했다.
1심은 "피고인이 종교적 양심 내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병역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반면 2심은 "피고인은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기독교 신앙과 소수자를 존중하는 페미니즘의 연장선상에서 비폭력주의와 반전주의를 옹호하게 됐고 그에 따라 병역의무의 이행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앙과 신념이 피고인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어 피고인이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1심 유죄을 뒤집고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은 "이 사건 피고인은 대한성공회 교인으로서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과 기독교 신앙 등을 병역거부 사유로 주장하고 있다"며 "피고인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독교 신앙(교리)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이 사건은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 사안과는 구별된다"며 밝혔다.
이어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정한 '정당한 사유'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피고인의 현역병 입영거부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대법 관계자는 "이 판결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사람이 자신의 비폭력주의·반전주의 신념과 신앙을 이유로 현역병 입영을 거부한 사안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수긍한 최초 판결"이라고 의의를 밝혔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월 폭력과 살인 거부' 등의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훈련과 병역동원소집에 불참했더라도 처벌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종교적 신념이 아닌 '인간에 대한 폭력과 살인의 거부'라는 윤리적·도덕적·철학적 신념 등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 거부를 인정한 첫 사례였다.
y2ki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