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 분할을 예고하면서 주가가 급락했다. 고성장 사업을 떼내는 데 따른 기업가치 하락 가능성이 불거진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디스카운트 우려로 인한 단기적 수급 부담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저평가 상태의 배터리 사업 가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다며 긍정적 시각을 내비쳤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일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전날 대비 8.80% 떨어졌다. 배터리 사업 분사 소식이 전해진 영향이다. 이날 주가는 1% 하락세로 출발, 보합권에서 등락을 보이고 있다. 오후 2시 20분 현재 전날 종가와 같은 26만95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전유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전날 놀라운 규모의 수주잔고와 향후 투자계획 발표에도, 전지사업 분할 가능성 언급으로 SK이노베이션 주가는 8.8% 하락했다"며 "대규모 투자와 사업 확대 계획을 고려했을 때 늘 염두에 뒀던 이슈였으나 예상보다 빠른 시기에 언급된 것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1일 스토리 데이(Story Day)에서 핵심 키워드로 'Carbon to Green'을 제시하며, 2025년까지 30조 원을 투자해 '탄소' 사업에서 '그린' 중심 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 사업 분할 계획도 있음을 알렸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0년 9월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 발표 이후 일주일간 주가가 16% 급락한 바 있다"며 "SK이노베이션의 주가 급락도 같은 이유다. 즉, 성장 모멘텀이 집중된 배터리 사업의 물적분할 및 상장은 투자자로 하여금 성장산업을 투자하는 데 있어 대체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자회사 지분가치에 대한 할인율 적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앞서 LG화학의 경우, 배터리 사업 물적분할 소식이 전해진 지난해 9월 16일 주가가 전날 대비 5.37% 급락했고, 이튿날에는 6.11%로 낙폭이 더 커졌다. 이후 같은 달 24일 61만1000원까지 밀려나며 분할 발표 전인 15일 종가 72만6000원보다 15.8% 빠졌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스토리 데이'에서 사업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
SK이노베이션은 분할을 검토 중이라고 하면서도 분할 방식 및 일정 등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LG화학의 경우처럼 물적분할에 대한 투자자들의 실망감이 클 수 있어서다.
조현렬 연구원은 "해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성장 자회사의 물적분할 및 상장에 의한 자금 회수 방식은 자회사 지분가치 할인 평가의 주요 원인"이라며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 유사한 분할 사례가 이어지며, 주식시장에 피로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분할 검토 소식이 단기적으로는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은 전날 스토리 데이에서 배터리 사업 분사 이후 기업가치 하락 우려와 관련, "디스카운트 폭을 줄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연구개발(R&D)을 적극 강화하고, 신규 사업을 개발해 가치를 창출하겠다"고 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분할에 따른 디스카운트를 고려, 이날 SK이노베이션 목표주가를 기존 31만 원에서 29만 원으로 6.5% 하향조정했다. 그는 "배터리 사업 가치를 당초 대비 상향조정했음에도 배터리 사업 디스카운트 30%를 반영했다"며 "물적분할이 결정되면 경쟁사 밸류에이션 때 반영한 대로 50%까지 디스카운트 폭이 확대될 수 있다. 물적분할이 아닐 경우에는 디스카운트 없고, 이 경우 36만 원까지 목표주가 상향조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반영했음에도 목표주가 하향 폭은 크지 않다"면서 "다만, 현 시점에서 상승 여력(Upside Potential)은 제한적으로, 앞으로 물적분할 이슈 해소 여부, 또는 지주사 디스카운트를 뛰어넘는 자체사업(수산화리튬 리사이클링 등) 가치 창출 등이 중요해 보인다"고 했다.
증권가에서는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사업 성장성을 고려, 단기적 주가 하락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디스카운트 부담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진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성장성 높은 사업부의 분할은 디스카운트 요인으로, 단기적인 센티먼트 둔화는 불가피하다"며 "다만, 기존에 배터리 가치가 경쟁사 대비 저평가 됐던 점, 향후 실적(정유 및 배터리 개선)과 성장(공격적인 증설) 모멘텀이 부각될것을 감안하면 그 같은 걱정은 점차 해소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현재 배터리 수주 잔고는 1TWh(테라와트시), 130조 원 이상이다. 현재 진행 중인 수주 프로그램이 완성되면 수주 잔고는 더욱 확대될 수 있어 내년 말에는 월 판매량에서 세계 3위로 올라설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다. 생산 규모 역시 현재 40GWh(기가와트시) 수준에서 2023년 85GWh, 2025년 200GWh, 2030년 500GWh 이상으로 늘 전망이다.
백영찬 KB증권 연구원은 "투자자 입장에서 물적분할 관련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이번 행사에서 주목해야 할 긍정적인 포인트가 희석된 점은 아쉽다"며 "주목할 2가지는 수주잔고 확대, 배터리재활용 사업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수주잔고의 확대는 배터리 사업의 가치 상승이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인 부분이며, 또한 향후 미국 포드와의 투자협력 규모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라며 "배터리 재활용 원천 기술 확보도 긍정적인 이슈로, 세계 최초 수산화나트륨 회수 기술 및 54건의 기술특허를 보유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덧붙였다.
분할을 계기로 배터리 사업에 대한 저평가 상태를 해소, 오히려 기업가치 상승을 도모할 수도 있다.
한상원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주가에 반영된 배터리 사업의 가치는 5조 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면서 "반면, CATL(218조 원)과 LG화학(60조 원), 삼성SDI(50조 원) 등 동종업체의 시가총액을 고려하면 리레이팅(Re-rating)에 따른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
전유진 연구원은 "확연히 높아진 경쟁력에 대한 밸류에이션이 반영돼야 할 때"라며 "이제 막 시작된 성장스토리를 훼손하기에 IPO 우려는 너무 이르고 과한데다, 어차피 현 시점에서 이 스토리를 누릴 수 있는 선택안이 SK이노베이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더욱이 현재 시가총액 27조(정유 15.5조, 화학 4조, 윤활유 6조, IET 1.5조)에는 전지사업 가치가 거의 반영돼 있지 않은데, 이를 고려하면 전날 주가 급락은 오히려 전지 성장과 하반기 정제마진 회복을 모두 누릴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저가매수 기회"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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