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 매물 임대차법 시행 이후 '반토막'
노도강 중저가 아파트 집주인 '키 맞추기' 나서
"대출 규제로 실수요자 타격 받을 것"
[서울=뉴스핌] 유명환 기자 = #1.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는 최철민(42)씨는 9월 이사철을 앞두고 고민이 깊어졌다. 두 달 전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리겠다고 통보받았기 때문이다. 최씨가 거주하고 있는 서울 노원구 중계동 노원우성아파트의 현재 전셋값은 6억 5000만원이다. 입주 당시 3억원 안팎이던 전셋값이 2년 새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최씨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정부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을 동시에 규제하면서 시중은행에서 대출을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최씨는 "대출을 막으면 우리 가족은 길바닥으로 나앉으라는 것이냐"라고 울분을 토했다.
#2. 서울에서 전세로 거주중인 최경철(52)씨는 지난달 집주에게 실입주 통보를 받았다.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며 계약갱신 없이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은 것. 9월 이사철을 앞두고 새 전셋집을 알아봐야 하는 한씨는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전세 물건도 적은데다 추가 전세대출 자금을 마련할 길도 막막해진 영향이다.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규제와 대출 규제 등이 맞물리면서 세입자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7월 말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를 도입한 임대차법 시행 이후 급등을 시작해 올해 초까지 0.10%대 상승률을 이어가며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정부가 시중은행의 대출까지 옥죄면서 가을 전세대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28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4~5만건 수준을 보이던 서울 전세물건은 임대차법 개정과 더불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 26일 기준 2만건 수준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1년만에 전세물건이 절반가까이 사라진 셈이다.
전세물건 감소에 따라 전세수급동향도 악화됐다. 지난해 1월 100.2였던 수도권 주택종합 전세수급동향지수는 지난해말 117.5까지 치솟은 이후 하락세를 보였지만 7월 118.4까지 다시 가파르게 상승했다.
수급동향지수가 100을 넘는다는 것은 공급보다 수요가 우위라는 뜻이다. 특히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지수는 7월 123.4를 기록해 시장에 아파트 수요가 과도하게 넘쳐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서울=뉴스핌] 이형석 기자 =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2020.09.12 leehs@newspim.com |
◆ 엎친 데 덮친 세입자…치솟는 전셋값에 매물감소
아파트 입주예정 물량도 제자리 걸음이다. 올해 9~12월 수도권 입주예정 아파트 물량은 총 5만 8000가구로 지난해 수준과 비슷하다. 오히려 서울의 입주예정 물량은 큰 폭으로 감소했다. 올해 9~12월 서울 입주예정 물량은 총 1만 1164가구로 지난해 동기(1만 5000가구) 대비 25.8% 감소했다.
전세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7월 6억 1558만원을 기록해 6월(4억 9834만원)보다 1억 2000만원가량 올랐다. 서울 강남구의 경우 평균 전셋값이 11억 3130만원에 달했다. 서울 아파트 전세 중위가격은 5억 4500만원으로 처음 5억원을 돌파했다. 서울 아파트의 절반 이상이 전셋값 5억원을 넘어섰다.
노도강 지역에서의 신고가 경신도 잇따르고 있다. 도봉구 창동 동아청솔 전용면적 59.76㎡는 이달 10일 보증금 4억원(18층)에 신고가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작년 5월 2억 5000만원에서 1년 사이 1억5000만원이나 오른 금액이다.
강북구 미아동 꿈의숲롯데캐슬 84.98㎡도 지난달 15일 보증금 6억7천만원(11층)에 최고가로 계약됐다. 작년 상반기까지 5억 5000만원 이하에서 거래되다가 12월 6억 3000만원(9층)으로 오른 뒤 올해 1월 6억 5000만원(1층), 지난달 6억 7000만원(11층) 등 잇따라 최고가 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서울=뉴스핌] 서울구별 아파트전세가격 주간변동률.[자료=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유명환 기자 = 2021.08.26 ymh7536@newspim.com |
◆ 주변 시세 키 맞추기 나선 집주인
전셋값 상승으로 인해 집주인들이 시세와 키 맞추기에 나섰다. 꿈의숲롯데캐슬 인근 J공인중개 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전세 계약을 다시 쓰려는 세입자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집주인들이 최초 계약금보다 약 1억원 가량 높이겠다고 하면서 계약이 무산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며 "세입자들 대부분 인상분을 지불하지 못해서 전세 계약 갱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전세 수요자들의 전셋집 구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전세물건이 귀해지고 가격까지 뛰어버린 상황에서 부족한 전세금 마련을 위한 길이 어려워진 영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두고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섣부른 규제라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올리면 자금 조달이 어려운 서민일수록 더 큰 부담을 받는다"며 "전세대출마저 조이면 장기적으로 전세 거주자의 주택 매수심리를 자극해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현재 전세시장이 안정되어 있다면 괜찮은데, 지금처럼 전세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의 대출 규제는 실수요자에게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종합부동산세 여파가 지속되면서 조세를 전가하기 위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향이 확산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전세 물량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 교수는 "전세물량 감소는 전세가를 올리고, 전셋집 마련이 어려워진 실수요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매매수요로 이전된다"며 "그런데 대출마저 막히면 이들은 도저히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그는 "무주택자는 당분간 본가나 처가에 들어가서 살거나, 텐트를 사서 풍찬노숙해야 할 수도 있겠다"며 "정부 기조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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